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매일 아침 예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학급별로 각 교실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일주일에 한 번은  모든 학급이 강당에 모였다.

     예배를 드리는 태도는 학생마다 천차만별이었지만, 나는 예배를 진지하게 드렸다. 나는 예배를 인도하는 선교부장이었기 때문이다.

     강당에 모여 함께 드리는 예배에는 특송 순서가 있었다. 학급별로 특송 순서가 다가오는데, 담당자가 선교부장이었다. 음악적 재능이 없는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학급별로 참여하는 특송은 사뭇 진지했다. 학급마다 서로 잘하려는 분위기였다. 공부로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연습했다.

     고3에게는 특별한 배려가 있었는데, 특송 순서를 연초에 배치하는 것이다. 연말에는 수능이 가까워 특송을 연습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반의 특송 순서가 다가오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상식적으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학급에서 가장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친구를 찾아서, 지휘를 부탁했다. 나는 그 친구가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할 예정이었다.

     학급에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친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모든 친구들이 인정하는 독보적인 재능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부탁을 했고, 그 친구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그 친구는 자기 계획을 말했다. 다른 학급이 최신 트렌드에 맞춰 노래를 부르니까,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자고 했다. 찬송가를 부르되, 자신이 편곡한 곡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기발한 생각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찬성했고, 학급에서 특송 계획을 발표했다.

     연습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매일 아침 학급에서 드리던 예배를 생략했다. 간단하게 기도만 하고 바로 특송 연습을 했다. 특송 연습을 할 때면, 그 친구가 주도권을 잡았고 나는 옆에서 그 친구를 보조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음악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실망했고, 다른 학급 친구들은 그 친구의 높은 기준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지휘를 맡은 친구와 다른 학급 친구들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그런대로 상황을 수습했다. 내 노력과는 달리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특송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연습 시간이 되면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엎어져서 자는 친구, 불성실한 태도로 비아냥 거리는 친구, 심지어는 연습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는 친구도 있었다.

     어설프게라도 특송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던 중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지휘를 맡은 친구가, 그만두자고 말했다.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차분하게 알겠다고 말했다.

     나로 인해 평온했던 교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나는 지휘를 맡겼던 친구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 친구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이다. 도와준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도와준 것이 없었다.

     학급 친구들에게도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마음이 앞서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 매일 아침 예배를 생략하고 연습한 것도 모자라, 점심시간에도 특송 연습을 했다. 친구들이 불만을 터뜨릴 만도 했다.

     뒷수습을 해야 했다. 학교 목사님을 찾아가 이번 특송을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알겠다고 짧게 답변하셨다. 의외로 쉬웠다. 이렇게 쉬운 결정이었는데, 한 달 내내 마음고생을 했나 싶었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특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씀드렸다. 담임 선생님은 격노했다. 무슨 개망신이냐며 호통을 치셨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특송을 하지 못한 그날의 예배는 특송이 없었다. 아마 개교이래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개망신은 정말 개망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 감정적으로 혼낸 일에 대해 미안하다 말씀하셨다. 말할 수 없이 감사했지만, 내 잘못은 분명했다. 변명할 수 없었다. 사람을 세운 것도 나였고, 일을 망친 것도 나였다. 나로 인해, 담임 선생님이 난처한 일을 당한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나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공부 따위 될 리 없었다. 상황을 바로잡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몰랐다.

     기도하면서 많이 울었다. 밤 늦게 학교 강당에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우리 학급이 특송하는 모습이 실제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주께 가오니”라는 찬양이었다. 내 상상 속에 우리 반이 너무나 진지하고 아름답게 찬양을 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듯 기도를 마친 나는 그 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현실적으로 다시 특송을 한다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특송을 다시 신청하면, 수능을 코앞에 두고 특송을 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도 부담이었다. 친구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조용히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게 처음 용기를 준 것은 기숙사 친구들이었다. 내가 기숙사 기도 모임에서 고민을 나누자 친구들이 용기를 준 것이다. 일단, 시도해보라고.

     나는 용기를 내어 학급 예배 시간에 다시 한 번 특송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내가 해보자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였다. 무관심한 표정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반대 보다 무관심이 두려웠다.

     음악성이 없는 내가 지휘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악보를 복사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CD를 넣고 음악을 틀고 들어보고 따라 하고, 들어보고 따라 하는 일을 반복했다. 손가락이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단순 반복이었다.

     연습을 하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큰 소리로 물었다. “지휘는 누가 하는 거야?”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속으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누가 하지?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내가 한다고 하면 친구들이 비웃을 게 뻔하고, 다른 사람이 한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나중에 알려줄게.”

 

     차곡차곡 연습 시간이 쌓였고, 우리는 어설프게라도 노래를 따라 할 수 있었다. 수능이 다가왔다. 수능을 한 주 앞두고 드리는 예배에서 우리 반이 특송을 할 차례였다.

     당일 아침, 세상 모든 사람에게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다. 아침도 거르고, 강당으로 갔다. 특송 하는 학급이 앉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맨 앞에 의자를 잡고 기도하면서 서럽게 울었다.

     예배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반은 긴장한 듯 맨 앞에 앉았다. 10분 미리 가서 우리가 부를 노래를 불러봤다. 어설프게 리허설까지 마친 것이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대표라도 된 듯이 내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야, 근데 우리 지휘는 누가 해? 혹시 지휘자가 없는 거야?”

 

     나는 이상한 자신감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확신에 차서 말했다.

     “얘들아, 하나님께서 지휘해주실 거야. 우리 떨지 말고, 연습한 대로 하자.”

 

     몇몇 친구들의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특송은 화음이 없었다. 단음으로 단순하게 불렀다. 화려하지 않았다. 투박했다. 그러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나도, 친구들도 함께 느낀 특별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내가 기도 중에 목격했던 특정한 장면이 실제가 된 유일한 사건이다. 내가 사는 날 동안 딱 한 번만이라도, 그날의 그 전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나는 지휘봉을 잡을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 나의 실수는 내 실력을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지휘봉을 넘긴 것이다. 사람이 지휘하면 그 사람 수준으로 노래한다. 나는 두 번 다시 사람에게 지휘봉을 넘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지휘자다.

그가 내 인생을 지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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