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이 남자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했어요. 결국 석 달 만에 결혼했죠.”

 

      M은 서른두 살이고, 세 살 된 아들의 엄마이며 현재 별거 중이다. 그녀는 5년 전 남편을 만났다. 친구 소개로 만난 그는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평소 내성적인 자기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는 그에게 끌렸다. 두 사람은 연애 3개월 만에 결혼했다.

 

      남편은 유통마트 지점 하나를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신혼 초에는 출퇴근 시간이 분명했다. 그런데 출근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알아서 하겠지, 남편을 믿었다.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남편의 통화를 엿듣게 되었다.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이 해외여행을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임신했기 때문에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친구와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 친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필리핀 여행을 가려고 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남편에게 집요하게 물었고, 필리핀에 성매매 여행을 떠나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살림을 던지면서 울부짖었고, 남편은 집을 나갔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아내는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외장하드를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외장하드 안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야한 영상이 가득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본능적으로 잘못된 결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정이 뚝 떨어졌다. 아내는 법률사무소를 찾아가 이혼을 준비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아내는 용서할 수 없었지만 뱃속에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성 중독 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남편은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일주일에 여러 번이었다.

 

      아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 찾아갔다. 그런데 남편이 두 달 전에 사직서를 내고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을 현금화해서 가지고 있던 통장을 결혼 초에 남편이 애원하면서  달라고 했다. 거절하기 힘들었던 아내는 그에게 통장을 맡겼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인근지역에 대형 마트를 인수하기 위한 계약을 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했다. 그녀가 남편을 찾으려고 수소문 해봤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사기를 당해서 돈을 전부 날려버리고 잠적했다. 그녀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시어머니를 찾아갔다. 시어머니는 잠적한 남편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이해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어디 숨어서 뭘 하고 있는지 시어머니는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변호사를 다시 찾아갔다. 이혼 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때, 남편을 소개시켜 준 친구가 찾아왔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남편이 돌아온 다음에 말을 들어보고 이혼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뱃속에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고.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옆에서 도와줄 테니 이혼하지 말고 그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변호사는 법적인 절차를 진행해야 남편도, 돈도 찾는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친구 말을 따랐다. 당시에는 그 친구가 남편과 한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남편은 친구에게 돈을 보냈고, 친구는 남편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었다.

 

      그 사이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먹여 살리려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 시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다. 술을 끊지 않으면 아이를 다시는 보여주지 않겠다고.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저는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엄마가 공주처럼 키웠거든요. 대학에 다닐 때, 남자친구가 ‘너는 사람 같지 않고 인형 같아. 엄마의 인형. 엄마 없이 아무 것도 못하잖아. 말끝마다 엄마, 엄마, 엄마!’라고 말했어요. 처음 그 말을 듣고 충격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 말을 부인할 수 없었거든요.

 

      그랬던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 제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어요.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었죠. 누굴 원망하겠어요? 남편을 선택한 건 제 자신이니까요. 당시에는 너무 불안정했어요. 엄마가 사라지고 나서 도저히 혼자 견딜 수 없었거든요….”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가정이 있던 남자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뱃속에 아이가 생겨버렸다. 아버지는 이혼하지 않은 채로 그녀의 엄마와 함께 살았다. 겉으로 보면 정상적인 가정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외동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다.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사랑과 집착이 혼란스럽게 뒤엉킨 채 그녀는 성장했다. 그녀가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엄마를 떠났다. 그러면서 엄마의 집착이 더욱 심해졌다.

 

      “엄마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줄 알았나봐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지역 미인대회에 내보냈어요. 제 외모가 그 정도는 아닌데, 제가  싫다고 해도 들은 체도 안했어요. 넉 달 정도 준비하고 나갔지만 결과는 뻔하죠. 엄마는 제가 실망한 줄 알았나 봐요. ‘괜찮다. 심사위원들이 네 가치를 몰라서 그렇다. 실망하지 마라’라고 일주일 내내 말했어요.

 

      어차피 기대를 안 해서 실망도 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나가보라고 하니까 나간 거죠. 그때 친구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녀의 전부였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 6개월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그녀는 휴학하고 엄마 곁을 지켰다. 엄마는 점점 작아졌다. 얕은 언덕처럼 보였던 엄마의 볼은 움푹 파인 구덩이가 되었다. 팔 다리는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처럼 보였다. 엄마는 그녀 곁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기억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 제가 걱정이 되셨는지 똑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사인 막 해주지 마라. 잘 읽어보고 해라. 모르겠으면 변호사를 찾아가라’라고요. 아무래도 아버지 재산 때문에 그랬겠죠. 제가 불안해 보였나봐요. 잘 읽어보고 사인했는데 제가 졌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매일 술 마시고, 남자를 만나며 방황했어요. 혼자 있고 싶지 않았죠.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했어요.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남편을 만났어요. 인생 최악의 실수를 한 거죠.”

