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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숨기고 괜찮은 척 살아왔다.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목사가 되었고, 상담자가 되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석 달 동안 안아주지 못했다. 내가 아기를 품에 안으면 아기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이를 사랑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나 때문에 아내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교회에서는 열정 있는 목사처럼 행동했지만, 그녀에게는 일 중독자 남편에 불과했다.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나는 화가 나면 소리치고 위협했다. 괜찮은 척 버티며 살아왔지만, 결혼 3년 만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이혼을 결심했고, 양가 부모님에게 알렸다. 내 안의  상처는 덧나 고름으로 범벅이 되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 내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었다. 지울 수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 아버지, 교회에 지나치게 몰두한 어머니, 폭력, 학대, 우울증, 자살충동, 방황한 청소년기.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내겐 오직 현재만이 중요했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고통스런 과거를 살아왔지만, 아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내게 결혼이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선포하는 선언식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허름한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사역했던 교회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정적인 지원이 부족했다. 월세 내고, 아이 키우고, 신학대학원에 다니려면 돈이 필요했다.

 

   낮에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견디고 견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어느 날, 아내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월세가 다섯 달이나 밀렸어. 기저귀는 떨어진 지 오래고, 분유는 어제 떨어졌어.”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아내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여보, 내가 미안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그러나 당시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아내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 나도 최선을 다하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가 없어!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다 끝났어! 더 이상 못하겠다고!”

 

   내 안의 상처가 미치도록 아파서 아내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때 하필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한 마리 짐승처럼 보였다. 나 자신과 약속했었다. 절대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그런데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내 모습에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울고 있는 아내를 내버려둔 채 집을 뛰쳐나왔다.

 

   사흘 밤낮을 차 안에서 지냈다.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기도도 할 수 없었다. 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없었던 탓인지 온몸에 열이 났다. 식은땀이 몸을 적셨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한 달 전, 어머니로부터 이혼의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 꼴이 우스웠다.

 

‘내 부모의 결혼이 끝난다. 내 결혼도 끝나간다….’

 

   아버지가 이메일로 A4 용지 60장이 넘는 긴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는 살아온 인생에 대해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시절과 사춘기 등.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어머니가 친가 쪽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말이 전부였다. 아버지 입을 통해 직접 전해들은 건 없었다.

 

   아버지가 직접 써내려간 편지를 읽으면서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가 불쌍했다. 처음으로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 역시 상처의 희생자라는 것, 상처 때문에 희생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것을.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희생자일 수 없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외모뿐만 아니라 상처마저 닮아버렸다.

   내 상처를 직면하고, 일어서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편지를 종이로 출력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쇠문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아내가 문을 열었다. 나는 말없이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섰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종이 뭉치를 식탁에 내던지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읽고 싶으면 읽고, 버리고 싶으면 버려.”

 

나는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여보, 제발 버리지 말고 읽어주세요.’

 

   아내와 눈을 마주할 수 없어서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신경이 예민해지니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아내가 식탁으로 걸어가는 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 앉는 소리,  모두 생생하게 들렸다. 한 장씩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다 읽은 후, 아내가 무슨 말을 할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왜 읽으라고 한 건지 모르겠네.”

 

‘이렇게 말하면 어쩌지, 그러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하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순간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내지 않고 가만히 눈물을 흘리는 소리. 다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방문이 열렸다. 아내가 다가와 이불을 들추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범벅인 얼굴로 그녀가 내게 말했다.

 

“여보, 살아줘서 고마워.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견뎌줘서 고마워.”

 

   마음속에서 번개가 치고, 폭풍이 일어났다. 아내의 눈물이 내 얼굴에 떨어져, 내 눈물과 섞였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 품에 안겨 아기처럼 밤새도록 울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태어났다.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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