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에 앉았다. 

 

아파트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는 손에 쥔 야구방망이를 단단히 잡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문을 열면, 사정없이 내려칠 작정이었다. 

 

그녀가 열여덟 살 때였다. 

 

“희수야. 너 잠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인기척을 느낀 엄마가 현관 앞에 우두커니 앉은 희수에게 물었다. 

 

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을 안 자고 뭐 하냐고 희수야?” 

 

희수는 현관문을 똑바로 응시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둑 지키잖아.” 

 

엄마는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희수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자.” 

 

“엄마는 상관하지 마.”

 

다음 날, 희수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희수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희수의 엄마는 불안했지만, 의사의 말을 신뢰하고 싶었다. 

 

정신과에 다녀온 이후에도, 희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밤에 일어나, 도둑을 지켰다. 

 

그녀의 엄마는 시간이 빨리 흘러, 희수가 이상한 증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

 

“왜 한 달에 한 벌꼴인지 아세요? 제가 생리하는 주기마다 도둑을 지킨 거예요. 엄마는 같은 여자면서, 그것도 모른 거죠. 얼마나 무심한 여자인지 아시겠죠? 저한테 관심이 없으셨어요.” 

 

#

 

비가 주섬주섬 내리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희수야. 그만 좀 자고 일어나. 너는 주말마다 그렇게 늦잠을 자니? 엄마, 지금 오빠랑 백화점에 다녀올 테니까, 일어나면 아침밥 챙겨 먹어.” 

 

희수는 샛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했다. 엄마를 힐끔 보고는, 짜증 난다는 듯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돌아누웠다. 

 

“고등학생이 잠을 저렇게 자.” 

 

현관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장단을 맞췄다. 

 

“한심하다, 한심해.” 

 

오빠가 남긴 마지막 말에, 희수는 정신이 또렷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머그컵에 우유를 따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코코아 분말 가루를 세 숟가락 넣었다. 차 스푼으로 코코아를 저으며, 창가에 섰다. 주섬주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그컵 안의 코코아가 입술에 닿았을 때, 쇠로 된 현관문이 쿵쿵 울렸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손에 들고 있던 코코아를 놓쳤다. 머그컵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코코아는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그녀는 얼어붙은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택배인데요, 반품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안에 계시나요?”

 

그녀는 숨을 죽였다. 

 

인터폰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카메라에 비친, 남성은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코코아 위에 주저앉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때아닌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뭐야, 이거? 집이 왜 이렇게 난장판이야?” 

 

오빠가 말했다. 

 

“희수야! 이게 뭐야.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말했다. 

 

사방으로 튀겨서 굳어버린 코코아 자국은 차갑게 식어버린 핏자국처럼 참혹했다. 마치 살인사건의 현장을 방불케 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희수의 엄마는 물걸레로 사방에 새겨진 코코아 자국을 닦아내면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 그녀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앞 베란다 창고에서, 오빠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야구방망이를 꺼냈다. 정자세로 현관 앞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

 

“꿈을 꿔요. 지금까지 여러 명의 상담자를 만나봤지만,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는지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는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요?” 

 

그녀는 꿈에 대해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 방에 들어와요.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어요. 그 남자는 내 존재를 알지 못해요.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옷장에서 지켜보고 있어요. 그 남자는 옷장으로 다가와, 옷장 아래 서랍을 열죠. 나는 살짝 열린 옷장 틈으로, 그 남자를 마주 봐요. 

 

그 남자는 서랍을 열고, 내 양말을 훔쳐서 달아나요. 그 남자가 떠나고 나면, 나는 내 양말을 돌려달라며 엉엉 울죠.

 

이 꿈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녀와 나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녀는 차분하게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퀴즈를 낸 것이다. 내가 안전하고 믿을만한 사람인지 그녀의 방식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시험이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녀는 상담실에 남을 수도, 상담실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이미 여러 명의 상담자를 만나봤고, 그동안의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새로운 상담자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그녀는 왜 다른 내담자들처럼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가? 알 수 없었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첫째, 그녀가 그렇게 질문한 의도를 묻는다. 의도를 묻는 과정에서, 그녀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찾아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고, 왜 그런 꿈을 꾸는지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앞에 꼿꼿하게 서 있는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순순히 말해줄 의도가 없어 보였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그녀의 눈빛은 내게 답을 맞힐 수 있겠냐고 묻는듯했다. 

