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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바보 같지요. 앞날이 뻔히 보이는데, 두려워서 말도 못 하고 남자친구 뒷바라지를 했으니까요.

       그 사람은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했어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알았어요. 가끔 생각날 때 확인해 봤어요. 터무니없지만, 아직 기회가 있다는, 뭐 그런 생각하면서요.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프로필 사진이 웨딩 사진으로 바뀐 날은 죽고 싶었고요. 지금도 밤마다 생각해요. 이대로 영원히 잠들면 좋겠다. 살아서 뭐 하겠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남자친구가 떠나간 그날 밤,

모든 것을 잃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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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은 남자라니까, 한 번 만나 봐.”   

       “난 연하는 싫어, 언니.”

       “일단 한 번 만나 봐. 생각도 깊고 듬직한 애야.”

      교회 언니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다. 남자에게 흥미가 없던 터라, 일부러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친한 사람들이 남자를 소개할 때마다 난처했다. 예의상 한 번 만나준다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나갔다.

       듬직한 체격, 다부진 어깨, 각진 얼굴. 그의 첫인상은 듬직하다 못해 부담스러웠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일어나자, 생각했다.

       대화를 하는데 묘한 매력을 느꼈다. 외모와는 달리 부드러운 말투였다. 얼굴을 손을 가리고 웃는 소심함이랄까.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한 번쯤은 더 만나도 될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두 달이 지난 후, 고백을 받았다. 어쩌면 처음이었다. 누군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설레였던 감정 말이다. 두 사람은 기념으로 반지를 맞췄다.

       그녀의 나이 서른하나, 남자친구는 스물일곱, 네 살 연하의 남자였다. 남자친구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회사생활 5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취업을 앞두고 심란해 보였던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대학원에 가야 할까 봐.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그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의 나이 서른하나였다. 공부를 마치고 나면, 서른셋이 된다.

       사귄 지 187일이다. 선뜻 ‘결혼은?’이라고 물을 수 없었다. 우리 둘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그잔을 손으로 감싸 쥐며 창밖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 공부 마치면 우리 바로 결혼하자. 나 진심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애써 태연한 척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공부하는 동안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학생의 장점이랄까.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를 기다렸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녀는 행복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두 사람은 결혼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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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견례를 앞두고 그는 초초하게 말했다.

       “사실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까다로우셔. 특히,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셔. 하지만, 걱정 마. 계속 설득하고 있어. 반대하셔도 할 수 없잖아. 내 결심은 달라지지 않아. 너도 오래 기다렸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조각 케이크가 심장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숨이 막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평소에 그는 어머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시선을 피하고 말을 돌렸던 그였다. 그가 처음으로 어머니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였다.

       “내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니? 먹고살아야 해서야. 너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지긋지긋한 삶도 이제 끝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너 결혼할 때까지는 참아야 되지 않겠니? 빨리 장가가라. 그래야,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야 할 거 아니야.”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말했다.

       “어디서 그걸 여자라고 데리고 왔어. 내가 고작 그런 년하고 결혼시키려고 이날 이때까지 참은 줄 알아!”

       그는 답답했는지, 커피를 물처럼 들이켰다.

       “말하고 나니 속은 시원하네.”

       그녀의 반응이 없자, 그가 조급한 듯 말했다.

       “나한테 시간을 조금만 줘. 급할 거 없잖아. 올해까지 설득해보고, 그때 안되면 그냥 우리끼리 결혼해버리자.”

       한 달이 지난 후,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교양 있는 말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우리 애가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못 내리는 애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을 내리는 게 맞지 않니? 이제, 그만 만나라. 너 나이도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좋은 남자 만나야지.”

       참을 수 없었다. 남자친구를 원망했다. 독설을 퍼부었다. 남자친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다음 날도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벨은 주말도 없이 부지런히 울렸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릴레이 경주를 하듯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어머니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지만, 남자친구의 전화기는 고요했다. 그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바통터치 되지 않는 릴레이가 계속됐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회의 핑계를 댔다. 회의 중에는 모든 직원이 전화기를 꺼둔다고 변명했다. 퇴근 후에 야근, 회식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수 십 번을 전화했을 때가 그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야! 너 미쳤어. 어디서 지금 이따위로 사람을 대하고 난리야. 나도 아쉬울 거 없어, 알아! 너 같은 놈 나도 싫어!”

       그는 침묵했다. 할 말 다 했냐고 물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남자친구에게 문자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 머리맡에 전화기를 뒀다. 진동이 울리면 손을 뻗어 전화기를 확인했다. 스팸문자뿐이었다.

