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상식이죠.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요. 

“남 신경쓰지 말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자”, 결심해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자기 멋대로 못 살아요.  

다른 사람 돌보고, 섬기면서 살아가죠. 

나는 묻고 싶어요. 

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요? 

“모든 사람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상식처럼 받아들인 사람 중에, “사람 가려가며 사랑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사람 적지 않아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내 이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죠. 마음 편히 살아가면서 사랑하기도 쉽죠.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누가 내 이웃인지 고민해보세요. 

“누가 내 이웃인 게 뭐가 중요해. 그냥 사랑하면 되지….”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도 중요하게 생각하신 문제에요. 

예수님이 율법학자에게 질문하셨어요. 

“누가 네 이웃이냐?” 

율법학자가 난처해졌어요.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율법학자가 정작 “그럼 네 이웃이 누군데?”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한 거죠.  

예수님은 율법학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세요. 

길 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벌겨벗겨진 채로 시체처럼 버려졌어요.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반대쪽으로 돌아갔어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람은 유대인이 무시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고요. 

예수님은 비유를 들려주시고, 율법학자에게 다시 물으셨어요. 

“누가 네 이웃이냐?” 

율법학자는 “사마리아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죠. 자존심이 상했거든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사람들이었어요. 

에둘러 말한 표현이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였어요. 

예수님은 바로 반격하시죠. 

“가서 너도 똑같이 해라.” 

율법학자는 누구를 이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사마리아인은 아니었겠죠. 

적어도 유대인? 

최소한 자기 기준에 맞는 사람들이었겠죠. 성향이나 기질이 맞거나, 수준이 맞거나. 

어쨌든, 같이 지내기에 불편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랬다면, 예수님이 질문하지 않으셨겠죠.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내 이웃이 누구인지 먼저 정의를 내려야 해요.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요. 

누가 당신의 이웃인가요? 

나는 당신의 이웃을 몰라요. 하지만, 내 이웃은 알아요. 

바로 당신이죠. 

당신이 사마리아인처럼 불쌍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을 외면할 수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어요. 

내 마음 알아주고, 나와 잘 맞는 사람. 함께 있으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는 사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사람. 

이웃이 아니라, 동역자에요. 

이웃은 내가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나 아니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자꾸 생각나고 걱정되고, 불안한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의 이웃이에요.  

당신이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세요. 

당신은 나의 이웃이고, 

그 사람은 당신의 이웃이에요.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당신을 사랑할게요. 단호한 결심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나는 당신을 외면할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