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매사에 부정적이에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확대해석해서 혼자 걱정하죠. 우리 아이가 좀 작아요. 말도 늦고. 아내는 밤마다 인터넷을 뒤져서  키 크는 데 좋은 음식,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샅샅이 뒤져요. 주말마다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니고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거든요. 조금 더 기다려보면 좋겠는데, 아내는 아이가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S는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이 불만이다. 그녀의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견딜 수 없이 짜증난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아내의 부정적인 감정과 말에 전염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가 걱정할 때마다 습관처럼 말했다. 

“여보, 좋게 생각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는 나름의 가설을 제시했다. 아내의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연결해서 추론하고 있었다. 

“일단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은 어린 시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장모님이 아내와 똑같거든요. 장인어른이 젊을 때 실수를 많이 하셨나 봐요. 술을 좋아하셨고,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한 것 같아요. 도박에 빠져 빚을 져서 장모님이 갚았다는 말을 들었고요. 

장모님, 아내, 그리고 처남이 모이면 장인어른 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처음에는 ‘저 세 사람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건 아닌데,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하게 되었어요. 

장인어른의 인생이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버님께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면 장모님이 싫어하세요. 자기한테는 안하면서 아버님에게 한다고. 제가 생각할 때, 장모님은 외롭지 않아요. 아내와 처남이 있으니까요. 

살면서 자꾸 ‘장모님이 아버님을 대하듯이 아내가 나를 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시당하는 기분이 자주 들거든요. 아내가 오해도 많이 하고, 자기 멋대로 결론 내리고 비난하는 습관이 있어요. 아내가 부모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건 확실합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데, 제 능력으로 힘드네요.” 

 

남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았다. 

 

“제 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아버지가 아닐지 몰라요. 젊은 시절부터 병을 얻어서 가정을 온전히 책임지지 못했으니까요. 주로 경제적인 활동은 어머니가 하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머리맡에 쪽지를 써놓고 가셨죠.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어머니가 써놓은 쪽지를 보고 아버지를 돌봐드렸어요. 냄비에 죽을 데워서 갖다드리라거나 식사 후에 잊지 말고 약을 챙겨 주라는 거였죠. 

어릴 때는 아버지 옆에 누워 대화를 많이 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그러지 못했어요. 어머니도 제 뒷바라지를 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저는 공부할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제가 입대하고 얼마 안 되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휴가를 나와서 장례를 치르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참 많이 울었어요.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가슴에 사무치더라고요.” 

 

그는 살아오면서 부모님에게 어떤 부탁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사춘기 방황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가족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면 가정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할 자격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그 말을 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는 두려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불안해서 물었다. 

“엄마, 힘들지 않아?” 

어머니의 답변은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그의 귓가에 전해졌다. 

“아니, 엄마는 전혀 힘들지 않아.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엄마를 걱정해주는데 뭐가 힘들겠어. 조금만 쉬고 일어날게. 걱정하지 마.”  

 

어머니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TV에 바다가 나올 때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 나는 우리나라 바다 색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나중에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여줄게. 조금만 기다려.” 

어머니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젊은 날에 쉬지 않고 고생을 한 탓일까. 그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혼자 시골에 살던 어머니가 감기 몸살에 걸린 줄 알고, 패혈증을 방치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를 보는 순간, 그는 누군가 예리한 칼날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두 다리에 힘을 잃고 쓰려졌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겪은 그는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울지 않겠노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두 번 다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해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했다. 

기회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힘들면 힘들수록,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텼다. 보상은 확실했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고, 가장 빠르게 승진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선배가 미술치료를 배운다고 제 모습을 그려보라는 거예요. 종이에 대충 그렸죠. 선배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제가 입고 있는 옷에 아무 장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단추나 벨트, 무늬, 색상도 없다고. 어린 시절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다고. 

그런데 얼굴만은 활짝 웃고 있데요. 선배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냐고.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나요. 친하지도 않은 선배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죠. 눈물 콧물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거든요. 그때까지 숨겨 왔던 마음 속 비밀을 들켜 버린 것 같았어요.그 말 한마디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힘들어도 웃어. 이렇게 웃기까지 힘들었잖아.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마. 어렵게 되찾은 웃음이니까’라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런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효력 없는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아내와 관계를 생각하면, 그는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되게 보는 아내. 아무리 설득하고 대화해도 바뀌지 않는 그녀의 부정적인 관점 때문에 절망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조용히 파괴하고 있었다. 

 

***

 

 

남편은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을 고민하면서 정작 자신이 아내를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긍정적인 성향은 그의 성품이 아니라, 그의 노력에 산물이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특별한 몇몇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그 증거다. 

아내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역설이다. 아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한다.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이 이중적으로 보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긍정적인 성향은 아내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주었던 긍정적 태도가 부부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남편의 일관된 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호소는 아내의 감정을 차단한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감정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감정은 가치중립적이다.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감정 역시 적절히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부부관계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배우자가 화를 낸다고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 감정이 표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모든 감정은 수용되어야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방식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표현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분노를 느낀다고 폭력적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다.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훈련은 일생을 거쳐 성숙되어야 한다. 왕도는 없다.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배우자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 분명한 신호가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그 필요를 먼저 인식할 수 있다면 부부 행복은 보장된 것이다. 

 

아내 역시 건강한 방식으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주변인으로 전락시켰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편에게 투영된 것이다. 아내에게 남편은 외부인이다. 아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편안하게 그와 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더라도 대화해야 한다. 피하거나 물러서면 안 된다. 남편은 아버지가 아니다. 

남편보다 아이와 더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다. 부부는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부부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각자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대화하기 힘들다고, 남편을 포기해버린 아내는 절대로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아이에게 상처 주게 된다. 

남편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서로 다른 기질, 관점, 성장 과정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가 충분히 아이를 걱정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아내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남편은 어릴 적에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머니는 고통스런 상황에도 한 번도 아들 앞에서 “힘들다, 어렵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의도와 달리 보이지 않는 계약서 뒷면에 무언의 명령이 적혀 있었다. 

“나도 불평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불평하지 마.” 

남편이 그 흔한 반찬 투정 한 번 하지 못하고 성장했다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아이”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쓰인 조항에 따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잘 키워도, 그늘이 드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에 내면에 찾아온 결여는 일생 동안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든다. 

불가능한 현실을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했던 경험이 그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실패감이나 죄책감을 느낀다. 부정적인 생각이 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나쁜 것이 아니다.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감정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남편이 살아남으려면 보이지 않는 계약서를 찢어버려야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이다. 아내는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의 약함을 아내와 공유하는 사람은 그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살 필요가 없다. 

그 공허한 마음을 누가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젊은 날, 당신에게 아름드리 꽃바구니처럼 다가온 아내뿐이다. 남편이여, 아내의 품에 안겨라. 진정한 남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