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큰 딸이 친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안된다고 말했더니, 다른 부모님들은 허락해 줬는데, 왜 엄마는 허락을 안 해주냐며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저는 솔직히 다른 엄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가정은 서로 다릅니다. 나는 각 가정의 문화를 존중합니다. 다른 부모님들이 동의해 줬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결정은 아닙니다. 가정에서 다수결은 의미 없습니다. 

 

반대로, 다른 부모님들이 자매님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니겠지요.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자매님은 자녀가 여행을 가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혹시라도, 고민 끝에 여행을 보내준다는 결정을 내리시더라도, 나는 그 의견 역시 존중할 것입니다. 

 

말장난 하는 것 아닌가, 오해하실 수도 있으실 것 같아, 내 의견을 분명히 밝힙니다. 나는 부모님이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결정해 주는 것 자체보다, 있는 그대로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결정이 항상 올바른 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많은 부모님들이 실수합니다. 자녀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면, 자녀가 올바르게 자랄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녀 양육이 그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부모인 우리조차도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적지 않아요.   

 

안전한 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자녀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사람이지요. 무엇이 옳은가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를 자녀와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엄마, 나 이번에 친구들하고 1박 2일 놀러 가고 싶어.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 허락받았데. 엄마도 보내줄 거지?” 

 

자녀를 위해 대신 결정해 주는 방식은, “예스, 노”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아이들끼리 놀러간다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절대로 안 돼!” 

 

단 번에 거절하면, 자녀의 감정이 상합니다. 부모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진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돼버리고 맙니다. 

 

“다른 엄마들이 허락해 줬다고? 그럼, 알겠어. 갔다 와.” 

 

자녀가 원하는 대로, 전부 다 해주는 부모를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허락을 해주면, 나중에 말을 바꾸게 됩니다. “그때는 됐고, 지금은 안된다.”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집니다. 게다가, 자녀가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쿨하게 보내주고, 큰일 납니다. 

 

과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렇구나. 엄마가 갑자기 알게 돼서, 깊이 생각을 못 해봤어.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가 충분히 생각해볼게. 내일 다시 말해보자.” 

 

실제로 진지하게 고민해본 다음에, 다시 대화를 나눕니다. 

 

“엄마가 생각해봤는데, 이번 여행은 보내주기 힘들 것 같아. 너무 걱정이 돼서…. 네가 조금 더 성장해서, 안전하게 너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때 마음껏 다니면 어떨까?” 

 

과정을 공유해도, 일시적으로 아이의 감정이 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 번에 거절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단 번에 거절하면, 아이는 자기 존재가 거절당한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충분히 고민한 다음에 의견을 말하면, 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 제안한 의견이 거절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가 거절당하는 것과 의견이 거절당하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할 만큼 중요합니다.  

 

당장의 감정이 상하더라도, 아이가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단 번에 거절한 상황과는 사뭇 다릅니다. 과정에서 충분히 고민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생각합니다. 

 

“엄마도 보내주고 싶어 해. 하지만, 내가 아직 어려서 걱정하는 거야.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가자.” 

 

아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일단은 성공입니다. 부모의 진심이 전해진 것이니까요. 

 

부모님에게 감정적인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감정이 상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억지로, 아이의 감정을 바꾸려 하지도 마시고요. 아이도 감정을 수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해집니다. 아이의 요구 사항이 끊이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전부 스마트폰 가지고 다녀요. 친구들은 서로 메신저로 소통하는데, 저만 스마트폰이 없어서 소외된다고요. 저도 스마트폰 사주세요.”

 

“왜 집에서 게임을 못 하게 하세요. 다른 부모님들은 자기 할 일 끝나면, 다 게임하게 해주는데요. PC방 가서 게임하면, 돈 쓰고 담배 연기 마시고 더 안 좋아요. 집에서 마음 편히 게임하게 해주세요.”

 

“저도 친구들 따라서 학원 옮길 거예요. 혼자 다니기 심심해요. 어차피 배우는 거 똑같은데, 친구들하고 같이 다닐 수 있는 학원으로 옮길게요.” 

 

“용돈 좀 올려주세요.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요. 친구들하고 매점 가기도 힘들다고요.” 

 

“예스, 노”로 결정해서 단 번에 알려주지 마세요. 자녀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에, 부모님도 충분히 생각하세요. 그리고, 부모님이 고민했던 내용을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자녀의 감정이 아니라, 자존감을 지켜주세요. 함께 고민하는 부모는 함께 성장합니다. 부모에게 존중받는 아이가,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휘둘리는 아이가 아니라, 건강한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P.S. 나 역시 부족해요. 내 아들도 사춘기에요. 함께 고민하면서 키워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거 예수님도 아세요. 우리 자녀, 예수님이 키워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