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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내가 바보 천치인 줄 알지? 당신이 아랫집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운동은 무슨 운동, 새벽마다 그 남자하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정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남편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정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직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삼십 년 지기 친구, P를 산책로 입구에서 만났다.

 

“오늘도 영감이 욕하는 소리가 창밖으로 다 들리데? 밤낮 그 소리여?” 

 

P가 물었다. 

 

“나도 모르것어. 갈수록 심해져. 딸들이 병난 것 같다고, 요양원에 보내자는데, 다른 건 멀쩡한 사람을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것어. 내가 그냥 참고 살아야 제” 

 

정희가 말했다. 

 

두 사람은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정희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찌근거려서 산책을 하고 나면,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P는 당뇨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삼십 년 동안 매일 아침 만나 대화를 나누어도, 소재는 고갈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희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말했다. 

 

“이 여편네 얼굴 좀 봐. 그리도 좋았어? 늙어서 추하게, 쓸데없는 것에 맛 들여 가지고, 부끄러운 줄 알아!” 

 

정희는 남편을 무시하듯, 화장실을 향했다. 

 

남편은 정희에게 따라붙으며, 말했다. 

 

“암, 그래야지. 흔적은 확실히 지워야지. 내 집에 들어왔으니까, 그 더러운 놈의 흔적은 지우는 게 맞지.” 

 

나이 팔십이 넘어, 이렇게 추한 꼴을 당할지, 정희는 몰랐다.

 

 

“이 여편네, 당장 문 열어. 문 닫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남편은 문 손잡이를 부러뜨릴 기세였다. 

 

정희는 어지러워 침대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남편은 문을 발로 차고, 뒤흔들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밖에서 찰랑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남편이 마스터키를 가져온 것이다. 

 

“아랫집 그놈, 벌써 창문으로 내뺐구먼. 이 여편네 이거 기운이 하나도 없네. 지 몸뚱이 지가 몰라? 늙어서 그 짓을 하니까, 몸이 견뎌나겠어? 제발 정신 좀 차려, 이 여편네야.” 

 

정희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사력을 다해, 남편에게 말했다. 

 

“영감, 구급차 좀 불러줘. 나 지금 큰일 난 것 같아.” 

 

남편은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양심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남편은 구급차를 불렀다. 정희는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수액을 맞으며 기운을 차리고 있는데, P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정희야. 너 아무래도 안되겠다. 지금 나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 요양원에 가든지, 딸네 집에 가든지 해야 할 것 같아.” 

 

정희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삼십 년을 살았는디, 어디를 가서 살어. 쓸데없는 소리 말어.” 

 

P가 정희의 말을 받아치려는 순간, 정희의 전화기가 울렸다. 

 

“엄마, 지금 병원이야?” 

 

호주에 사는 큰딸, 미숙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아니, 그걸 어찌 알았데?” 

 

“P 아줌마한테 방금 전화 왔었어. 엄마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야지. 왜 말을 안 해?” 

 

“아니, 알아도 어찌한데? 호주에 있는데, 걱정만 하지. 별일 아니니께, 걱정하지 말어. 기운 차리면, 바로 집으로 들어갈 거여.” 

 

“안 돼, 엄마. 지금 미현이 보냈어. 엄마 데리러 갈 거야. 절대로 집으로 들어가지 마. 그러다, 엄마 죽어.” 

 

“쓸데없는 소리 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죽기는 누가 죽어.” 

 

정희는 미숙의 전화를 끊고, P를 쳐다봤다. P는 뭘 그리 빤히 쳐다보냐는 말투로 정희에게 말했다. 

 

“그래, 내가 말했어. 너라도 그랬을 거야. 고집 좀 그만 부려. 지금 미현이 온다고 했으니까, 미현이 따라 미숙이 집으로 가.” 

 

P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현이가 병실로 들어왔다. 호주에 있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엄마, 괜찮아?”

 

 

미현은 엄마가 수액을 맞는 동안, 엄마 짐을 대충 챙겨올 생각으로 엄마의 집으로 갔다.

 

미현이 집에 들어서자, 아빠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네 엄마가 시켰냐?” 

 

“아니에요, 아빠. 엄마가 당분간 병원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짐 좀 챙기러 왔어요.” 

