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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1-2

      사람들이 뽑은 것도 아니요, 사람들이 보낸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도로 삼으셔서, 사도가 된 나 바울이,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과 함께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돌봄의 말씀

         나는 책을 살 때 저자 소개를 먼저 봅니다. 저자가 살아온 삶이 책의 주제와 맞아떨어질 때 믿음이 갑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책 한 권도 읽을 맛이 납니다. 여기에 겸손한 문체까지 더해지면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사버립니다. 실력과 인성을 갖춘 저자를 만났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갈라디아서의 저자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원래 겸손한 사람인데 오늘은 뭔가 다릅니다. 다짜고짜 자신이 사도라고 말합니다. 조금 과장하면“야, 나 사도야. 알겠냐?”라고 말하는 겁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어, 바울 왜 이러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강한 말투가 부담스럽습니다.

         겸손은 기독교의 덕목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바울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는 거짓 복음으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바울이 도시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그 틈에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개척한 교회를 찾아와 복음을 왜곡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명석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가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바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바울이 누군데? 그 사람은 사도가 아니야. 사도는 열두 명이잖아. 예수님이 직접 선택한 제자들 이외에 또 다른 사도 있다는 말이야?”

         성도들의 귀가 얇아졌습니다. 바울에 대한 신뢰가 흐려지고, 거짓 복음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편지 서두에 인사말보다 자신의 권위를 먼저 내세운 이유입니다. “나 사도야. 사람들이 세운 사도가 아니고, 사람들이 파송한 사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우신 사도야.” 그의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진술을 통해 그의 주장에 정당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인사할 여유도 없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유괴범이 들어왔으니 다급할만합니다. 바울은 예리한 복음의 칼날로 사정없이 침입자를 내려칩니다.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사이 그 곁에 어린 자녀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바울의 모습도 보일 겁니다. 강하지만 약한, 약하지만 강한 바울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왜곡된 복음은 갈라디아 지역 교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나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나는 상담실 안에서 왜곡된 복음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닙니다. 온전한 복음입니다. 왜곡된 복음은 우리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교묘하게 결합되어 돌연변이 신앙생활을 만들어냅니다. 목사, 장로, 집사, 성도,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내가 믿는 복음에 집중한다고 왜곡된 복음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순도 높은 복음에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믿는 복음이 조율됩니다. 조율 없이 오래 믿으면 음이 틀려집니다. 열심히 연주해도 좋은 소리 안 나옵니다. 그리스도가 기준입니다. 그 기준에 맞춰 음을 정돈해야 합니다.

         내가 갈라디아서를 여러분에게 전해드리는 이유입니다. 매일 한두 절 씩 당신에게 복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격려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지만,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오직 복음에서 나옵니다.

돌봄의 말씀

갈라디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