 

둘째, 그녀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건강하게 설정하기 위해, 잠시 동안 교육적인 대화를 나눈다. 

 

상담자는 초능력자나 점쟁이가 아니다. 내담자가 모르는 것을 상담자가 알 수는 없다. 

 

내담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보다 명확하게 내담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능력을 테스트한다거나, 상담자와 힘겨루기를 한다면 상담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교육적인 대화를 통해, 내담자가 상담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그녀는 예의 바르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날 것이다. 

 

셋째,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때로는 상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상담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상담자가 솔직하게 자신을 개방했기 때문에, 내담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단, 기술이 아닌 진심을 담아야 한다. 진심이 없으면, 상담자는 실제로 무능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진심을 담으면 무능함도 실력이 될 수 있다. 

 

내가 “모르겠다.”라고 솔직히 말한다면, 마주한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담은 즉시 종결될 것이었다.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실을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녀가 묻는 말에, 군더더기 없이 대답하는 것이다. 

 

틀린다면? 

 

어차피 그녀는 떠날 것이다. 

 

맞춘다면? 

 

몇 세션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실제적인 유익이 있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담은 일대일로 비밀리에 진행된다. 그녀가 나를 유능한 상담자로 인정해준다고 해도 다른 내담자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녀와의 상담을 지속하고 싶은가? 

 

자존심 때문일까? ‘너도 다른 상담자들과 다를 바 없구나’라는 식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불편한 것일까?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단지 그런 이유에서 상담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는 왜 그녀와의 상담을 지속하고 싶은 것일까?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그녀는 이제껏 자신을 안전하게 개방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퀴즈를 멈추지 않는 이상, 상담실을 전전하는 기약 없는 여정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멈춰야 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했다. 그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 일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유능한 상담자들을 십수 년 간 만나온 터였고, 기적은 없었다. 무능한 내가 그녀를 마주한 이유였다. 유능한 상담자들을 거치고 거쳐, 나에게 흘러든 것이다.  

 

제아무리 유능한 상담자라도, 스스로 상담실을 떠나려는 내담자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상담자는 상담실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녀를 멈추고 싶었다.

 

나는 무모해지기로 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당신은 어릴 때, 성적인 공격을 받았을 거예요. 옷장에 숨을 수 있는 나이였다면, 아주 어린아이였겠죠.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아는 사람은 아닐 겁니다. 익명의 사람일 거예요. 

 

당신이 고등학교 때 겪은 일은, 최초의 사건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그것이 최초의 사건인 것처럼 말했어요. 의도적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제시한 유일한 단서이자 힌트였을 겁니다. 내가 문제를 맞추기를 바란 것이죠. 

 

고등학교 때, 당신이 인터폰 앞에서 마주한 남자가 쇠사슬을 끊은 거예요. 그 바람에, 지하 감옥에 가둬놓은 괴물이 탈출한 것이죠. 

 

당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상처를 그 사건이 끄집어 낸 겁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 끔찍한 일을 겪은 그날에도, 비가 내렸을 가능성이 높아요. 

 

평소에 나는 절대로 내담자가 말하지 않는 내용을 앞서서 추측하지 않습니다. 내담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나는 지금 무모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이 원했기 때문에, 내 멋대로 당신을 추측해버린 겁니다. 

 

이제 나는 취약해졌어요. 거절과 수용의 극단적 상황에 나 스스로를 몰아넣은 겁니다. 

 

자,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 가요? 아니면, 평소처럼 예의 바르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상담실을 떠나버리실 건가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가 침묵한 몇 초의 시간 동안, 나는 늙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앉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다섯 살 때였어요.” 

 

 

“희수야. 엄마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집에 있어.” 

 

“어디 가는데, 엄마?” 

 

“갑자기 비가 오잖아. 오빠가 학교 갈 때, 우산도 없이 갔어. 오빠 비 맞으면 안 되니까, 엄마가 데리러 가려고. 잠깐만 집에 있어. 우리 희수 씩씩하잖아.” 

 

희수의 오빠는 그녀보다 일곱 살이나 많았다. 열두 살 남자아이에게 비를 맞히지 않으려고, 다섯 살 난 여자아이를 집에 혼자 남겨둔 것이었다. 

