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신앙은, 감정 안에 존재한다.” 

 

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할지 모르겠다. 

 

“신앙이 감정 안에 존재한다니, 위험한 발언입니다.”

 

당신의 걱정을, 나는 이해한다.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경험한 직후에, 심각한 오류에 빠지는 것을 나 역시도 적지 않게 목격했다. 

 

그뿐만 아니다. 사람의 감정은 빨리도 식는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죄악된 삶으로 돌아간다. 

 

당신의 걱정을 모르는 바 아니라고 말했으니, 이제 내가 궁금한 것을 묻고 싶다. 

 

“신앙이 감정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어디에 존재한다고 믿는가?” 

 

전인격? 아니면, 마음? 영혼 어딘가에? 

 

두리뭉실 말하면 논란은 피해 갈 수 있지만, 신앙생활마저도 두리뭉실 해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했으면 좋겠다. 타깃 지점의 좌표를 정확히 찍어야, 정밀한 타격이 되지 않겠는가. 

 

감정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위험성 때문에, 감정을 절제시키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감정적 요소를 무시해 버린다면, 그 또한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감정이 제거된 사람을 상상해 보라. 그는 어쩌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는 숨을 쉴 뿐, 사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리새인이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냉철한 이성으로 성경을 줄기차게 읽어내려가서 변화된 사람을 보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성품과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감정이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에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신앙은 감정 중심이어야 한다. 감정은 적절한 방식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누군가, 믿음에 관계된 일을 읽고 듣고 보았다 하더라도, 그의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말에 복음적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복잡한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이다. 내게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바란다. 여기서는 예상되는 질문만 간단히 다루겠다.  

 

오직 감정만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다. 복음이 말하는 감정은, “느끼는 것”과 관련된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감정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신앙 감정을 오해하게 만든다. 

 

복음이 말하는 감정은 필연적으로, 행동하려는 의지와 주님께 이끌리는 성향을 포함한다. 신앙 감정은 감상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 없다. 실천적이다.

 

모든 감정이 정당한 것인가? 

 

모든 감정이 정당하거나 부당하다는 말이 아니다. 감정을 분별해야 한다. 말씀의 바른 해석으로, 어떤 감정은 수용하고, 다른 감정은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을 분별해야 한다. 

 

사탄은 알곡 사이에, 가라지를 던져 넣어 섞는다. 무엇이 진짜 감정이고, 무엇이 가짜 감정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복잡한 감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부탁한다. 감정을 분별해야 한다. 

 

감정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감정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감정의 복음적 의미를 바로 알고 분별할 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감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P.S. 지금 읽으신 글은 온라인 강의 “가짜 감정 VS 진짜 감정”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아래의 버튼을 클릭하시면, 강의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라이브 강의는, 9월 17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