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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목사님이나 기독교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말로 시작하더라도, 결국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김이 빠지는 느낌이에요. 너무 쉽고 뻔한 대답 아닌가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잖아요. 결론은 무조건 예수님인가요?

답변

     좋은 질문이에요.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고 싶어요. 나도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거든요. 저 역시 말끝마다 예수님, 예수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언제나 정답이죠. 문제는 예수님이 왜 정답인지 알고 싶다는 거예요.

     상처받아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기도했어? 성경 읽어? 그런데, 왜 그래.” 솔직히 이런 태도로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나는 흔쾌히 동의할 수는 없었어요. 문제의 실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냥 대충 덮어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풀이 과정 없이 정답만 쓰여 있는 답지를 보면 마음이 후련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이 문제, 그렇게 어렵지 않아. 답은 3번이야.”라고 누군가 말한다고 가정해보세요. 답을 맞혀도 답답하죠. 맞고 틀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 문제의 답이 3번인지 알아야겠지요.

     요즘 유행하는 상담 이론을 잠시 소개하고 싶어요. 하나는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상담 기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지행동치료라는 상담 방법론이에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두 이론은 당분간 상당한 인기를 누릴 거예요.

     마음챙김은 불교의 명상에서 시작된 상담이론이에요. 구글의 명상 전문가 차드맹탄의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라는 책에서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마음챙김 기법을 소개했어요.

     자애로운 할머니의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를 할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할머니의 마음” 기법이에요. 자애로운 할머니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각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말해요.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자애로운 할머니에게 우리는 완벽한 존재이고, 할머니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죠.

     나는 마음챙김 이론을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사람마다 할머니에 대한 정서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적어도 나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하지 않아요.

     내가 상담했던 내담자 중에는 할머니에게 학대를 받은 사람도 있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할머니에 대한 반감이나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 다 같이 눈을 감고 따뜻한 할머니를 떠올리자고 말한다면, 그에 대한 감정은 저마다 다를 거예요. 그러니, 기법에 대한 효과도 저마다 다르겠지요.

     인지행동치료의 기법을 한 가지 소개할게요. 인지 오류에 빠져서 자신을 합리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이에요.

     내담자에게 “소중한 친구”가 찾아와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내담자는 “소중한 친구”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소중한 친구니까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겠지요. 이해해주고 공감해줄 거예요. 상담자가 묻는 거죠. “소중한 친구에게는 공감해주면서, 자신은 왜 비난하시나요?” 그 과정에서 내담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소중한 친구”의 개념이 상대적이지 않을까요. 내담자 중에는 소중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상담실에 찾아온 사람도 있고요. 제아무리 소중한 친구라도 절대적이지 않지요.

     나는 “따뜻한 할머니”와 “소중한 친구” 그리고, “예수님” 중에 누구를 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을 택할 거예요. 답은 3번이죠. 1번, 2번은 더욱 답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내가 믿는 답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에게 “할머니를 바라봅시다.” 아니면, “소중한 친구를 바라봅시다.” 말한다면, 동의해주시겠나요. 아무래도 아닐 거예요. 그래서, 나는 제안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건 어때요?” 물론, 이 또한 당신의 선택이지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믿는 것은 어쩌면 쉽지 않을지 몰라요. 만약 당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당신 안에 기적이 일어날지 몰라요.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예수님을 다르게 말하겠지만, 성경은 한결같이 동일한 예수님을 말해요.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도 영원해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용기 내어 고백합니다. 결론은 예수님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돌보고 계신가요? 

이제 자신을 돌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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