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회사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집에 와서 가족들과 말을 하지 않아요. 방에 혼자 들어가 저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아내든, 아이들이든 그 시간을 방해하면 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진 적이 있어요. 

요즘 회사가 힘들어서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요. 가족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워낙 예민해진 상태니까, 감정을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당분간만 가족이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 이런 모습이 오래가지는 않을 거니까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겠어요.”

 

그는 사십 대 초반, 결혼 10년 차, 열두 살, 여덟 살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결혼하고 두 아들이 태어나자 지금보다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 

사업 시작 후 5년 정도 지나자 업계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매출이 두 배 세 배 늘면서,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사업 규모를 키웠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고민도 그만큼 깊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지만, 현재 상황은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연 사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앞으로 밀고 가야 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일에 대한 만족이 사라지자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았다. 어두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이해받기 원했다. 가족은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희망사항이었다. 아내는 남편 곁에서 점점 지쳐갔다. 처음에는 남편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그마저 그만뒀다. 이제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안방 문을 닫으면,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남편, 아빠가 없어도 전혀 지장 받지 않는 가정이 되어갔다. 남편은 불안했다. 

 

아내가 말했다.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남편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마음 아프죠.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는 없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남편 비위를 맞추는데 지쳤어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남편을 더 배려해줄 수 있었겠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있잖아요. 아빠 눈치만 보면서 살얼음 위를 걷게 할 수는 없어요. 

자기 감정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우린 둘 다 성인이에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각자 극복할 수 있어야죠. 남편 감정을 대신 책임져 줄 수는 없어요. 우리가 부부인 것은 맞지만, 각자의 몫이 있는 거죠. 남편이 스스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아무도 남편의 비위를 맞춰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문 닫고 들어가 있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제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했죠. 제가 노력하면 남편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뒤늦게 깨달았죠.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남편도 알거예요. 남편은 혼자가 아니에요. 책에서 보니까 남자는 자신 만의 동굴이 있다면서요. 동굴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남편이 힘들어하는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 역시 마음이 괴로웠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아이들을 시켜서 아빠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남편은 반응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 방문을 잠궈버렸다. 노크해도 반응이 없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더욱 지쳐갔다. 

남편이 퇴근한 후에 대화를 시도했다. 남편은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니까 나중에 말하자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고는 방으로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이 차갑게 말할 때마다 그녀는 상처를 입었다. 마음 한 편으로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남편이 싫어졌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친척, 친구,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일 년 만에 망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사람 취급 하지 않았다. 인격적으로 무시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가 그 사람들을 상대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갚겠다고 설득했다. 소용없었다. 어머니를 밀쳐서 어머니가 다치기도 했다.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아버지는 뒷문으로 도망쳤다. 

술에 잔뜩 취해 길에 쓰러진 아버지를 누군가 발견해 연락하면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서 업고 온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상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빚을 청산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고 조금씩 갚아나갔다. 

어머니의 팽팽했던 피부가 주글주글 주름질 때쯤, 모든 빚을 갚았다. 아버지가 남긴 빚이 어머니의 젊음을 빼앗았다. 단 한 번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그 한 번의 아버지 사업 실패가 그의 어린 시절을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아버지 망하는 거 보고 정신을 못 차렸다고. 피는 못 속인다고. 

 

아내 역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감정 기복이 심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성격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일생 동안 그랬다. 아버지는 항상 갑이었고, 어머니는 을이었다. 

아버지 독재는 그녀가 결혼해 독립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노예였다. 그녀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은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아버지가 주말에 낮잠을 자고 있으면, 아버지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아버지를 감쌌다. 어머니는 아버지 위주로 생각하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아버지를 응석받이로 만들었다고 인식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모든 상황이 흘러간 것이 결국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생활비만 가져다주고 아버지, 남편으로써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싫었다. 아버지와 어긋난 관계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해.”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녀가 말했다. 

“우리 부부 아닌가? 남처럼 말하네.” 

“부부니까 이렇게 말하지.”

“사업 힘들어지니까, 남편이 남편같이 안보이지?” 

“아니, 나는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말 안한다고 내가 모를 것 같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한 것 같은데.” 

“말만 아니라고 하지. 사업 어려워진 다음부터 당신이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아니라고 했잖아.”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데 그걸 못 느낄 사람은 없지.” 

“내가 잘해줘도 소용없잖아.”

“아니, 사업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당신이 날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또, 또, 또 시작이야! 아니라고!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라고.”

 

“사업이 힘들어졌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절 대하는 태도가 싹 달라졌죠. ‘아, 이 여자는 내가 사업 실패하면 날 버리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제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아세요. 아이들 크면 이혼하려고 해요. 이 사람은 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제가 벌어다주는 돈이 필요한 거예요.”

