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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 기억나?”

 

문득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고, 낯선 목소리였다.

 

“잘 모르겠어요. 누구시죠?”

 

애써 친절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실수할까 걱정스러웠다.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있다가 서운하게 한 일이 종종 있었다.

 

“나 기억 못 하나 보네. 나 민혁이야. 정민혁.”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내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감듯이, 온 세상이 삐리릭 거리며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의 목소리가 나를 십 년 전 어느 날로 잡아당긴 것이다.   

 

#

 

“너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본 적 있어? 난 본 적 있거든. 정말 무섭더라.

 

내 눈앞에서, 아빠가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어. 며칠 전부터 이상하더라고. 갑자기 나한테 통장이랑 도장을 주면서 비밀번호를 알려줬어. 뭔가를 결심한 눈빛이었고.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마당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어. 깜짝 놀라 뛰어나갔지. 문을 열고 보니까, 아빠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틀거리고 있더라고.

 

아빠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빠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어. 아빠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눈을 감지 않았어. 그렇게 차갑게 식어갔지. 그때 나는 얼어붙어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어. 눈물조차 나지 않더라고.

 

한참 동안 멍하게 서 있다가, 아빠에게 천천히 다가갔어. 내 손으로 아빠의 얼굴을 쓸어내렸어. 아빠의 눈을 감겨주려고. 시뻘겋게 충혈된 아빠의 눈이 무섭기도 했고, 마지막까지 날 바라보던 아빠의 눈이 슬프기도 했고. 아빠의 눈을 감겨주는데, 눈물이 울컥 나더라고.”

 

통장의 돈은 백만 원 남짓이었다. 중학생 용돈으로는 큰돈이었을지 몰라도, 소년 가장의 생활비로는 물 한 방울처럼 적은 돈이었다. 석 달 만에 통장의 모든 돈이 사라졌다.

 

시골 마을, 인심은 좋았다. 민혁이가 불쌍하다며, 마을 어른들이 먹을 것이 가져다줬다. 그러나, 그 또한 잠시뿐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민혁이를 오롯이 돌볼 수 없었다. 마을 이장님은 기관을 알아봐 주었다.

 

마땅한 기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옆 마을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식이 이장님 귀에 전해졌다. 이장님은 한 마디 예고도 없이, 옆 마을 어른과 민혁이를 찾아왔다. 민혁이는 대충 짐을 싸서, 그 아저씨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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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아, 이번에 조사 나오면, 보일러가 고장 나서 네 집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해. 그러면, 보상금 나오거든.”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민혁이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날 밤, 아저씨 가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자기들끼리 외식을 했다.

 

민혁이는 창고처럼 간단히 꾸며진 공간에 우두커니 혼자 남겨졌다. 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민혁이는 밖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차 문이 열리자, 숯불에 구워진 고기 냄새가 민혁의 콧구멍을 찔렀다. 차에서 흘러나온 진한 고기 냄새는 매정했다. 민혁의 몸에 밴 라면 냄새를 한 꺼번에 몰아냈다.

 

자기 이름으로 들어오는 지원금을 아저씨가 가로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혁이는 그 집을 나왔다. 석 달 만이었다.

 

갈 곳이 없어진 민혁이는 여기저기 전전했다. 그러다, 시내의 작은 교회 목사님을 만났다.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머물 곳을 찾은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민혁이는 항상 밝았다. 책을 좋아했고, 글을 잘 썼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친구들을 웃겼다. “훈민정음 2”라는 민혁이의 노트가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민혁이는 한글을 조합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친구들은 그 문자를 발음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아무도 “훈민정음 2”에 기록된 문자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다. 민혁이는 새로운 문자의 창시자였다.  

 

나는 그런 민혁이가 신기해 보였다. 운동장 귀퉁이에 앉아 과자를 까먹으면서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민혁이는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에서 제일 큰 서점을 열고 싶다고 했다. 4층으로 지어서, 층마다 다르게 꾸미고,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했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민혁이는 세계를 동경하는 듯했다. 나는 꿈마저도 창의적인 민혁이가 부러웠다.  

 

그 후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민혁이는 일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산업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날 이후, 민혁이와의 소식은 끊겼다.

 

#

 

“야, 너 그럼 목사 되는 거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혁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를 현재의 시간으로 돌려놓았다.

 

“어쩌다 그렇게 됐네.” 나는 피식 웃었다.

 

민혁이의 기억이 그 당시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민혁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내가 겪은 일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하는 종교의 언어는 어쩌면 그에게 “훈민정음 2”처럼 낯설게 들렸을지 모른다.

 

민혁이는 결국 통화하게 된 목적을 말했다.

 

“야, 사실 내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 같거든. 오래전부터 네가 생각나더라. 너를 만나면 왠지 대답을 해줄 것 같아서. 우리 시간 내서 잠시 볼 수 있을까?”

 

물론이었다. 나 역시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민혁이를 보고 싶었다. 민혁이는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나는 바로 그다음 날, 민혁이를 찾아갔다.

 

#

 

민혁이가 있던 곳은 도봉산역 근처 구석진 판자촌이었다. 주유소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신발을 벗으면 곧바로 방이었는데, 한 사람이 누우면 머리끝과 발끝이 벽에 닿을 지경이었다. 한 사람이 누워서 양쪽으로 팔을 벌릴 수 없을 만큼 폭이 좁았다.

