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는 결혼 13년 차 마흔 둘, 두 딸의 엄마이다. 그녀가 결혼할 때 걱정했던 것은 남편의 종교였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는 특정 종교와 상관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는 남편에게 단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일요일은 무조건 교회에 가라는 것. 남편은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남편이 그저 교회만 나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몸만 교회에 가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에게 예배, 설교, 교회 사람들과 관계는 안중에 없다. 설교 시간에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예배 후 식사할 맛집 찾기에 바쁘다.

아내는 그의 행동이 민망해서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러면  움찔 놀라며 민망한 듯이 아내를 쳐다본다. 곧 팔짱을 끼고 설교를 듣는가 싶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아내는 설교에 집중할 수가 없다. 예배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교회에 오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핑계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주말이면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 이번 주에 교회 안 가.”

아내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남편을 윽박질렀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쓴다. 서로 불편한 시간을 보내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아내는 그가 교회에 갈 것인지 묻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참는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 남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두 딸을 챙겨 교회 갈 준비를 마쳤지만 그는 여전히 누워있다. 아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진짜 교회 안 갈 거야?”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를 기다리다 예배에 늦을 것 같은 아내는 두 아이를 챙겨 현관을 문을 나선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씻지도 않은 채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한 마디 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아이들 앞에서 신앙 문제로 싸우고 싶지 않다. 말없이 점심을 차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네, 오늘 교회에 갔다 왔나?”

남편은 넉살 좋게 몸이 좋지 않아 못 갔는데, 다음 주는 꼭 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 소파에 앉아 TV를 본다. 아내는 점심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부른다. 남편은 리모컨을 든 채 식탁에 앉는다. 아내와 두 아이가 손을 모으고 식사 기도를 할 때, 그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아내는 신앙 문제로 감정싸움 하는 것에 지쳤다. 주말이 되면 최대한 남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친정엄마의 전화 때문이라도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요즘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네.”

아내는 놀랐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다행이네.”

‘이제 조금씩 달라지는구나….’

아내는 내심 기대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누군가 이중 주차를 한 것을 발견했다. 주자창이 작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침착하게 차창으로 보이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남편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차장을 나서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만하라고 아내가 말하자 그가 고함쳤다.

 “교회 다니면 뭐 해!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 이러니까 기독교가 욕을 먹는 거 아니야. 차를 이상하게 세워 놨으면 전화라도 받아야 할 것 아니야!”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요. 남편이 제게 무관심해도,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남편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지겠죠. 주변 사람들이 ‘내 남편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라고 해요. 저는 그날만 기다려요. 처음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두 아이만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애들로 기르고 싶어요. 저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아이들이 자라니 더 조급해지네요. 하나님께서 언제 그를 변화시켜 주실까요? 과연 그날이 오기나 할까요?”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무관심할수록 교회 일에 매진했다. 교회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올빼미 형 인간이었던 아내는 자신의 오랜 습관을 깨고, 새벽예배에 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새벽에 아이들이 깨서 덩달아 잠을 설치니까 새벽예배만큼은 나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 안 돌봐주잖아.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 못 살아.”

 남편은 포기한 듯 말한다.

“알겠어. 알아서 해.”

아내는 생각했다. 남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지금의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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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마음속에는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있다. ‘만약 내 남편이 예수님을 믿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가정법은 실제로 남편을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 아내가 겪는 문제가 신앙적인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부 사이 현실적인 문제다.

남편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통째로 뜯어고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을 한꺼번에 바꿔야 하는 것이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내의 요구가 거셀수록 남편의 거부는 심해질 것이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노력하지 않고 원하는 목표를 얻을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운다. 현실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뒤로 미루게 한다. 그래서 그 가정법만을 받아들이면 비현실적인 미래를 그리게 된다.

세상에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남편들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부부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예수님은 도깨비 방망이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이 아니다. 변화를 위한 노력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변화는 점진적, 지속적, 장기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시작과 결론만 남긴 채 노력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그녀의 경우, 남편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내는 부부 사이에 기대하는 변화를 남편의 회심 이후로 미루고 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을 때까지 남편은 아내로부터 관계 개선을 위한 요청을 받지 않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무관심, 남편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의 부족, 가족 안에서의 남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바로 지금’ 대화해야 한다.

‘남편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에…’라는 가정법은 버리는 것이 좋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그가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부부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다.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지금 당장 용기를 내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아내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계신다. 남편에게 예수님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그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남편이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선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분은 머지않아 그녀의 남편을 찾아가실 것이다. 아내의 예상을 뛰어넘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그녀가 간직해야 할 희망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남편의 변화가 생각보다 더딜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마음속에 남편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내를 교회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하나님과 대립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남편의 존재 가치를 더욱 고귀하게 만든다. 그가 주는 위로와 사랑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부족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만큼 남편의 사랑도 필요하다. 그녀의 마음속에 남편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가 들어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그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자리가 필요하다.

그의 가치관을 자녀와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남편의 가치관을 깎아내리지 말라. 가정 안에서 아버지를 존중하는 문화는 어머니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자녀들이 심판받아야 할 죄인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단지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남편이 자녀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할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가치관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아내가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그날,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끌어안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아내에게 남편을 선물로 주셨다.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도록 만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남편을 사랑하신다.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그에게 보내주신 것이 증거이다. 남편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한두 마디 말로 변화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아내를 남편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같이 살며, 사랑하며

변하기를 바라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