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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12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자 먹는 것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돌봄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유연하고 지혜로워야 합니다. 나만이 옳다는 태도로는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좋은 말이지만, 삶에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지혜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사람을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 것인가, 모두가 고민합니다.

      교회 소그룹에서 분위기 어색하다고 가볍게 소주 한 잔씩 따라 마시고, 누구라도 올 수 있도록 교회 문턱을 낮춘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교회 목사님을 초대하고도 떳떳하게 술잔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두가 알듯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배려를 논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본질을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복음이 더욱 복음 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따뜻한 배려라도 복음을 왜곡한다면, 그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바울 역시 이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다른 그리스도인을 배려한다고 내린 결정이, 모든 교회를 위기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경솔한 행동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왜곡된 복음을 바로잡으려고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은 말 그대로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 가족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례받은 유대인들을 직접적으로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그리스도들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 지도자였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설교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했습니다. 할례받은 유대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빌미를 제공할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핍박받은 성도들을 돌보는 것은커녕 지혜롭지 못한 행동으로 교회를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을까 미리 걱정한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베드로의 판단은 정당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적으로 베드로의 판단은 명백한 실수였습니다. 베드로의 잘못된 결정으로, 복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중심을 잃고 흔들린 순간, 예수님의 죽음이 헛것이 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피를 흘렸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불순물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복음 앞에 율법과 할례가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지켜내기 위해, 핍박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핍박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리더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주신 십자가의 무게는 각자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대신 짊어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온전한 복음을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왜곡된 복음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에게 어떠한 빌미도 제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전한 복음을 선포한 대가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에게도 온전한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지혜를 빌미로 타협하지 마십시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대가를 치르며 온전한 복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돌봄의 말씀

갈라디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