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보 천치인 줄 알지? 당신이 아랫집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운동은 무슨 운동, 새벽마다 그 남자하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정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남편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정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직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삼십 년 지기 친구, P를 산책로 입구에서 만났다.

 

“오늘도 영감이 욕하는 소리가 창밖으로 다 들리데? 밤낮 그 소리여?” 

 

P가 물었다. 

 

“나도 모르것어. 갈수록 심해져. 딸들이 병난 것 같다고, 요양원에 보내자는데, 다른 건 멀쩡한 사람을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것어. 내가 그냥 참고 살아야 제” 

 

정희가 말했다. 

 

두 사람은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정희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찌근거려서 산책을 하고 나면,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P는 당뇨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삼십 년 동안 매일 아침 만나 대화를 나누어도, 소재는 고갈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희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말했다. 

 

“이 여편네 얼굴 좀 봐. 그리도 좋았어? 늙어서 추하게, 쓸데없는 것에 맛 들여 가지고, 부끄러운 줄 알아!” 

 

정희는 남편을 무시하듯, 화장실을 향했다. 

 

남편은 정희에게 따라붙으며, 말했다. 

 

“암, 그래야지. 흔적은 확실히 지워야지. 내 집에 들어왔으니까, 그 더러운 놈의 흔적은 지우는 게 맞지.” 

 

나이 팔십이 넘어, 이렇게 추한 꼴을 당할지, 정희는 몰랐다.

 

 

“이 여편네, 당장 문 열어. 문 닫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남편은 문 손잡이를 부러뜨릴 기세였다. 

 

정희는 어지러워 침대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남편은 문을 발로 차고, 뒤흔들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밖에서 찰랑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남편이 마스터키를 가져온 것이다. 

 

“아랫집 그놈, 벌써 창문으로 내뺐구먼. 이 여편네 이거 기운이 하나도 없네. 지 몸뚱이 지가 몰라? 늙어서 그 짓을 하니까, 몸이 견뎌나겠어? 제발 정신 좀 차려, 이 여편네야.” 

 

정희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사력을 다해, 남편에게 말했다. 

 

“영감, 구급차 좀 불러줘. 나 지금 큰일 난 것 같아.” 

 

남편은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양심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남편은 구급차를 불렀다. 정희는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수액을 맞으며 기운을 차리고 있는데, P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정희야. 너 아무래도 안되겠다. 지금 나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 요양원에 가든지, 딸네 집에 가든지 해야 할 것 같아.” 

 

정희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삼십 년을 살았는디, 어디를 가서 살어. 쓸데없는 소리 말어.” 

 

P가 정희의 말을 받아치려는 순간, 정희의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 지금 병원이야?” 

 

호주에 사는 큰딸, 미숙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아니, 그걸 어찌 알았데?” 

 

“P 아줌마한테 방금 전화 왔었어. 엄마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야지. 왜 말을 안 해?” 

 

“아니, 알아도 어찌한데? 호주에 있는데, 걱정만 하지. 별일 아니니께, 걱정하지 말어. 기운 차리면, 바로 집으로 들어갈 거여.” 

 

“안 돼, 엄마. 지금 미현이 보냈어. 엄마 데리러 갈 거야. 절대로 집으로 들어가지 마. 그러다, 엄마 죽어.” 

 

“쓸데없는 소리 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죽기는 누가 죽어.” 

 

정희는 미숙의 전화를 끊고, P를 쳐다봤다. P는 뭘 그리 빤히 쳐다보냐는 말투로 정희에게 말했다. 

 

“그래, 내가 말했어. 너라도 그랬을 거야. 고집 좀 그만 부려. 지금 미현이 온다고 했으니까, 미현이 따라 미숙이 집으로 가.” 

 

P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현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호주에 있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엄마, 괜찮아?”

 

 

미현은 엄마가 수액을 맞는 동안, 엄마 짐을 대충 챙겨올 생각으로 엄마의 집으로 갔다.

 

미현이 집에 들어서자, 아빠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네 엄마가 시켰냐?” 

 

“아니에요, 아빠. 엄마가 당분간 병원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짐 좀 챙기러 왔어요.” 

 

“엄마가 왜 아픈지 알지? 검사해봐라. 아마 몹쓸 병에 걸렸을 거야.” 

 

미현은 피가 거꾸로 솟는듯했다. 

 

“엄마가 무슨 몹쓸 병에 걸려요? 그만 좀 하세요, 이제.” 

