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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목사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죠. 어느 날, 남편이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목사가 된다고 하는데 이혼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사모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어항 속에 사는 느낌이랄까…. 제 표정, 말투, 입는 옷, 아이들.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구설수에 올랐어요. 남편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사모가 상담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지…. 아마 목사 자격 없다, 사모 자격 없다고 뒤에서 욕하겠죠. 결국 우리 부부를 쫓아낼 방법을 찾을 거예요.

 

      요즘 이상한 꿈을 자주 꿔요. 자다가 눈을 뜨면 천장이 내려앉는 거예요. 천천히 내려앉는 천장을 보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깜짝 놀라 일어나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어요. 요즘은 꿈꾸는 횟수가 늘어났어요. 예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꾸던 꿈이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늘었어요.”

 

      P는 금융회사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교회에서 만나 4년 동안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은 해외 단기선교로 신혼여행을 대신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자녀들 역시 잘 자라주었다.

 

      결혼하고 11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아내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불러냈다. 분위기를 한껏 잡고서 폭탄선언을 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의 길을 걷겠다고.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자신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그의 뜻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목사 아내들의 고통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기도의 자리를 피했다. 기도하다가 덜컥 하나님이 순종하라고 하시면 도망칠 길이 없기에.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외침 같은 것이 있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더 이상 질질 끌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남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어요. 남편에게 원하는 대로 하자고 말했을 때, 그가 저를 끌어안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어요. 저도 남편이 참 고마웠어요.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제 결정을 기다려줬거든요. 두려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를 믿었어요. 지금처럼 배려해주고 존중해준다면 어려운 길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남편이 신학교에 입학하고, 목사의 삶을 준비하는 동안에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에 S시에 위치한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담임목사로 와달라고. 남편은 그녀와 상의한 후에 부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목회가 시작되면서 아내는 생각하지 못한 문제로 시달리게 되었다. 처음 불거진 문제는 그녀의 옷차림이었다. 교인들이 사모가 너무 화려하게 입는다고 수군거렸다. 그녀는 옷차림으로 남편의 목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화려한 옷은 장롱 구석에 처박아놓고 편안한 옷을 꺼내 입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반대의 소문이 들렸다. 옷차림이 너무 촌스럽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옷차림으로 시작된 말은 점점 삶의 모든 것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어요. 다른 건 다 참아도 자녀들에 대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건 참을 수 없었어요. 남편이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설교한 날이었죠.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연히 식당에서 몇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목사님은 자기 자녀도 제대로 못 키우시는 것 같은데,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건가?’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를 휘어잡고 제대로 싸우고 싶더라고요. 아마 남편이 알면 스트레스 받아서 종일 누워 있을 거예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몸이 아파서 누워요. 사람들 때문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해요. 그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전 힘들다는 말을 못해요. 저까지 힘들다고 하면 아마 남편이 못 견딜 거예요.”

 

      집안일, 자녀 양육은 고스란히 아내가 떠맡았다. 남편은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바빴다. 아내는 점점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그녀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까운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입학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삶에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여러 사람을 편하게 사귀던 중에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하면서 서로 호감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깊은 대화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녀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경청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 역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출장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아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나 봐요. 제게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죠. 안아보고 싶다고, 딱 한 번만 허락해달라고. 그의 품에 딱 한 번 안겨봤어요.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한 건 아니에요.

 

      선을 넘을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더 늦게 전에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죠.  그제야 그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제 말에 동의해주었어요. 그 이후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그가 떠나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그가 떠난 자리가 너무 크다는 거죠. 제 선택에 후회는 안 해요. 만일 그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선을 넘었다면 더 후회를 했겠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정리하면 죄책감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가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을까 스스로 걱정이 되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된 거죠.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제게 벌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통을 받고 있어요.”

 

      남자를 떠나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그녀는 하나님께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그녀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에 그녀가 되찾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과 막힘없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하나님과 관계는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의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는 순간, 그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그는 교과서처럼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불평 한 마디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었다. 교회 사람들이 술 한 모금 입에 대는 것마저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줬다는 것을 용납할 리 없었다.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고자 했지만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싸움이 있음을 느껴요. ‘내가 정말 잘못했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주지 말아야 했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면서도 정반대의 생각도 들어요. ‘내가 그와 뭘 했는데? 그냥 밥 먹고 차 마신 게 다잖아. 선을 넘은 적도 없고. 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그 이상은 아니잖아. 결국 옳은 선택을 했으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어’ 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요.

 

      하나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회개했으니까 용서받은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반성하지 않으니까 용서받지 못한 걸까요? 너무 혼란스러워요.”

 

***

 

      그녀는 취약하다. 외로움에 노출되기 쉽다. 고립된 섬에서 외롭게 생활하다가 그 섬에 낯선 남자가 갑자기 찾아왔고,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비판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녀에게 비판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고, 비판적인 사람들만 보였다. 결국 공동체 모두가 그녀를 비난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녀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수많은 목사 아내들이 지독한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다. 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스스로 결론내리고 절망하면서 마음의 병을 얻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위험한 관계로 빠져든다.

 

      남편 역시 목회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아내를 세심하게 돌볼 상황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돌봐주지 않아서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줬다고 하는 것은 무리일까. 사모 역시 목사와 다를 바가 없으니 어떤 위기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아내가 취약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과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아내는 비참해진다. 회사 일이 바빠서 아내를 뒷전으로 미룬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내보다 앞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가? 단순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남편들은 실수한다. 하나님이 아닌 교회 일에 파묻혀서 아내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회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회사 일로 밀려난 아내나 교회 일로 밀려난 아내나 그 심정은 똑같이 비참하다. 교회 일로 밀린 아내에게 더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내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내가 가장 우선되는 성도라는 것을 잊은 것이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 목사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최우선 순위의 성도이다.

 

      아내는 고립된 섬에서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 계속 무인도에 스스로를 가둔다면 지나가는 배 위에서 의미 없는 손짓으로 인사하는 사람마저 반갑게 느껴진다. 취약한 상태가 계속된다. 남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한 가지는 그와 공유해야 한다.

 

      “나는 지금 외롭다. 당신이 필요하다.”

 

      외로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남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서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목사 아내는 목사 아내의 고통을 안다.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사모들을 모아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마저 힘들다면 일대일로 연락을 해서 정기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을 털어놓는 것도 좋다. 무인도를 디즈니랜드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낭만적인 여행지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이 목사의 사명을 받을 때, 아내 역시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쉽게 결론 내린다. 같은 사명을 받았으므로 목사가 짊어진 사역의 무게를 아내에게 고스란히 짊어지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모가 되기 위해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사랑한 것뿐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 원했다.

 

      남편이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그녀는 동의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기꺼이 목사 아내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끔 목사 남편보다 더 열정적인 목사 아내들을 만나지만 그녀는 그들과 다르다.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견딜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그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화가 나실까, 답답하실까? 하나님은 그녀를 바라보시며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고통 받는 그녀를 위로하기 원하실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잠시 흔들렸던 그녀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탁이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녀를 목사 아내가 아닌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한 여자로 바라보라.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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