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갔어요.

남편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신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남편은 무릎 꿇고 빌면서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말하지만 

남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어찌할 바를 몰라서 기도하는데,

예수님이 저보고 용서하고 참으래요. 

 

“나는 너를 용서했는데 

너는 왜 남편을 용서 못 하니?”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요. 

 

모든 신뢰가 무너졌어요.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남편을 용서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당신이 남편을 용서하기 전에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풀기를 바라요. 

 

예수님이 그러시던가요. 

나는 너를 용서했는데, 

너는 왜 남편을 용서 못 하냐고.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예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잠시 멈춰서 고민해봐요, 우리. 

 

당신과 내가 믿는 

예수님은 같은 예수님이에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죠.  

 

하지만, 당신과 내가 만나는 

예수님은 서로 다를 수 있어요.

 

상처와 결핍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주거든요. 

 

당신은 당신의 상처로, 

나는 나의 상처로, 

예수님이 비틀어져요. 

 

상처와 결핍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을 오해해요. 

 

“나는 너를 용서했는데 

너는 왜 남편을 용서 못 하니?” 

 

아니요, 

예수님은 상처받은 당신을 

비난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당신의 감정을 수용해 주시고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원하세요.

 

용서는 천천히 하세요. 

급할 필요 없어요. 

남편이 잘못했잖아요. 

 

예수님과의 오해는 빨리 푸세요. 

예수님께 용서 못 한다고 비난받으면 

어디 가서 아프다고 울어요. 

 

사랑 먼저 받으세요. 

예수님께 사랑받고 또 사랑받으면 

언젠가 용서할 수 있을 거예요. 

 

용서는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사랑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결단이에요.

 

당신의 결단으로 

남편이 뉘우치기를 바라요.

두 번 다시 같은 일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요. 

 

예수님은 당신의 고통을 아세요. 

당신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실 거예요. 

 

기억하세요. 

사랑이 먼저, 용서는 나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