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애들한테 욕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F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여섯 살 남자 아이가 있다. 둘째 아이가 산만해서 사람들이 집에 오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손님 어깨에 발을 올리면서 목말을 태워달라고 말하거나 먹는 음식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친다. 그녀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더 힘들어요. 자주 싸우거든요. 성격이 안 맞아요. 연애기간도 짧았고,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확신도 없고….”

 

        그녀는 남편이 다혈질이라고 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윽박질렀다.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퇴근해서 육아를 돕지 않고, 혼자 씻고 자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남편에게 막내를 씻겨 주고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아이를 씻긴다. 아내는 불안하다. 아이는 눈에 물이 들어갔다며 징징거리고, 남편은 “사내자식이 눈에 물이 들어갔다고 우냐”고 짜증을 낸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나와! 내가 씻길게. 아이 하나 씻기면서 짜증내고 그래. 애 상처 받아.”

남편이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잘 씻기고 있었어.”

“당신 매번 그러잖아. 뭐 부탁하면 짜증내고. 나한테 짜증 못 내니까 애들한테 그러는 거잖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 좀 씻겨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누가 힘들대? 나는 당신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애 앞에서 나 무시하는 게 이해가 안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도 날 무시하잖아.”

“똑바로 하면 되잖아. 애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아빠라는 사람이 툭하면 애들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됐어. 그만해. 당신만 옳지. 난 나쁜 사람이고.”

“자기가 그렇게 느끼나 봐.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은 4개월. 짧았다.

“제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났어요.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결혼했죠. 부모님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거든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편은 자상하고 따듯한 남자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데 사소한 일로 화를 내서 모든 것을 망친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내는 삼남매 중 첫째였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를 무시했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이 잘못하면 아버지는 그녀를 혼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아버지의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내성적인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면서 견뎠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나도 네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네가 싫어.”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리면서 돌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지만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팠다.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장을 봤다. 아버지가 혼내고 때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욕을 썼다. 아버지가 정말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랬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일기장에는 뭐든 쓸 수 있는 거죠?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요.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자기 딸한테 ‘나도 네가 싫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란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남자라면….’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줬다. 처음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 그에 대한 고마움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던진 말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남편 역시 깨달아야 했다. 그의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그녀는 남편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아버지 역할에 대해 보고 느끼고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아빠로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쓰러워요. 그를 도와줘야 하는데 제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남편은 내 아버지가 아닌데 왜 이렇게 남편 말에 민감할까.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낫거든요. 가끔 아버지가 없었던 남편이 부러워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상처 받고 사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상처를 인식하면 상처는 치유된다. 인지는 감정,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상처를 인지하는 순간,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도식화해서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면, 인지감정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변화를 위한 첫 단계는 상처를 인지하는 것이다. 상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처에 다가갈 수 없도록 왜곡된 신념이 겹겹이 싸여 있어 상처를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상처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왜곡된 신념을 하나씩 풀어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게 대처할 것이다.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왜 쳐다보냐며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볼 때, 기분이 나빠졌다면 마음 어딘가에 왜곡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결정한다. 감정을 망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계속 쳐다보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진실을 보려면 왜곡된 신념을 걷어내야 한다. 왜곡된 신념을 변화시키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지나가는 사람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혹시 아는 사람 아닌가 하고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새롭게 들어오면 인지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 날 무시하는 것이 아니구나. 시력이 좋지 않아 쳐다본 거네.’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그 사람 아니에요. 길 조심히 걸으세요.”

 

        상처가 만든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망치고, 망가진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만든다. 사람은 진실에 의해 상처입지 않는다. 왜곡된 신념으로 상처입고 파괴된다. 감정이 망가진 채, 잘못된 행동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무능력, 폭력과 학대. 그녀는 상처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망가진 관계가 남편에게서 재현된다고 생각할 때,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일기장을 훔쳐본 날, 솥뚜껑 같은 아버지 손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음은 입술보다 부드럽고 약하다. 살짝 때려도 찢어져서 피가 난다. 그녀의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일을 다시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빠가 제 책상을 청소해주려고 했나 봐요. 그날 일기장을 숨기지 못했어요. 책상 위에 있었죠. 딸의 노트를 보고 싶었나 봐요. 노트를 펼치는 순간, 그 안에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거죠. 딸이 아버지 욕을 했으니까요.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거예요.

        노트를 손에 들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화나서 참지 못했다면 학교에서 돌아온 즉시 저를 때렸겠죠. 그날 맞지는 않았어요.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잃은 듯 절망적이었어요.

        아, 잠깐만요. 그건 아버지가 제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한 말일지 몰라요. ‘나도 내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내가 싫어.’ 아니에요. 분명히 제가 싫다는 말이었어요. 아, 혼란스럽네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그날 아버지가 이불에 누워 우셨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아버지는 딸에게 상처 준 가해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 큰형이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사업을 했나 봐요. 사업이 망했죠.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할머니는 쓰러지고, 큰형은 도망가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집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대요. 가족이 다 흩어졌고, 아버지는 고아원 같은 데서 살았다고 했어요. 막노동을 시작했고,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무리하게 일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뜻대로 안 되니까, 술에 의지하신 거죠….”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전가된다. 아픈 상처가 건드려질수록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은 상처받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된다.

        남편의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다행히, 하지만 남편은 분노조절 장애,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나면 짜증을 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분노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 문제다. 아내는 남편과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 남편은 분노를 적절히 다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그녀의 상처가 부부관계에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절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보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니까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매일 잔소리만 하니까 정떨어졌을 거예요.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잘못 알고 있네요. 아내는 사랑스러워요. 제가 아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 미안하죠. 못된 성격 고치는 것도 힘들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어렵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조금만 방법을 바꿔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힘드니까 서로 노력해야죠.”

        남편은 아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덩치 큰 아내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