       ‘설마, 그럴 리 없어.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출근은 했지만, 일을 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로 집에 돌아와 누웠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전화기가 부르르 떨렸다. 그가 보낸 문자였다.

       “오늘 퇴근 후에 잠깐 보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혼자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하자. 너도 나도 할 만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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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어릴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초등학교 오학년 여름 날이었다.

       물건이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화장대 거울에 금이 갔다. 깨진 거울에 엄마가 비쳤다. 거울에 비친 엄마 얼굴이 여러 개였다. 하나, 둘, 셋.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나가면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잠깐 피하는 거라고.”

       아빠가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다.

       “당신만 살면 되는 거야? 우린 어떻게 해?”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게 아니라고 몇 번 말해. 일단 도망가야 해. 같이 살 집 구하면 내가 바로 연락할게. 일주일도 안 걸려. 나 감옥 가면, 우리 가족은 누가 먹여 살려. 나 절대로 감옥 안 갈 거야. 억울해서 미치겠다고.”

       “여보, 다시 생각해 봐. 그래도 이건 아니야. 우리도 데려가. 제발, 여보.”

       “애까지 데리고 어떻게 도망을 치라고. 비켜!”

       아버지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엄마가 뛰쳐나가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엄마는 몇 미터 끌려다가 멈췄다. 무릎이 까진 채 엎드려 세상이 떠나가듯 울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바닥에 쓰러져 우는 엄마를 바라봤다.   ‘내가 없었다면, 아빠는 엄마를 데려갔을까.’

       엄마의 대본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엄마의 대본을 고치고 싶지 않았다. 대본대로 행동하는 게 편했다.

       그녀는 적절한 시기마다 대본에 쓰인 대로 말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엄마 역시 대본에 충실했다. “곧 오실 거야.”

       ‘엄마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까.’

       어린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일주일짜리 발걸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구두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따닥따닥 내는 소리는, 모스 부호처럼 선명했다.

 

       “다. 시. 는. 돌. 아. 오. 지. 않. 을. 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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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나간 후, 엄마는 시체처럼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동해도 엄마를 깨울 수 없었다. 배고프다고 엄마를 깨우면, 밥 대신 욕을 얻어먹었다.

       방은 어두웠다. 엄마는 울다 자다를 반복했다. 이틀 삼 일에 한 번 엄마가 일어나 돈 만 원을 던져줬다. 돈을 집어 들고, 집 앞 가게에 가서 담배 한 갑과 라면을 사 왔다.

       이모에게 전화를 받은 엄마가 갑자기 달라졌다. 밤마다 화장을 짙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알록달록 이상한 옷들이 늘어갔다. 엄마가 먹고살려고 술집에 나가 일을 시작한 것이다.

       밤마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웠지만,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동이 틀 때쯤 집에 들어오는 엄마는 딸보다 변기를 먼저 찾았다. 남편 대신 변기를 끌어안고 구토와 울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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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잠깐 마주하는 엄마는 칼처럼 예민했다.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말투, 눈빛에서 세상을 향한 분노가 새어 나왔다.

       “비누 어디 갔어?”

       엄마가 물었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우리 집에 둘 밖에 없는데.”

       “나 정말 몰라.”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엄마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날은 비누가 없어졌다. 전날은 벽 시계가 멈췄다. 택배가 늦은 날도, 가스비가 청구된 날도 그녀는 뺨을 맞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엄마의 쓰레기통이었다. 엄마는 구깃구깃한 감정을 딸에게 던져버렸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난리야. 어린 게 제 아빠를 빼다 박아가지고. 생긴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하는 것도 닮았어. 한 번 만 더 거짓말하면 그때는 가만히 안 둬, 알겠어!”

       ‘두 시간만 참으면 된다.’ 엄마는 저녁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갔다. 짙은 향수 냄새를 단칸방에 채워 넣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그녀는 저녁 대신 향수를 먹었다. 엄마가 없는 저녁마다 창문을 열었다. 바닥에 누우면 한 뺨 창밖으로 밤 하늘이 보였다. 외로웠다. 울다 잠든 날이 별처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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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없는 날,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뇌의 저편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번쩍했다. 의식에서 지워졌던 기억이 7년 만에 되살아났다. 차분하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여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잘 지내지? 아빠야.”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 지금 옆에 있니? 있으면 바꿔줄래.”

 

       “….”

       엄마는 집에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볼래. 아빠가 몇 년 만에 전화했잖아. 그동안 힘들었지. 아빠가 미안하다. 지금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아빠가 곧 데리러 갈게.”

 

       “….”

       이제 그럴 필요 없다.

 

       “너 지금 우니?”

 

       “….”

