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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 소년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네요. 돈, 가정, 친구, 다 잃었어요….”

 

     E는 서른아홉 살 여자다. 6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혼자된 지 3년 지났다. 남편은 교회 목사님 소개로 만났다. 목사님은 남편이 진지하고 성실한 남자라고 하셨다. 첫눈에 호감이 느껴지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목사님이 인정한 사람이니 한두 번 만나보자고 생각했다. 따뜻한 성품이 좋았다. 8개월 만나고, 결혼했다.

 

     신혼집은 다세대 주택에서 시작했다. 4층 건물 맨 꼭대기 주인세대에 시어머니가 살고, 그녀와 남편은 2층에서 살았다. 결혼 일주일 만에 남편과 다퉜다. 그가 급여를 아내에게 갖다 주지 않았다. 생활비는 여자가 관리해야 한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게 어디 있냐? 돈 버는 사람이 관리하자”라고 말했다. 아내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물러섰다.

 

     두 달 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대출을 받아 주식에 돈을 투자했다가 2억 정도 빚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급여가 모두 대출금 상환으로 쓰였다. 기약 없는 기간 동안 수입 없이 살아야 했다.

 

     시어머니는 “알고 있었고,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분노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생각했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임신 4개월이었다.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저녁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속이 터졌다.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했다. 그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내 얼굴에 베개를 던지며 싸늘하게 말했다.

 

     “입 닥쳐.”

 

     이후로 던지는 물건이 달라졌다. 베개에서 시계로, 시계에서 컵으로. 컵이 깨지던 날,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남편은 울고 있는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내는 휴대폰 게임을 그만하라고 말했다. 남편은 무시했다. 남편이 게임으로 100만 원 넘는 돈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는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터트렸다.

 

     남편이 소리 지르며 욕을 했다. 아내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밤새도록 말다툼을 했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배가 아팠다. 두려움에 싸인 아내는 의식을 잃었다. 아기는 유산되었다. 시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해서  유산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를 불러 말했다.

 

     “내가 그 놈을 혼내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그러고 5만원 권 한 뭉치를 그녀의 손에 쥐어줬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돈을 한 장씩 찢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돈을 갈기갈기 다 찢을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돈도 눈물도 말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이혼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 술 취한 아버지는 매일 엄마를 때렸다. 참다못한 엄마는 집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아버지의 주정과 매질을 당해야 했다.

 

     몇 달 뒤,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아빠가 없는 틈에 짐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엄마에게 매달리다시피 하여 같이 문을 나서는데 처음 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엄마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그 아저씨와 가버렸다.

 

     4년이 지났다. 견디다 못해 엄마를 찾아갔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며 살았다. 너무나 그리웠던 엄마였다. 하지만 헤어져 산 시간이 길어서 인지 아니면 상처가 많아서 인지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엄마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뭘 물어봐도 짧게 대답했다. 그녀에게 소리 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난처해졌어. 불편해졌다고.”

 

     아저씨 표정도 달라졌다. 그 집에 오래 살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나왔다.

 

     “제 안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있어요. 외로움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남편에게 전화해서 ‘욕하지 않고, 돈 관리 내가 하고, 게임 안 하고, 빚 갚기로 약속하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전화를 걸지도 몰라요. 남편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제가 너무 외로워서 그래요.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녀는 잠을 잔다. 그러면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과 낮이 바뀐 채 3년이 지났다. 깨어있는 시간은 TV를 본다.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용하지만 치열하다. 그녀는 승리한 적이 없다.

 

     외로움은 갑자기 찾아와서 그녀를 휘젓는다. TV보다가 눈물이 흐르고, 잠에서 깨면 슬픔이 밀려온다. 휴대폰에 전남편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바라본다. 번호를 다시 지우고 입력하는 일을 반복한다. 휴대폰을 소파에 던지고, 수면제를 먹고 잠든다.  

***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외로움이 속삭이는 말은 무섭다.

 

     ‘넌 혼자야. 아무도 없어.’

 

     거짓말이지만 진실처럼 들린다. 거짓을 거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거짓이 진실이 된다. 전기고문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저항하지 않고 고통을 받아들인다. 외로움은 사람을 서서히 파괴한다.    

 

     사람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과 싸워 이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닌다. 그것과 싸우면 질 것이 뻔하다. 의미 없는 싸움이다. 외로움이 삶을 파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외로움과 싸우지 않고

외로움을 돌보는 것이다.

 

     외로움을 돌보려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외로움을 “꼬마”라고 부르겠다. 언제 꼬마가 활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분위기나 시기에 꼬마가 활동한다면 어디서 나타는지 따라가 본다. 쥐구멍에 갇힌 쥐를 찾는 것처럼 자세히 살핀다.

