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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네, 물론이죠.

나는 좋은 부모입니다.

 

두 번 자녀를 키워도

이렇게 못 키워요.

 

우리 애들 부족한 거 없어요.

나는 얼마나 어렵게 컸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없네요.

그럼, 안녕히.

 

당신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나 같은 부모 만나서

우리 애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군요.

대화 좀 할까요, 우리.

 

당신은 좋은 부모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만 조심한다면.

 

그건 뭔가요?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 자녀를

망칠 수 있어요.

 

자녀 앞에서

당당한 사람 불안해 보여요.

 

자신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당당한 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당당한 부모는   

주눅 든 자녀가 있어요.

 

나는 최선 다한다.

넌 이게 뭐냐.

 

왜 노력 안 하냐.

결과가 이게 뭐냐.

 

자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주눅 든 부모 옆에는

당당한 자녀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내 멋대로 살 거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믿고 살아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자녀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거죠.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가 주눅 들고

 

부모가 주눅 들면

자녀가 당당하니

 

어떻게 할까요.

답답하죠, 정말.

 

내 이야기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많이 우세요.

난 속상하죠.

 

나는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모든 것을 받은 거죠.

예수님을 선물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성도 한 명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정말로 몰랐죠.

 

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처받은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요.

 

언젠가 청년이 된 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나 사랑하고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 될 때도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 이해해줄 수 있지,

아빠?

 

하지만, 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래, 아들.

아빠는 괜찮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다오.

 

속상해야 하는데.

서운해야 하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행복할까.

 

그날을 꿈꾸면서 나는

자녀에게 꾸준히 예수님을 전해요.

 

내 상처가 혹시라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말해요.

 

나 대신 내 자녀들

잘 키워주세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약속해요, 우리.

 

죄책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의 따듯한 사랑 전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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