 

“뭐 그런 병 있잖냐. 다른 사람에게서 옮는 병, 그거 약도 없다는데…. 늙어서 추하게 그게 뭔 짓인지, 원.”

 

미현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받쳤다. 멀쩡한 사람도 쓰러뜨릴 것처럼, 집 안의 공기가 탁했다. 

 

“엄마 없어도 밥 잘 챙겨드시면서, 운동 꾸준히 하세요. 제가 자주 들여다볼게요.” 

 

아빠는 여전히 신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올 것 없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가서 네 엄마한테도 전해라. 이참에 갈라서자고.”

 

미현은 혼란스러웠다. 

 

치매라고 하기에는 아버지가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

 

“딸들이 그러다 엄마 큰일 난다고, 얼른 그 집에서 나오라고 하도 극성을 부려서, 일단 큰 딸 집으로 나왔어요. 큰 딸이 사위랑 호주에서 사는데, 자기 없는 동안 집에 와 있으라고 해서요. 아따 근데, 여기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답답해 죽겄어요.” 

 

 #

 

“할머니!”

 

미현의 차에서 내리는 정희를 손녀 재희가 맞이해주었다. 호주에서 나고 자란, 재희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취업을 했다. 

 

호주에 사는 큰딸, 미숙은 정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재희가 챙겨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정희를 상담하게 된 시점도 그쯤이었다.

 

 

“상담을 신청하셨죠? 그래서, 연락드렸어요.” 

 

내가 말했다. 

 

“딸이 신청한 것 같아요.” 

 

정희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아, 본인이 아니라 따님이 신청하셨다고요?” 

 

“긍께,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딸이 고집을 부려가지고 어디 안 할 수가 있어야지요.” 

 

나는 참으로 난처했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상담을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상황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내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을 작정이었다. 

 

그때, 정희가 말했다. 

 

“딸이 그러데요. 목사님이 쓸데없는 말 하시것냐고. 가만히 이야기 들어보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실 거니까 일단 상담받아보라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따님이 그러셨어요?” 

 

“아따, 말도 마세요. 어찌나 설득을 하던지, 안 받는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니까요.” 

 

“딸이 저에 대해 뭐라던가요?”

 

“아, 젊어서 고생 많이 하셨다고. 엄마 이야기 잘 들어주실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정희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동안, 나는 본능적으로 큰딸 미숙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저 멀리 호주에서 엄마를 걱정하는 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에게 엄마를 부탁한 것이다.’ 

 

나는 정희와의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소식을 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목사님이시죠?” 

 

정희가 상담을 받기로 했다고 하자, 정희의 둘째 딸 미현이 전화를 걸었다.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미현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전해줬다. 그리고, 대화 말미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사실, 언니가 목사님에게 상담을 신청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아, 제 표현이 조금 이상했죠? 오해하지는 마세요, 목사님. 사실, 저나 엄마는 교회에 다니지 않거든요. 심지어, 엄마는 젊으셨을 때 불교셨어요. 언니만 교회 다녀요.” 

 

“아, 괜찮습니다.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상담 전에, 어머니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나는 내 생애 가장 어려운 내담자를 만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이 그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치매라고 할 수 있나요?” 

 

정희는 여러 번 반복해서 물었다. 나로서는 확답을 줄 수 없었다. 나는 딸들의 판단을 옳게 여겼고, 상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정희는 내가 딸들과 같은 답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말을 더욱 신뢰하는 듯했다. 

 

“그 양반이 그래서 그랬구먼요. 그런데, 같이 있으면 멀쩡하다니까요. 참 신기하네요.” 

 

나는 자신의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정희의 남편이, 왜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지 궁금했다. 

 

정희와 남편이 살아온 세월 동안, 외도와 관련된 이슈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희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더러운 짓은 그 양반이 했지요. 아따 그 양반이 젊었을 때, 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지, 말도 마요.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정희는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정희는 시골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논밭에서 일하는 동안, 정희는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동생들을 챙기느라, 결혼할 나이도 지나버렸다. 

 

스물일곱이 되어,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남자는 정희보다 두 살이 많았다. 대학까지 나오고, 성실하게 산다고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남자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명절이나 가끔 내려오는 정도였다. 다급해진 남자의 부모가 마을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정희를 소개하고 나선 것이다. 

 

정희는 은은하게 집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남자와 결혼한다면, 지긋지긋한 시골집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희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첫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외박을 했다. 정희가 이유를 물으면, 남편은 공무원 일이 다 그런 거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정희가 거세게 따져 물으면, 남편은 정희를 때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뱃속에 아이가 아니라면, 벌써 매서운 손이 날아왔을 것이다.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무식한 년이, 나랑 무슨 대화를 한다고. 입 다물어 이년아.” 