       울지 않는다.

 

       “그래, 그럼 알았다. 아빠가 또 연락할게.”

 

       뚜 –

 

       변한 건 없었다. 그녀에게는 아빠의 자리는 없었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되찾았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고 말하면 엄마의 인생은 다시 멈춘다. 엄마를 위한 배려였다.

       “엄마, 전화번호 바꿔줘.”

       “왜?”

       “옛날에 빚 갚으라 했던 사람들이 낮에 전화했어. 이러다 우리 집까지 알아내면 어떻게 해. 나 무서워.”

       엄마는 화장을 하다 멈칫했다. 파우더를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를 바라보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알겠어. 엄마가 내일 전화번호 바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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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그녀가, 현관에서 남자 신발을 목격했다. 빨간색 뾰족구두와 밤색 구두가 뒤엉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태연한 듯 행동했다. 이른 새벽 밤색 구두의 사내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엄마의 대본대로 행동했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살았다.

       그 남자가 집에 오는 날이 늘어갔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녀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집에 라면 있냐?”

       “없어요.”

       “그럼 가서 사 올래? 여기 돈.”

       “아저씨가 직접 사다 드세요.”

       “버릇없다, 진짜.”

       “엄마도 없는데 왜 우리 집에 계세요. 불편해요, 저.”

       “라면 한 그릇만 끓여먹고 나갈 거야. 제발 그런 눈빛 좀 하지 마라.”

       그 말이 전해진 것 같았다. 엄마는 그날 이후 그녀를 보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주말 저녁, 엄마는 그녀를 불러 앉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깊이 빨았다. 그녀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뱉듯 말했다.

       “엄마는 그 아저씨 좋아해. 너만 괜찮으면 같이 살자.”

       그녀는 대답 대신 기침을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연기에 질식한 것인지, 엄마가 내뿜은 말에 질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미리 외워둔 자기 대사를 계속했다.

       “사실 이 집 그 사람 거야. 우리 판자촌 벗어나게 해주고, 너 학교 다니게 해준 사람이야. 그 교복도 그 사람이 해 준 거고. 같이 살기는 힘들겠지만, 적응 잘 해봐. 어차피 너 학교에서 밤늦게 오니까 잠깐만 참으면 되잖아.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독립해. 엄마는 능력 없어.”

       “….”

       처음으로 엄마에게 욕을 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무한 반복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폭탄은 속에서 터졌다. 충격에 입술이 씰룩였지만, 엄마는 몰랐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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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말대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했다. 대학 가서 고시원에서 살았다. 바로 취업해서 독하게 살았다. 월급을 아끼고 아껴 썼다. 오피스텔 보증금을 마련하고 고시원을 탈출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빠듯한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월급의 절반을 엄마에게 보내도 엄마는 모자라고 난리였다. 소소한 일이라도 하면서 용돈이라도 벌어보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무리하게 몸을 쓰면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 쉬면서 조용히 사는 게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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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엄마가….”

       엄마가 돈을 보내달라고 하기 전에 항상 하는 말이다.

       “지난번에 ‘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왔는데, 치료가 길어질 것 같다고 해서….”

       “엄마, 지금 개새끼한테 들어갈 돈 없어. 나도 간신히 살고 있는데 무슨 개한테 돈을 써. 안락사 시켜.”

       “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그러면 못 써.”

       “내가 여유가 없어서 그래. 엄마, 아무리 힘들어도 매달 보내주는 용돈 안에서 살아야 해. 매번 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말하잖아. 이번 한 번 만이라고.”

       “그 말이 벌써 몇 번째야, 엄마.”

       “무슨 몇 번째니? 오늘 처음 말한 건데.”

       “처음 아니야. 개 갖다 버려. 끊을게, 엄마.”

       엄마에게 전화가 온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옥상에 올라가 잠시 머리를 식혔다. 미니라는 개는 늙어간다. 앞이 보이지 않아 똥오줌을 못 가리고, 기운이 없어 산책도 못한다.

       엄마는 미니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듯,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 안쓰럽게 개를 쳐다보고 쓰다듬는다.

       결국, 엄마에게 돈을 보냈다. 그녀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감정과 상관없었다. 반사 신경처럼 그녀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빠가 떠난 날, 엄마의 영혼도 떠났다. 술집에 나가 웃음을 팔아 번 돈으로 그녀를 키운 엄마였다. 그런 엄마라도 살아있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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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오지 않았다. 남자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하자. 너도 나도 할 만큼 했어.”

       그녀는 혼잣말을 반복했다.

