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울음소리에 온 가족이 잠에서 깼다. 부모님은 놀라서 단칸 방의 불을 켰다. 동생은 이것 보라며, 자기 손가락을 가리켰다. 동생이 자는 사이에 생쥐가 손톱을 갉아먹은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상황은 그럴만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목회를 했다. 흉가처럼 쓰러진 집을 주워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마당에 잡초가 어린 시절 내 키만큼 컸다. 낫으로 베면서 길을 내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흙으로 만든 집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문짝은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 스티로폼을 깔고 먹고 자고 했다.

     부모님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집 정리만 하셨다. 벽에 난 구멍을 흙으로 메우고, 문짝을 달고, 장판을 깔아서 사람 사는 집처럼 꾸몄다. 내 나이 12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머니가 방을 쓸고 닦을 때마다 쥐똥을 치웠다. 가족이 이틀 삼일 집을 비우고,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는 가관이었다. 방에 쥐똥, 쥐 오줌이 여기저기 난장판이었다. 어머니가 급하게 쓸고 닦으면 쥐똥이 어린아이 손으로 한 움큼이었다. 

     당시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질병이 마을에 돌았다. 쥐에게서 옮는 질병이고, 일단 병에 걸리면 고열, 두통, 구토에 시달리다가 심각하면 내장에서 출혈이 일어나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마을 사람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동네 친구에게 얼핏 들었는데, 그다음부터는 동네 어른들이 마을을 소독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어머니도 아이들 걱정에 마음이 급하셨는지,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하셨다.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모르지만, 며칠이 지나자 빨간색 프라이드 한 대가 집 앞에 섰다. 키가 작고 다부진 아줌마 한 분이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차에서 내렸다. 여주 보건소에서 일하는 분이라고 했다.

     여주는 내가 살았던 집에서 한 시간도 넘는 거리였다. 유행성 출혈열 예방 접종을 놔준다고 한 시간도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오신 것이다. 유행성 출혈열은 3번에 걸쳐 예방 접종을 해야 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번거로운 수고를 세 번 반복했다.

     쥐들은 동생의 손톱을 갉아먹고, 똥오줌을 싸면서 집을 난장판을 만들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 아주머니 덕분에 살아남았다. 여주 보건소에서 일하는 아주 믿음 좋은 집사님이라고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집사님은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 집에 찾아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전해주고 가셨다. 집사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면, 어린 마음에 아침부터 설렜다. 수없이 찾아와 도와주셨지만,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목사가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목사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목사 안수식에서 중요한 순간은 목사 가운을 입을 때다. 목사 가운을 입을 때, 뭔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가운을 입으면서, 고개 숙여 울었다. 이제 정말 목사가 된 건가 싶었다. 가운 하나가 뭐라고, 정말 그랬다.

     목사 안수식이 끝나고, 나는 목사 가운을 선배에게 돌려줬다. 내가 입고 감격한 목사 가운은 내 것이 아니었다. 당시 목사 가운이 20-30만 원 했는데, 나는 돈이 아까워 목사 가운을 사지 않았다. 목사 안수식에서 한 번 입고, 두 번 다시 입을 일이 없는데 그런 거금을 주고 가운을 산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빌려 입은 목사 가운이라도 감동은 충분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아내도 나도 택배를 시킨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보낸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잘못 배달된 게 아닌가 싶어 주소를 자세히 살폈다. 택배 위에 큼지막하게 내 이름이 쓰여 있었고, 주소 역시 우리 집이 맞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택배를 뜯었다. 그 안에는 내 몸에 딱 맞는 목사 가운이 들어있었다.

     혹시나 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서툴렀다. 내색 않고 알고만 있겠다고 사정했더니, 힘들게 말해주셨다. 목사 가운을 보내주신 분은 여주 보건소 집사님이셨다.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했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고, 옷을 정리하는데 작은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목사님, 축하드려요. 어린 시절의 목사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도했어요.”

 

     나는 아내 몰래 베란다로 숨어들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가. 내가 뭐라고 이런 날 기억해주셨나. 하나님은 내가 목사가 된 무렵에,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잊을 수 없는 문장을 새겨 넣으셨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그나마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건, 대가 없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베푸신 은혜다.

     내가 받은 목사 가운은 귀하게 쓰임 받았다. 내 후배 세 명이  내가 빌려준 목사 가운을 입고 줄지어 목사가 되었다. 보건소 집사님은 내게 생색한 번 낸 적 없지만, 나는 철이 없어서 생색을 냈다.

 

     “사연 있는 목사 가운이야. 소중히 다뤄.”

 

     두 번째 목사 가운을 빌려줬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목사 가운을 빌려 간 사모님이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다리미 온도를 조절을 못해서 가운 한 군데가 눌어붙었다고 했다. 후배 목사 부부가 적지 않게 마음고생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아차 싶었다.

     괜찮으니까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아내가 사모님께 전부 전했다. 지혜로운 아내와 살아서 혜택이 많구나 생각했다. 며칠 뒤, 후배가 저 멀리서 목사 안수를 받는데, 감격이 밀려왔다. 후배가 살아온 삶을 알아서 그랬다. 고생스럽게 살았다.

     나는 가끔 목사 가운을 꺼내본다. 힘든 날은 입어본다. 내가 목사다, 그런 마음은 없다. 다만, 나는 기억하고 싶다. 내게 과분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말이다. 한쪽이 눌어붙은 목사 가운은 내게 딱 맞다. 상처 입은 나를 닮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흠 없는 옷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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