 

정희는 남편을 포기했다. 

 

 

“내가 제대로 배운 여자였으면, 그런 남편하고 살지도 않았을 거예요. 여우처럼 야무졌으면, 당장에 뛰쳐나왔을 텐데, 곰처럼 미련해서 참고 살았어요.” 

 

 

둘째 딸 미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집으로 남편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편의 내연녀였다.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회사 직원과 바람이 났다. 

 

정희는 남편이 그동안 만나왔던 여자들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남편이 오랫동안 한 여자를 만날 성격이 못된다는 것이다. 

 

전화를 건 여자 역시, 잠시 만나고 헤어질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희의 예상은 빗나갔다. 

 

남편은 그 여자와 살다시피 했다. 그의 아내는 정희가 아니라 내연녀였다. 

 

그러나, 내연녀는 정희처럼 순진하고 착한 여자가 아니었다. 

 

내연녀는 남편을 만나는 동안, 또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남편을 괴롭혔다. 

 

정희는 남편이 거실에 앉아 엉엉 우는 모습을 봤다. 내연녀가 다른 남자와 여행을 떠나, 며칠 동안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정희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 편으로 내연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여자가 정희 대신 남편에게 통렬하게 복수를 해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 여자에게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십 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버렸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남편은 내연녀와 부부처럼 살았다. 

 

“남편과 내연녀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가 되었나요?” 

 

나는 정희에게 물었다. 

 

정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한심한 듯 말했다. 

 

“그 여자가 남편 돈을 훔쳐서 달아났어요. 남편이 평생 모든 돈 전부는 아니었어도, 절반은 넘어요. 남편이 미친 사람처럼 돼서, 그 여자를 찾아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사람이 얼마나 한심해요. 대학 나오고 잘 배운 사람도 그리 어리석은 짓을 하데요.” 

 

#

 

남편의 기억은 정희의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젊은 날, 내연녀에게 받았던 배신감과 집착이 아내에게 투영된 것이다. 

 

정희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녀는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가냘픈 몸을 의자에 기대어 가만히 앉은 정희를 바라보며, 나는 연민을 느꼈다. 

 

“다 지난 일인데, 그 양반만 멀쩡하면, 그 동네 가서 살고 싶어요. 아따 딸네 집은 좋고 편하기는 한데, 도대체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내 친구 P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두통과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정희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친구 P를 만나러 가는 길이 몹시 긴장되었다. 혹시라도, 동네에서 남편을 만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둘째 딸 미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시골 친척 집에 장례가 나서 아버지가 급하게 시골에 내려가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희는 다급하게 친구 P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바퀴 달린 큰 가방 있어? 이따가 나올 때, 그것 좀 들고 나와. 병원에서 바로 딸네 집에 갔더니, 입을 것이 하나도 없었어. 그 양반 없는 참에 짐 좀 챙겨 나올 것이여.” 

 

 

정희는 친구 P를 시켜, 집안에 남편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정희는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세 차례 같은 번호를 눌렀지만,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남편이 비밀번호를 변경한 것이다. 정희는 억장이 무너졌다. 남편이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 

 

정희의 머릿속에서 남편이 내뱉었던 독한 말들이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남편의 기억은 비밀번호를 바꿀 만큼 또렷했던 것이다. 남편의 모든 독설이 진실처럼 다가왔다.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집에 내려가던 미현이 정희의 전화를 받았다. 문이 잠겨 있다는 말에 발끈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혹시 현관문 비밀번호 바꾸셨어요?” 

 

아버지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암, 그랬지. 그 여자가 내 돈을 얼마나 노리는 줄 알아? 나 없는 틈에 금고 열어서 돈 가지고 도망가면, 나는 다 늙어서 굶어죽으라고? 그건 안되지.” 

 

미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미현의 숨소리는 정희의 귀를 후벼팠다.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 있어요. 나는 도무지 그 양반이 이해가 안 돼요.” 

 

정희가 말했다. 

 

 

정희는 하루 종일 남편의 독설에 시달렸다. 정희가 침대에 누우면, 남편은 하루 종일 정희의 천장을 거닐며, 정희를 괴롭힌다. 물리적으로 남편을 떠났지만, 정서적으로 남편을 떠날 수는 없었다. 