그가 말했다.  

 

“매번 이런 식이에요. 아니라고 말해도, 자기 세계에 빠져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니까요. 차라리 방문을 닫고 있는 게 서로에게 편한 것 같아요. 이상한 사람이요, 정말.” 

그녀가 말했다.    

 

***

 

 

그 누구도 어린 시절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 말 아니다. 과거를 소중히 다루어줬으면 하는 부탁이다. 과거나 현재나 자신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혼자일 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되니까. 그 또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결혼해서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눈앞에 배우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부부의 관계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주로 부모에게서 학습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일 뿐이다. 내 부모는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단정 짓는다면 인생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를 외면하는 사람에게 성장은 없다. 

 

남편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다. 사업이 망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가족에게 버림받는 것이다. 사업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따른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사업은 오르락내리락 한다. 남편 사업이 잠시 자금난으로 어려워진 것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은 성장하고 있다. 

사업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울했다. 그가 느끼는 우울한 감정은 사업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시작되는 것이다. 사업이 그의 내면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선물하고 싶었다. 

순조로운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사업이 잠시 흔들리기 시작할 그 시점이었다. 사업이 어려워진 순간부터 아내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되어 있다. 아내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는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한다. 

어린 시절 상처가 그의 눈과 귀를 가려버렸다. 아버지의 무리한 사업, 부도, 가난, 재기 실패, 어머니의 남편 구박, 어머니의 희생. 생생하게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그를 괴롭힌다. 그의 내면 어딘가에 곪아터진 상처가 썩어들어가고 있다. 도려내지 않으면, 가정이 깨질 것이다. 

 

남편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유는 아내의 배타적인 태도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내가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는가, 취하지 않았는가?” 형사처럼 조사해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황과 상관없이 남편에게는 왜곡된 진실이 확인된 진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고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고무보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어머니에게 구박받았던 아버지와 현재의 자신을 분리하는 것. 변화의 첫 시작이다. 

방에 갇힌 사람은 남편 자신이 아니라, 남편 안에 드리운 아버지 그림자이다. 그는 혼란스럽다. 그림자 주인이 자신인지, 아버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아내의 말 한 마디, 작은 표정 하나가 아버지 그림자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림자의 주인은 실제로 자신이 아니다. 그림자를 지워내는 방법은 단 하나, 정수리 위에서 찬란하게 비추는 빛이다. 비스듬히 비친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관점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수리에서 위에서 직각으로 비추는 빛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정면에서 올바른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목적이 그를 병들게 할지 모른다. 결핍으로 시작된 이상적인 목표, 행복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그를 실패하게 만든다. 남편이 말하는 행복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아버지, 남편 이미지에 대한 부재는 그에게 허구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 완벽한 남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은, 배우자가 던진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자존감이 무너질 수 있다. 상식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업은 어려워질 수 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내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행복할 수 없고, 언제나 불행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행복하면, 아내도 행복해진다. 남편이 불행하면 아내도 불행해진다. 어쩌면 사업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내 역시 아버지에 대한 상처 때문에 남편을 건강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남편에게 거절감을 느끼는 강도가 세다. 남편이 힘들고 어려움을 느낄 때, 지지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여유가 아내에게 없다. 아내가 말한 대로, 남편이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아내 책임이 아니다. 그 감정을 처리해야 할 사람은 남편 자신뿐이다. 감정을 대신 책임지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심해진다. 

그러나 아내가 가정 안에서 격려와 지지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에 대한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 남편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는 순간에도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을 인정해주기보다는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묻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부정적인 감정이 괴롭기 때문에 그 감정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의 감정을 바꿔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문제에 접근한다면  금방 상처받을 것이다. 기다려주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아내의 진정한 실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편안하게 기다려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내여, 어디서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남자가 동굴에 스스로를 가둔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혼자 있고 싶어 동굴로 들어가지만, 바깥 상황이 궁금한 것이 남자이다. 자신이 사라져 버린 동굴 밖 상황이 궁금한 것이다.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남자는 동굴 안에서 밖을 보고 앉는다. 여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남자는 동굴 안에서 오래 못 산다. 며칠 내로, 밖으로 나온다.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던 동굴 밖 상황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필요 없다 생각되면, 그는 목적을 상실한 채로 현실에 순응하며 산다. 자신이 사라져도 전혀 지장이 없는 세계로 돌아오는 남자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있을까? 그러나 자신이 필요했다고 생각되면 당당하게 산다. 그것이 착각이라도 상관없다. 의욕적으로 산다. 동굴 밖 상황에 대한 남자의 관심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남편이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아내가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세상에 도깨비 방망이 따위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