       ‘아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밤마다 고통이 찾아왔다. 울다 지쳐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꿈에서도 그녀는 편하지 않았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식은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백 일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먹고살아야 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회사로 옮겼다. 책상에 몸을 앉혀놓고 버텼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삶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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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저녁 퇴근길, 그녀는 편의점에 들렀다. 노란색 바나나 우유를 샀다. 다 마신 병을 버리지 않았다. 집에 가져와 책상에 내려놓았다.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병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지런히 놓였다. 촘촘하게 가지런히 놓인 플라스틱병이 책상을 가득 매웠다.

       플라스틱병이 갈수록 늘어갔다. 책상을 가득 메운 플라스틱병은 방바닥으로 이어졌고,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집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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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미친년아. 너 실성한 거 아니냐.”

       엄마가 찾아왔다. 주말 내내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걱정돼서 찾아온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에 그녀가 돌아누웠다. 엄마는 쉬지 않고 말했다.

       “아니, 무슨 바나나랑 원수 맺었냐. 먹으면 치워야지. 왜 쓰레기를 방에 쌓아두고 있어?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엄마, 그만 나가.”

       엄마는 듣지 못했다. 쓰레기봉투에 병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나가라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엄마는 여전히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엄마, 내 말 안 들려? 나가라고!”

       깜짝 놀란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플라스틱 통이 여기저기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엄마, 나가라는 말 안 들려. 나가서 두 번 다시는 오지 마.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나한테 연락하지도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찰싹.

 

       그녀의 얼굴이 후끈거렸다. 엄마가 노려보며 말했다.

       “별 미친년을 다 보겠네. 알겠어, 이년아. 다시는 안 오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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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죠? 엄마는 그날 이후로 정말 연락을 안 해요. 내가 딸 노릇 한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엄마에게 버림받고….

       나같이 비참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모든 걸 잃은 것 같아요. 밤마다 생각해요. 이대로 잠들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녀가 비참해졌다는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래전에 버려졌다. 아빠의 말로 버려졌고, 엄마의 말로 버려졌고, 남자친구의 말로 버려졌다.

 

       “애까지 데리고 어떻게 도망을 치라고. 비켜!”

       “고등학교 졸업하면 독립해. 엄마는 능력 없어.”

       “우리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하자.”

 

       그들의 말은 차갑고 무서웠다.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한 사람의 내면을 짓밟아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스스로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해와 용서는 그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각자 혼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문득문득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아쉬움이 남겠지만, 저마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인생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비참하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은 그녀가 그녀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남았다.

       그녀는 어렴풋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돌봤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버릴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시 주웠다. 버려진 자신을 줍고 닦아서 간직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 살고 싶은 본능이 그녀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녀가 고통받는 이유는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고통받는 이유는 그녀가 미지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해결하지 못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고통이 해결될 것인지 알지 못해 두려운 것이다.

       고통은 영원히 미지의 세계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 현재의 고통은 현재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고통은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추구할 궁극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버림받은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랑하고 희생한다. 자기 인생은 어찌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버림받을지언정,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고통이 찾아오면 깨닫는다. 자신 안의 결핍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자신을 희생시켜 관계를 유지하는 자신을 직면한다.

       같은 패턴으로 고통이 반복되면, 결국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절망과 좌절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통은 반복된다. 고통의 터널은 하나가 아니다. 쉬지 않고 계속 나타난다. 터널을 지날 때, 라이트는 자동으로 켜지지 않는다. 수동이다. 때에 맞춰 라이트를 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도로 위에 터널이 없기를 바라면 안 된다. 어두운 터널을 만나면, 침착하게 라이트를 켜라. 그러면, 당신은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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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자기가 힘들다고 여자를 버린 사람이잖아요. 결혼했어도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어머니를 제가 어떻게 감당했겠어요. 게다가 그 사람은 마마보이처럼 행동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그 남자가 그리운 게 아니에요. 사랑받았던 감정이 그리운 거죠.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제 자신이 후회스러운 거죠. 사랑받으려고 너무나 비싼 값을 치렀어요.

       언젠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죠. 나이도 있으니, 평생 혼자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누군가를 만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은 괜찮아진 것 같아도,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르고요. 지금은 그냥 제 자신을 조금 더 알고 싶어요.”

       그녀가 라이트를 켰다. 터널 세 개를 지나는 동안 라이트를 켜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다음 터널에서는 그녀가 때에 맞춰 라이트를 켤 수 있을 것이다.

       라이트를 켜고 끄는 일은 번거롭다. 그녀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라이트를 제때 못 켰다고 우는 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언젠가 하늘의 찬란한 빛이 그녀의 앞길을 비춰줄 것이다. 눈부신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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