 

     그다음에 꼬마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꼬마가 나타나면 자신이 하는 행동을 관찰한다. 반응은 다양하다. 자는 사람, 먹는 사람, 우는 사람, 화내는 사람. 패턴을 발견할 때까지 유심히 관찰한다.

 

     외로움에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으로부터 감정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감정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착각하는 것이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지 자신이 아니다.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으면 감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

 

     외로움이 느껴지면 절망하지 말고, 차분하게 말한다.

 

     “또 시작이군.”

 

     만약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이 분리된 사람은 감정을 돌볼 수 있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상담자다. 꼬마는 상담실에 찾아온 내담자다. 꼬마는 통제불능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랑받지 못했다. 관심 받고 싶어 과도한 행동을 한다. 작은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우울해진다. 다들 기분 좋아서 웃고 있는데, 뭐 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물건을 집어던지고 난리다. 설득하고 달래도 소용없다.

 

     꼬마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변화되지 않는다. 꼬마는 피터팬처럼 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다. 철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 꼬마를 돌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 물론이다. 꼬마를 대하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꼬마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자신에게 일어난다.

 

감정을 바꿀 수 없지만

감정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꼬마를 “소년”이라고 부른다. 소년은 다섯 살 정도 된다. 발가벗겨졌다. 온몸이 멍 자국이다. 파랗고 빨갛다. 파란 자국은 생긴 지 오랜 된 것이고, 빨간 자국은 방금 생긴 것이다. 머리는 지저분하고, 얼굴은 눈물자국, 땟자국으로 얼룩졌다.

 

     소년은 불안해 보인다.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고, 두 손은 덜덜 떨린다. 아무리 설득하고 달래고 돌봐주고 씻겨줘도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다. 소년은 내가 원치 않을 때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

 

     ‘못 하겠어…. 두려워…. 안 하면 안 돼? 그만하자. 뭘 위해서 그래.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 의미 없는 일이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현실은 달라. 너는 실패할 거야. 망할 거라고. 멈춰. 이대로 있어. 하지 마. 그만해!’

 

     나는 소년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익숙할 법도 한데, 쉽지가 않다. 그가 입을 열면 움찔한다. 때로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말한다.

 

     ‘알아. 네가 얼마나 두려운지…. 나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그래도 우리 가야 해. 무서워도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나는 그 소년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나는 당신 마음 속 소년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그 소년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 속에 소녀가 있다. 길가에 버려진 소녀.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 때리는 아빠가 무서워 집을 도망쳐 나온 소녀. 엄마를 찾아갔지만 커다란 대문은 잠겨있다. 소녀는 발걸음을 돌려 길을 걷는다. 길에서 날리는 먼지가 머리에 뽀얗게 앉는다.

 

     두 눈에 눈곱이 구슬처럼 박혀있고, 눈물과 콧물자국이 얼굴에 굽이굽이 골목을 냈다. 비가 와서 옷이 젖고, 해가 떠서 다시 마르고. 옷은 종이처럼 너덜거린다. 신발은 닳아서 뒤꿈치가 땅에 닿는다. 소녀는 갈 곳이 없다.

 

     걷다 지친 소녀는 길가에 앉는다.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한 사람이 다가왔다. 손가락은 두툼하고 굳은살이 박였다. 소매 밖으로 팔을 타고 오르는 용의 꼬리가 보인다. 짧은 머리카락은 송곳처럼 삐쭉 서있다. 껌을 씹으면서 소녀에게 말한다.

 

     “나랑 가자. 좋은 데 알려줄게.”

 

     소녀는 무섭다. 가면 안 된다. 그러나 소녀는 남자를 따라간다. 길가에 버려진 것보다 나으니까. 누군가 뒤에서 소리친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남자에게서 소녀를 빼앗는다. 남자는 놀란다. 눈치를 보다가 멀리 도망쳐 버린다. 그녀가 소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널 돌봐줄 거야. 넌 버려진 아이가 아니야. 그렇게 아무나 따라다녀서는 안 돼. 사랑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이제 외롭지 않을 거야. 같이 있을 거니까.”

 

소녀를 찾아 나선 사람은 바로 그녀,

그녀 자신이었다.

 

     외로움은 그녀 자신이 아니다. 외로움은 그녀 감정이다. 그녀는 소녀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눈 판 사이에 소녀가 사라질지 모른다. 누군가 내민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버릴 것이다. 소녀는 아무나 따라간다. 소녀를 해칠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이라도. 소녀와 함께 하는 삶이 익숙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소녀는 변하지 않으니까.

 

상처와 싸우는 사람은 고통 받지만,    

상처를 돌보는 사람은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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