 

엄마는 우산을 챙겨들고 나가면서,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았다. 단독주택이라 길 가던 사람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들면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희수는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실 문이 열리고, 도둑이 들어왔다.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를 쓴 강도는 희수를 덮쳤다. 어린 희수는 고통스러웠다. 하반신이 잘려나가는 듯했다. 

 

비에 젖은 남자의 냄새는 역겨웠다. 남자는 희수를 바닥에 내버려 두고, 안방으로 들어가 돈이 될 물건들을 훔쳐서 달아났다. 

 

희수는 가만히 일어나, 옷장으로 걸어갔다. 피에 젖은 속옷을 벗어서 세탁기에 넣고, 새로운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희수야!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는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살폈다. 장롱 안에 곗돈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나서, 엄마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희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넌 그때 뭐하고 있었어?”

 

희수는 소파에 엎드린 채로 말했다. 

 

“여기 이렇게 누워 있었어.”

 

엄마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이 바보 같은 계집애야. 도둑이 들었으면, 얼른 도망쳐야지. 거기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오빠가 옆에서 거들었다. 

 

“내가 있었으면, 야구 방망이로 콱 그냥 때려 눕혔을 텐데….” 

 

희수는 침묵했다. 

 

#

 

나는 충격에 손발이 떨렸다. 손에 쥐었던 만년필을 놓치고 말았다. 만년필이 그녀의 발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곧바로 몸을 숙여 만년필을 집어 들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내 심정을 이해라도 한다는 듯이, 그녀는 차분하게 몸을 숙여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만년필을 건내주면서, 그녀가 말했다. 

 

“처음이에요. 다른 누군가에게 그날의 일을 말해 본 게….”

 

나를 진정시킨 것은 그녀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가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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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의 수문이 열리듯, 그녀는 자신 안에 담겨 있던 이야기를 방출했다. 

 

“엄마는 오빠밖에 몰랐어요. 내가 정신과를 들락거릴 때, 오빠는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단독주택을 팔아서,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요. 그 돈으로 오빠 유학 자금을 만들어준 거예요. 오빠는 지금 잘 먹고 잘 살아요. 

 

엄마가 저한테는 뒷바라지 못해준다고, 독일로 유학 가라고 했어요. 거기는 학비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수월하지 않겠냐고. 

 

가서 일 년쯤 지났나? 오빠가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아프니까 귀국하라고.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보고 돌봐주라는 거죠. 

 

오빠가 그랬어요. ‘나는 결혼해서 신혼인데, 어떻게 아내에게 병수발을 들게 하냐’고요. ‘네가 와서 돌봐야 한다’고.  

 

저도 참 어리석었죠. 엄마가 아프다는 말에, 걱정이 되더라고요. 귀국해서 엄마를 돌봤어요. 그렇게 십 년이 지났죠.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병수발을 다했는데, 엄마가 내 앞으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어요. 오빠 앞으로 전부 돌려놓고 세상 떠나셨죠.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소용없는 건가? 엄마한테는 오빠밖에 없는 건가? 많이 슬프더라고요. 

 

장례식장에서 오빠가 그랬어요. ‘고생했다. 이제 네 인생 살아라.’라고. 

 

답답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내 인생을 갈아 넣어, 엄마를 보살핀 것 같았어요. 세상을 떠난 엄마가 부러울 정도였으니까요. 

 

엄마 돌아가시고, 오빠가 아파트를 팔았어요. 오피스텔을 장만해주더라고요.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오피스텔이 오빠 명의로 되어 있었어요. 

 

지금은 연락도 안 하고 살아요. 오빠를 보고 싶지 않거든요.” 

 

#

 

그녀는 내게 용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미워질 때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오빠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오빠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양심이 찔린다고 말했다. 

 

‘용서라니….’ 

 

내 안에 분노가 일어났다.

 

상담이 궤도를 이탈했다. 상담자, 목사와 같은 호칭이 얼굴에 엉겨 붙은 거미줄 같았다. 

 

나 역시 사람이었다. 상담자의 기능을 벗겨내고, 한 인간으로 그녀 앞에 마주 섰다. 사람으로 충실하고 싶었다.  

 

나는 말했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그녀가 움찔했다. 

 

“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그들입니다.”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었다.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었다. 점차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갔다. 