 

“엄마가 왜 아픈지 알지? 검사해봐라. 아마 몹쓸 병에 걸렸을 거야.” 

 

미현은 피가 거꾸로 솟는듯했다. 

 

“엄마가 무슨 몹쓸 병에 걸려요? 그만 좀 하세요, 이제.” 

 

“뭐 그런 병 있잖냐. 다른 사람에게서 옮는 병, 그거 약도 없다는데…. 늙어서 추하게 그게 뭔 짓인지, 원.”

 

미현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받쳤다. 멀쩡한 사람도 쓰러뜨릴 것처럼, 집 안의 공기가 탁했다. 

 

“엄마 없어도 밥 잘 챙겨드시면서, 운동 꾸준히 하세요. 제가 자주 들여다볼게요.” 

 

아빠는 여전히 신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올 것 없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가서 네 엄마한테도 전해라. 이참에 갈라서자고.”

 

미현은 혼란스러웠다. 

 

치매라고 하기에는 아버지가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

 

“딸들이 그러다 엄마 큰일 난다고, 얼른 그 집에서 나오라고 하도 극성을 부려서, 일단 큰 딸 집으로 나왔어요. 큰 딸이 사위랑 호주에서 사는데, 자기 없는 동안 집에 와 있으라고 해서요. 아따 근데, 여기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답답해 죽겄어요.” 

 

 #

 

“할머니!”

 

미현의 차에서 내리는 정희를 손녀 재희가 맞이해주었다. 호주에서 나고 자란, 재희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취업을 했다. 

 

호주에 사는 큰딸, 미숙은 정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재희가 챙겨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정희를 상담하게 된 시점도 그쯤이었다.

 

 

“상담을 신청하셨죠? 그래서, 연락드렸어요.” 

 

내가 말했다. 

 

“딸이 신청한 것 같아요.” 

 

정희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아, 본인이 아니라 따님이 신청하셨다고요?” 

 

“긍께,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딸이 고집을 부려가지고 어디 안 할 수가 있어야지요.” 

 

나는 참으로 난처했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상담을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상황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내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예의 바르게 전화를 끊을 작정이었다. 

 

그때, 정희가 말했다. 

 

“딸이 그러데요. 목사님이 쓸데없는 말 하시것냐고. 가만히 이야기 들어보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실 거니까 일단 상담받아보라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따님이 그러셨어요?” 

 

“아따, 말도 마세요. 어찌나 설득을 하던지, 안 받는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니까요.” 

 

“딸이 저에 대해 뭐라던가요?”

 

“아, 젊어서 고생 많이 하셨다고. 엄마 이야기 잘 들어주실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정희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동안, 나는 본능적으로 큰딸 미숙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저 멀리 호주에서 엄마를 걱정하는 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에게 엄마를 부탁한 것이다.’ 

 

나는 정희와의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소식을 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목사님이시죠?” 

 

정희가 상담을 받기로 했다고 하자, 정희의 둘째 딸 미현이 전화를 걸었다.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미현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전해줬다. 그리고, 대화 말미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사실, 언니가 목사님에게 상담을 신청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아, 제 표현이 조금 이상했죠? 오해하지는 마세요, 목사님. 사실, 저나 엄마는 교회에 다니지 않거든요. 심지어, 엄마는 젊으셨을 때 불교셨어요. 언니만 교회 다녀요.” 

 

“아, 괜찮습니다.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상담 전에, 어머니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나는 내 생애 가장 어려운 내담자를 만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이 그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치매라고 할 수 있나요?” 

 

정희는 여러 번 반복해서 물었다. 나로서는 확답을 줄 수 없었다. 나는 딸들의 판단을 옳게 여겼고, 상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정희는 내가 딸들과 같은 답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말을 더욱 신뢰하는 듯했다. 

 

“그 양반이 그래서 그랬구먼요. 그런데, 같이 있으면 멀쩡하다니까요. 참 신기하네요.” 

 

나는 자신의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는 정희의 남편이, 왜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지 궁금했다. 

 

정희와 남편이 살아온 세월 동안, 외도와 관련된 이슈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희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더러운 짓은 그 양반이 했지요. 아따 그 양반이 젊었을 때, 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지, 말도 마요.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정희는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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