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큰 아이는 걱정 없이 키웠는데, 작은 애는 문제가 많아요.” 

 

D는 엄마로서 작은 아들을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작은 아들이 담배를 피우다 들킨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들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 물으니 아이는 태연하게 PC방에서 냄새가 밴 것 같다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말투였다. 

그다음부터 아들의 행동에 민감해졌다. 교복을 세탁기에 넣으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오래된 담배 한 개비가 부서진 채 나왔다.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 좀 해봐. 나는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어.” 

남편은 아들 키우면서 그 정도 일로 머리가 아프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결해보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아들과 한바탕 대화를 끝냈다. 아들의 몸에서 더 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며칠 뒤, 조용한 거실에서 정적을 깨는 벨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맞으시죠? 아드님이 지금 친구들하고 경찰서에 있으니까 지금 와주셔야 합니다.” 

학원에 간 줄 알았던 아들이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나오다 골목에서 자전거 한 대를 발견했다. 한 친구가 적어도 5백만 원은 될 것 같다고, 삼촌이 자전거 마니아라 잘 안다고 말했다. 

그 자전거를 훔쳐서 중고 매물로 내놓고 팔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자전거를 보고 전화한 사람은 구매자가 아니라 경찰이었다. 고가의 자전거에는 고유번호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몰랐던 것이다. 

아들은 너그러운 자전거 주인을 만난 덕분에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자 아빠는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아빠는 쓰러진 아들을 밟기 시작했다. 아들의 몸이 둥그렇게 말렸다. 아빠가 때리다 지쳤는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너 같은 새끼, 키워서 뭐 해. 필요 없으니 나가!” 

그 후로, 5개월 동안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다시 만난 곳은 허름한 주유소였다. 부모를 발견한 아들은 반대편으로 뛰었다. 아빠는 뛰어가 아들을 잡았다. 어쩌면 아들이 잡혀 준 것일지 모르겠다. 아들을 설득해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었다. 부부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당신, 성질 좀 참아. 애가 또 집을 나가면 어쩌려고. 다시 나가면 찾지도 못해. 애 좀 그냥 내버려 둬!”

아내가 말했다. 

“그게 내 잘못이었구나. 당신 집에서 뭐 했어? 애를 똑바로 안 키우고 뭐 했냐고!” 

남편이 말했다. 

 

누가 옳은지 판단해달라는 듯, 두 사람은 자기 입장을 말했다.  

 

“작은 애가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남편이 더 힘들게 해요. 애한테 화가 나면 제게 풀려고 하니까요. 아이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아이한테 사과하라고 몇 번을 부탁했는데 남편은 아이와 마주 앉지도 않았어요.” 

 

“아내가 제 탓을 할 때마다 견딜 수가 없어요. 그날 있었던 일이 제 책임인가요? 애를 때린 건 잘못이죠.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 애가 학원에 안 간 것도 모르고,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도 모르고. 만약 미리 알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기 않았겠죠. 아내 탓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내도 제 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아내가 계속 감싸니까 그놈이 정신을 못 차린 거죠. 계속 밖으로만 나도니….”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깊은 숨소리만 들렸다. 변론을 끝낸 변호사가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은 침묵으로 ‘이제 누가 옳은지 판결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

 

 

부부가 위기를 만나면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긴다. 사람의 본능이다. 서로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한다.

부부가 싸워야 할 대상은 마주 앉은 배우자가 아니다. 부부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대상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위기를 만나 서로 비난하는 상태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동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협력해야 한다.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두 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존재감 전쟁이다. 큰 아들은 전쟁에서 유리하다. 이미 부모가 존재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 태도에서 큰 아들에 대한 인정이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작은 아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의도적으로 부모를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아들도 처음 몇 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 위해 형과 경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깨닫는다. 형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형을 앞지를 수 없다는 것을.  

방법을 바꾸어 형과 대립하는 방식을 택한다. 형과 정반대의 성향을 갖게 된다. 형이 덥다고 창문을 열면 동생은 창문을 닫는다. 형이 운동을 좋아하면, 동생은 운동을 싫어한다. 형이 내성적이면 동생은 외향적이고, 형이 무디면 동생이 예민하다. 형이 순종적이면 동생은 반항적이다. 

형과 대립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형과 반대의 성향을 가짐으로써 부모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다. 형을 그대로 따라 하면 형에게 묻혀버리니까. 

형과 다른 성향을 갖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모 관심을 받으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를 장악하는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다. 

형이 장악해 버린 세상에 짓눌려 살던 동생은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동생은 도무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자폭한다. 반전을 노리는 것이다. 기회를 엿보면서 부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어떤 아이는 아프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자주 아픈 아이가 있다. 아프면 부모가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부모를 독차지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사고를 친다. 부모가 욕을 하든 더 잘해주든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 어찌 되었든 무관심보다 낫다.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패배한 자녀는 승리의 쾌감을 맛본다. 자녀는 통하는 방법을 반복하고, 반복은 패턴이 된다. 

왜곡된 패턴을 깨고 새로운 패턴으로 가고 싶다면, 성향이 서로 다른 자녀를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 작은 아들이 목표를 세우고 철저히 계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부모에 대한 갈망이 있다. 모자란 그 무언가를 다른 것으로 채우고자 할 때, 문제가 일어난다. 자녀 마음속 텅 빈 공간을 부모 사랑으로 채우자. 테러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아빠가 아들을 발로 밟았을 때, 자존감도 함께 짓밟은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는 남편을 도울 수 있다. 아빠가 후회하고 있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감정’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 

남편이 아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다. 아내 도움 없이 남편이 아들에게 다가서면 마음 열기가 힘들다. 아빠가 한 걸음 다가오면 한 걸음 물러선다. 아빠 마음을 엄마가 전달해주고, 아들 마음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아빠는 정확한 말로 표현해야 한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아들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보이지 않지만 아들의 마음속 빙산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얼음이 녹는 동안, 계속 따뜻해야 한다. 추워지면 빙산은 다시 언다. 아빠 마음이 잘 전해지면 아들은 잘못을 뉘우칠 것이다. ‘부모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면 아이는 조용히 자기를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 자기 변명을 할 수 없다. 

 

부부가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의 힘을 합쳐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빠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나보다 형을 더 사랑해’라는 자녀의 왜곡된 인식을 바꾸려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자녀의 패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반영해 자녀를 양육하기 바란다. 

엄마는 자녀의 정서적 측면에 아빠보다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빠는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엄마보다 많은 영향을 준다.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딱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의 서로 다른 강점을 인정해야 한다. 

엄마는 상처받은 아들에게 부모 사랑을 감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눈빛, 태도, 말투, 스킨십 등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면 자녀는 엄마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아빠는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빠는 자녀와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함께 외출해서 점심을 먹거나, 자전거를 같이 타거나,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등 활동 위주로 시간을 보낸다. 아빠가 아이와 활동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자녀에게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

‘아빠는 내게 관심이 많구나. 아빠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자녀 역시 가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자녀에게 부모 둘 다 필요하다. 가족이 소중한 이유이다. 동생이 형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자기답게 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고 즐긴다. 자기다운 모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세상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곳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된다. 차별 없는 사랑이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