나는 자주 무너집니다. 일에 진보가 있을 때는 삶에 의욕이 넘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낙심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다고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지칩니다. 

 

내 글쓰기가 작년보다 더 나아졌을까요? 글쎄요.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기질적으로 내 성취에 도취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얼 하겠다고 이렇게 바보같이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혼자 조용히 무너집니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며칠 전에, 새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을 포기하고 책상 앞에 앉아 성경을 펼쳤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아무리 걱정이 많아도 말씀을 읽다 보면, 무엇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립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놀라지요. 걱정은 사라지고, 은혜만 남습니다. 

 

“보아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높은 곳에서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라.” – 누가복음 24:49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을 쭉 읽어내려가는데, 불쑥 이 말씀을 만나게 하신 것이죠. 울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게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기다려라. 기다림이 능력이다. 나의 때가 있다. 내가 하늘 문을 연다. 나의 때에, 나의 일을 할 것이다. 그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무섭다고, 두렵다고 도망치지 말거라.”

 

주관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지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본문을 연구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성경의 맥락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푹 자라고 은혜를 베푸신 것이지요. 

 

예수님이 눈앞에서 사라진 마당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로마 군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저 순종한 것이지요. 두려웠지만, 머물렀습니다. 

 

“머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행전과 연결해서 읽으면, 그 뜻이 명확해집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과 성도들이 기도하다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술에 취했다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해, 베드로가 담대히 설교합니다. 베드로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꿰뚫어, 예수님이 메시아였다고 선포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변화된 사람들이 삼천 명입니다. 쾅 하고 방아쇠를 당기듯,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질주하듯, 온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온 세계로 전해지는 복음이지만, 그 시작은 유대의 중심 예루살렘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예루살렘에 머물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셨고,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주시합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붙잡아 사용하십니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워 주실 것이오.” – 출애굽기 14:14

 

머무는 것이 능력입니다. 기다림이 은혜입니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다고 먼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망가고 싶어도, 참고 머무르며 지속하십시오.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 하늘 문이 열립니다. 

 

가만히 울고 있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가만히 있는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두렵고 무서워도 머물러 주세요.

 

나도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절대로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무능한 나를 통해서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