 

그녀는 이내, 폭포수와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괴물이 떠내갈 만큼, 강력한 물줄기였다. 

 

#

 

“저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남자에 대한 호감조차 없었거든요. 젊을 때, 내가 좋다고 따라다닌 남자들이 있었는데, 번거롭게 느껴져서 떼어내는데 힘들었어요.”

 

그녀가 살아온 인생에서 연애와 관련된 기록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와의 사랑, 이것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전혀 관련 없었다. 그곳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분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저는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고 싶거든요. 때로는 일상생활에서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교회에서 행사가 있었거든요. 같이 봉사하다가, 어느 남자 성도하고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너무 사소해서 그분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복잡한 감정으로 빠져들었어요.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었죠.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어요. 곧바로 집으로 와 버렸죠. 수면제를 한 알 먹고, 바로 잠들었어요.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여기 의자는 뭐죠?” 

 

A가 말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이것 좀 치우죠. 사람들이 지나는 자리에 이런 게 있으면 다칠 수도 있잖아요.” 

 

“제가요?” 

 

“아, 아니에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그냥 제가 치울게요.” 

 

A는 허리를 굽혀 의자를 들어 올렸다. 몇 걸음 걸어서, 구석진 곳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A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A는 그녀의 노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안내한다고, A가 계속 나서는 바람에, 그녀와의 동선이 겹쳤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오는 탓에, 자리를 안내하는 사람들이 분주했다. 그 과정에서, A와 그녀가 살짝 부딪혔다.

 

A가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충돌이었다. A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서서, 밝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함께 행사를 준비하는 여자 전도사님께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남자 상담자인데, 그건 괜찮으신 가요?”

 

내가 물었다. 

 

“교회에 계신 목사님들에게는 불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목사님들은 조금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래도 일반 사람들하고는 조금 다르신 분들이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목사님들도 계시기는 한데, 대부분 좋은 분들이니까요.”

 

“그렇군요.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어요. 내가 당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목사님도 상처받으셨잖아요. 적어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제가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내 인생 밑바닥에 숨겨둔 진실을 누구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내 자아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어요. 

 

목사님의 책이나 설교를 듣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막상 목사님을 만나니까, 또다시 두려운 거예요. 예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다른 상담자들에게 했던 방식으로 목사님을 테스트 한 거죠. 

 

사실 저는, 처음부터 목사님께 제 이야기를 전부 꺼내놓고 싶었어요. 목사님이 내 꿈 이야기를 듣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셨더라도, 저는 내 이야기를 하고 말았을 거예요. 

 

상처받은 사람만이 상처받은 사람의 심정을 알겠죠. 목사님은 이해해주실 것 같았어요. 목사님도 아프셨으니까요.” 

 

탐정놀이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점차 희미해졌다.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초점이 흐려졌다. 

 

나는 도무지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면,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시의 공백을 두고, 나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상담 과정에 충실했다. 

 

상담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나의 미천한 능력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개방하기로 결단했고, 변화의 의지 또한 누구보다 강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상담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었다. 

 

상처는 완치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돌볼 수 있다는 나의 견해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와의 상담을 종결하는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그녀의 삶을 축복했고, 그녀는 밝은 미소를 남겨두고 상담실을 떠났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부모처럼 마음 한편으로 두려웠으나, 그것은 잘못된 감정이었다. 그리스도가 그녀를 지켜주실 것이다. 나는 안심해야 했다. 

 

“예수님은 여기 좁은 상담실 안에 머물지 않으신다. 이곳을 떠나는 그녀와 동행하신다. 상담은 종결되어도, 사랑은 종결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창가에 서서 한참을 머물렀다.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나의 진심이 예수님께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를 떠나보낸, 저녁이었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서자, 다섯 살 난 막내딸이 뛰어나왔다. 

 

“아빠!” 

 

현관 앞에서 마주한, 다섯 살 자리 여자아이. 

 

내 딸과 그녀가 겹쳤다. 

 

그날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며,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를 끌어 앉았다. 왈칵 눈물이 터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나는 그대로 아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토닥여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많이 무서웠지? 걱정하지 마. 이제, 안전해.” 

 

자신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아빠를, 아이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이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아빠, 울지 마. 나 씩씩해.” 

 

울고 있는 나를 달래느라, 아이는 오랜 시간 내 품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