 

좁은 방에 들어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민혁이가 담배를 꺼내 깊이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가슴속에 간직한 비밀을 연기로 건져올리듯, 그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토끼 가면이 잊혀지지 않아. 그날 밤 끔찍한 일이 있었거든. 그 사건 이후로, 뭔가 잘못된 것 같아.”

 

#

 

“아빠가 내 앞에서 농약을 먹고 눈앞에서 죽은 이후로 내가 지낼 곳이 없었어. 사기꾼 같은 놈한테 이용당하다, 시내에 어떤 교회 목사님을 만났지.

 

목사님이 친절하시더라고. 교회 구석진 곳에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나보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라고 했어.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었겠어. 이래저래 고맙더라고.   

 

일주일이 지났나. 밤에 자고 있는데,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교회에 기도하러 왔나 보다 생각했지. 뒤돌아 누워 자려고 하는데, 방문이 열리는 거야.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어.

 

덩치 큰 남자가 서 있더라고. 토끼 가면을 쓰고 있었어. 그 남자가 날 덮쳤어. 지금이라면, 볼펜이라도 들어서 그 사람 목이라도 찔렀을 텐데, 그때는 너무 무섭기만 했어. 뒤돌아 울면서, 끔찍한 시간이 끝나기만 바랐지.

 

다음 날 아침, 바로 그곳을 나왔어. 그대로 있다가는 똑같은 일을 당할 것 같아서.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알아? 밤마다 토끼 가면이 떠오른다는 거야. 밤이 되면, 생각나. 불을 끄고 잘 수가 없어. 저기 저 문이 갑자기 열릴 것 같거든. 밤이 되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자국 소리도 무서워.”

 

내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숨기려 눈을 비볐다. 민혁이는 방 안에 가득 찬 담배 연기 때문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작은 창문조차 달려 있지 않는 방이었다. 손으로 휘휘 저어 연기를 내보내면서, 민혁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여자를 사귀어 봤거든. 당연히, 같이 자 본 적도 있지. 생각보다 별로였어.”

 

민혁이는 양쪽 팔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렸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상의를 걷어올려 등짝을 드러냈다.      

 

팔부터 시작된 문신은 어깨를 타고 등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날카롭게 발톱을 드러낸 용이, 화가 난 듯 코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자가 그렇게 좋지 않으니까, 엄청나게 불안한 거야. 야, 이거 뭐가 잘못됐다. 그래서, 몸에 그림을 좀 그렸어. 나 남자다, 뭐 이런 거?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거든. 그게 아니더라고. 문신을 이렇게나 크게 그렸는데도 불안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도로 한가운데를 미친놈처럼 달렸지. 한참을 뛰다가,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어. 손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야. 문신한 자리에서 땀처럼 피가 나더라고. 맨살을 바늘로 찔러대니 그런 거지.”

 

민혁이의 말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지하철 막차가 올 시간이 돼서야, 나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역까지 날 바래다주면서, 민혁이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있잖아. 너를 만나면, 마음이 참 편했어. 오늘도 그래. 해결된 건 없지만, 오늘 하루는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민혁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는 잠시 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민혁이는 기뻐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좋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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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이에게 가는 길은 짧지 않았다. 나는 상록수역에서 지하철을 탔고, 도봉산역에서 내렸다. 거의 두 시간 거리였다. 민혁이를 보러 가는 날에는, 하루를 온전히 비워야 했다.

 

나 역시 계속되는 아르바이트와 대학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곤한 상태였다. 시간과 돈이 빠듯했지만, 민혁이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민혁이를 만나면, 먼저 짜장면을 사줬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했다. 그에게는 “훈민정음 2”라고 여겨질 만큼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지만, 나는 우정이라는 강력한 신뢰의 다리 위로 끊임없이 복음을 실어 날랐다.

 

어느 날, 심각해진 민혁이가 담배를 입에 물고, 성경을 뒤적거렸다. 그의 손이 빨라지면서, 담뱃재가 성경에 떨어졌다.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으로 대충 털어내면서 말했다.

 

“여기 나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냐? 너는 이게 믿어지냐?”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믿으니까, 믿어보라고 말하지 않겠어.”

 

민혁이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믿는 거 맞아?”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나는 엄마 몰래 사탕을 훔쳐 먹은 아이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당시, 나는 신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신앙의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열여섯 살에 회심하고, 성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단순하게 믿었던 나는,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면서, 다른 종교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려고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내가? 아니야. 내가 못 믿는 걸 어떻게 너한테 말해.”

 

민혁이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내뱉으며 말했다.

 

“가면 벗어, 자식아.”

 

그 순간, 나는 민혁이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를 앞뒤로 사정없이 흔들면서, “어디서 감히, 그딴 놈과 나를 비교해! 내가 그딴 놈이랑 같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민혁이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라. 다음부터는 다른 이야기하자. 성경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나는 그날 밤, 무기력하게 민혁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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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지나고, 나는 민혁이를 다시 찾아갔다. 지난번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확신 있게 믿게 되면, 다시 찾아올 테니, 당분간 잘 지내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민혁이는 주유소에 없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민혁이 어디있냐”라고 물었다. 직원은 밀려드는 차를 혼자 감당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몰라요. 며칠째 말도 없이 안 나와. 일 좀 제대로 하라고 말해주세요. 힘들어 죽겠어요.”

 

불길했다. 민혁이의 집으로 냅다 뛰었다. 도착하자마자, 그의 집 문을 거세게 열었다.

문을 열고, 내가 마주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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