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초등학교 졸업 여행을 간다는 말에, 아버지가 솔깃했다. 

한 걸음에 달려와,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주고, 용돈을 쥐여줬다. 

우리 가족만 해도 다섯이라,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에 가면, 두 테이블로 나눠 앉기 쉽다. 

아들은 언제나 할아버지의 테이블로 간다. 차를 탈 때도, 할아버지의 차를 탄다. 만나기만 하면, 둘이 꼭 붙어 다닌다. 

식당에서도 밥은 안 먹고, 뭐 그리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지, 내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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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지나고, 여동생 집에서 가족 모임을 했다. 

거실에서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아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아들 이야기를 하게 됐다. 

대뜸 아버지가 말했다. 

“현민이, 나중에 예술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데?” 

나와 아내는 깜짝 놀랐다. 부모인 우리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식당에서,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들이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게 기특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흐름을 끊는 듯한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말했는 줄 알아? 예고 가려면 돈 엄청 많이 들어서, 너네 아빠 힘들어. 잘 생각해 봐.” 

가족 모두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여동생은 반사적으로 할 말을 했다. 

“아빠, 애 기죽게 왜 그런 말을 했어?”

아버지는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 아니었어. 현민이는 씩씩하기만 하던데….”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터가 아니지만, 한 편으로 아들이 신경 쓰였다. 

속 깊은 아이라 할아버지의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조용히 혼자 포기하는 않을까 걱정했다. 

여동생이 나중에 농담처럼 내게 귓속말을 했다. 

“오빠, 현민이랑 집에 가서 이야기 좀 해. 바이러스 들어왔으니까, 오빠가 포맷하고 다시 깔아.” 

나는 피식 웃고 말았지만, 여동생의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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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들, 너 할아버지한테 예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며?” 

“응, 근데 왜?” 아들이 말했다. 

“그냥 혹시나 해서. 할아버지가 돈 많이 든다고 말해서, 혹시 혼자 걱정하는 건 아니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아빠가 적극적으로 도와줄게.” 

아들이 황당한 듯 되물었다. 

“아빠, 예고 비싼 거 몰랐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와 아내는 웃음 터져버렸다. 

아들은 세상 진지했다. 초등학생의 특권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다음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말 안 해?”  

“네가 뭐라고 했는데?”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할아버지가 걱정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안심시켜줬어. 

나도 학비 비싼 거 안다고, 그래서, 장학금 받을 거라고 그랬는데. 엄마 아빠 고생 시켜가면서까지, 공부하고 싶지는 않아. 

엄마 아빠, 속으로 걱정하는 거 아니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와 아내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예고에 가고 말고를 떠나서, 말 실력은 예술의 전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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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아들 같지 않았다.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가난한 가정환경을 지레짐작 둘러보고, 혼자 걱정해서 꿈을 접었다. 

나는 환경을 극복할 내적인 힘이 없었다. 

아들이 나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아버지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그제서야 알았다. 

아버지는 내 아들을 가족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내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라는 것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