 

정희에게 천장은 영화 스크린이다. 지난날의 상처와 고통이 편집 없이 상영된다. 정희에게는 천장을 벗어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가냘픈 몸을 침대에 파묻고,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나는 정희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무슨 힘으로 버텨오셨어요.” 

 

내가 질문하자, 정희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애들이지요. 애들이 잘 컸어요. 나는 무식했는데, 애들은 똑똑 허니 잘 배웠어요. 얼마나 착한지, 애들 때문에 마음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둘째 딸 미현이 시골 친척의 장례를 마치고, 정희를 찾아왔다. 기운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정희를 끌어안았다. 미현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정희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미현은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듯, 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는 있잖아.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감사해. 엄마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자꾸 눈물이 났다. 미현은 한 손으로는 엄마의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았다. 

 

“뭐가 고맙다는 말이여. 나 같은 엄마 만나서 고생만 했지. 엄마가 잘 배운 여자였으면, 너희들 데리고 나와서 험한 꼴 안 보여주면서 살았을 텐데,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랬지. 엄마는 못 배운 게 평생 후회여.” 

 

“아니야, 엄마. 엄마 덕분에 언니랑 나랑 잘 컸잖아. 이제, 엄마만 생각해.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미현은 한참 동안 엄마를 품에 안고 토닥거렸다. 정희의 머리통을 으깨려는 듯이 달려들던 두통도 잠시 멈칫했다. 

 

 

“호주에 사는 딸은 전화기만 들면 울어요. 울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매일 엄마 생각하면서, 교회 가서 기도한다고, 그러데요.”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정희가 처음으로 신앙적인 소재를 말한 것이다. 정희의 입 밖으로, 기도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딸이 엄마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할까요?” 

 

“글쎄요. 뭐 그냥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까요?” 

 

“그럴 거예요. 그 기도를 빼놓지는 않겠죠. 하지만, 딸은 거기서 멈추지 않을 거예요. 제가 목사인 거 아시죠? 딸이 무슨 기도를 할지 알려드려도 될까요?” 

 

정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도에 관한 가르침에 관심을 보인 것이 아니라, 딸이 무슨 기도를 할까 궁금했던 것이다. 

 

“제가 따님은 아니지만, 따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왔아요. 아마도 따님이 저를 어머니와 연결해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일단, 제가 살아온 이야기부터 짧게 전해드릴게요.” 

 

정희는 경청했다. 중간중간 눈물을 닦아내며,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진지하게 들어준 정희에게 고마웠다.

 

“아따, 젊은 양반이 고생을 많이 했네요. 생긴 건 멀쩡하구먼, 속은 많이 아팠겠어요. 어찌 그런 일을 겪고, 이런 일을 한데요.”

 

나는 정희의 따뜻한 목소리와 눈빛에 위로를 받았다. 그 순간의 정희는 동화책에 나오는 마음씨 따뜻한 할머니였다. 

 

“제가 딸이라면 이런 기도를 할 것 같아요.” 

 

정희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집중했다. 나는 정희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입술을 뗐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첫째 딸 미숙의 심정을 정희에게 전했다. 내 감정에 동요가 일어나 눈물을 쏟아지고, 정희가 함께 따라 울 때,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정희의 딸이 아니었다. 정희가 내 어머니였다. 

 

정작 나는 내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을, 내 목소리로 정희에게 전한 것이다. 

 

엄마, 미안해.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 

 

감정의 홍수였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살에 내 자아가 떠내려갔다. 정희를 혼자 남겨두고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상담자로서의 완전한 실책이었다. 

 

그때, 정희가 내 손을 붙잡았다. 

 

“목사님, 엄마도 알 거예요. 목사님이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엄마니까 알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마음 가져줘서, 고마워요.”

 

나는 후회했다. 정희의 나이 절반도 살지 못한 내가, 얇퍅한 상담의 기술로 무엇을 하려고 했던가. 

 

정희는 상처 입은 내담자였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어머니였다. 

 

미숙한 상담자로 잠시 역전이가 일어나 정희를 어머니로 여긴 순간에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동안 따뜻한 어머니를 만났고, 정희는 가족이라는 주관적인 울타리를 넘어 객관적으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무능한 상담자에게 베풀어진 과도한 은혜였다. 

 

정희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정희, 그리고 호주에서 나를 정희와 연결해준 미숙이었다. 

 

정희를 돌려보내고, 나는 창가로 먼 산을 바라봤다. 전화기를 손에 잡고 머뭇거렸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꾹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엄마. 뭐해? 그냥 전화 걸었어.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