 

***

 

      배고픈 아이는 음식을 급하게 먹는다. 급하게 먹은 음식은 반드시 탈이 난다. 배가 아파 발을 동동 구르다 구토한다. 한 번 고생하고 나서 다시는 음식을 급하게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소용없다. 배고프면 또 닥치는 대로 먹는다. 절제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는 아이를 도와줄 사람은 부모다. 부모가 적절한 음식을 적당한 양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음식을 급하게 먹든 천천히 먹든 관심 없는 부모가 있다. 그저 아이가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무절제하게 음식을 먹인다. 자꾸 밥상에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몸에 좋으니 먹으라고 한다. 아이는 부모가 먹으라는 대로 먹어 치운다.

 

      문제는 어느 날, 밥상을 차려주는 부모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숟가락 하나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아이는 부모가 사라지는 즉시 텅 빈 밥상을 받는다. 음식을 차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아이는 굶는다. 스스로 밥을 지어먹을 수 없는 아이는 학교 앞 문방구로 간다.

 

      새빨간 사탕, 새파란 아이스크림, 현란한 먹거리가 아이를 유혹한다. 닥치는 대로 형형색색 불량식품을 먹은 아이는 틀림없이 병원 신세를 진다. 그녀의 상황이 이와 같다.

 

      그녀의 남편에 대해 생각해보자. 남편은 나쁜 사람이다. 훈육이 되지 않은 사람이다. 남편 안에 자리 잡은 특정한 결핍이 문제 행동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외국에 나가 성매매를 시도한 일, 음란물에 중독된 상황, 아내 돈을 허락 없이 가져다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일, 모든 책임을 외면하고 딸과 아내를 두고 잠적한 일. 모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녀와 남편을 나란히 놓고 바라본다면 그녀는 확실한 피해자다.

 

      그러나 그녀를 마냥 위로해줄 수만은 없다. 결혼은 성인 남녀가 상호 합의 통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왜 문제 많은 남자를 선택했을까?

 

      그녀는 엄마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그녀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겪지 않았다. 엄마가 딸을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졌기 때문이다. 딸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가정이 있는 남자와 불안한 결혼 생활을 하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그녀의 딸이었다.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와 달리 엄마는 딸의 눈가리개가 되어버렸다. 엄마가 손을 잡아주면 어둠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딸은 엄마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둠 속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앞을 볼 수 없는 딸을 그대로 둔 채로. 그녀는 넘어져서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부를 노래도, 노래를 부를 의지도 없었다. 엄마 목소리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에게 우주와 같았다. 엄마 없는 세상에서 살 준비가 되지 않은 스물여섯 살의 성인, 그녀는 낯선 세상에 고아처럼 버려졌다. 엄마가 사라지고 난 그 순간, 눈가리개를 한 채로 더듬더듬 길가의 벽을 의지해 걷다가 만난 낯선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이다.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안전한 곳으로 대려다 주는 대신 좁고 위험한 길로 그녀를 이끌었다. 위험한 길가에서 아이를 낳게 하고 갓난아이를 여자 품에 버려둔 채 도망쳐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할까요. 두 번 만나고 나서 바로 그 남자가 결혼하자고 했어요. ‘이상하다, 이 남자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했죠. 결국 석 달 만에 결혼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 친구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제 유산에 대해 남편에게 말해준 것 같아요. 결혼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는 거죠. 알면서도 당한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미친 여자처럼 살다가 갑자기 내게 잘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거부할 수 없었던 거죠….”

 

      그녀는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월급은 적지만 아이를 되찾고 월세 방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고통스럽고 힘든 인생 길에서 그녀는 쓰려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바닥난 통장 잔고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가 방긋 웃는 모습에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도 아이를 품에 안고 걷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더 이상 길가의 벽을 의지하지 않는다. 눈가리개를 스스로 벗어던지자 갑작스러운 빛이 그녀의 눈을 찌른다. 눈앞에 형체들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머지않아  시력을 회복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선명하게 모든 것을 보게 된 그녀 앞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