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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교회에서 월급을 안 준다고?” 밥을 먹다 말고, 친구가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개척교회라서 월급을 줄 수가 없어. 미리 알고 간 거야. 내가 선택한 거고.”

 

나는 오해하지 말라는 뜻에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너는 그렇게 말해도, 교회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불러다 놓고, 어떻게 땡전 한 푼을 안 주냐?”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서,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라고 말했다.

 

친구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월급도 없이 일을 한다는 말에, 답답하고 속이 상했는지, 한국교회가 이래서 안 되는 거라고 언성을 높였다.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서, 차분하게 듣고 웃어넘겼다.

 

헤어지는 길에, 친구가 넌지시 내게 물었다.

 

“너무 힘들지 않아? 너한테 이런 말 하기 정말 미안한데, 딱 한 번만 우리 아버지한테 부탁해 보면 안 될까?”

 

친구가 내던진 질문은 우리가 오랜 시간 지켜왔던 룰을 깨는 것이었다. 그런 룰이 있었기에,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달랐던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게 부탁을 하는 친구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냐’라는 말투였다.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건 안돼.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만약에 그러면, 네 얼굴 두 번 다시 안 본다.”

 

친구는 뭘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하냐는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하여간, 그 고집 알아줘야 돼. 그러니까, 매번 개고생하잖아. 왜 맨날 그런 식이야? 사람이 적당히 도움도 받을 줄 알아야지. 그 성격 좀 고쳐라.”

 

이번에는 내가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너나 잘하지?”

 

#

 

신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들어가는데 검은색 세단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뒷좌석 창문이 스르르 열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친구의 아버지였다.

 

“잘 지냈니? 여기 타라. 일부러 너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드리고, 친구 아버지의 옆자리에 탔다. 친구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다. 그 녀석이 아는 척하지 말고, 기도만 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이렇게 왔다.”

 

친구의 아버지는 내게 과분한 제안을 해주셨다.

 

신학교, 신대원을 다니는 동안, 우리 교회 와서 사역을 해라. 공부를 마칠 때까지, 사택과 사례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겠다.

 

단, 지금 사역하는 교회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이 걱정이 된다면, 내가 직접 가서 담임목사님께 공손히 부탁을 드리겠다. 그쪽 담임 목사님도 너를 아끼니, 신대원을 졸업하는 즉시, 조건 없이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해주겠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친구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까지 헤아렸는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친구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너를 보면, 내 젊을 때 생각이 나.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고 싶구나.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답변을 해주면 좋겠다. 알겠지?”

 

나는 시간을 두고 답변할 수 없었다. 거절할 것을 스스로 뻔히 알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오히려 예의 없는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했다.

 

“마음만 받아도 될까요? 제가 이렇게 젊은데, 벌써부터 사람 의지해서 남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버릇없는 말이었다.

 

차 안에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친구의 아버지는 알겠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내 손등에 얹어진, 친구 아버지의 기도하는 손이 한없이 따뜻했다. 이내 친구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고, 울음 섞인 기도가 되었다. 나 역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지 그 이유를 찾을 길이 없었다.

 

검은색 세단이 학교를 떠나고,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이라서, 마음 편히 좋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두통이 올 때까지 머리를 쥐어짜면서 고민해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제안을 거절한 이후에, 나는 온갖 고생을 했다.

 

미련하게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고, 바보처럼 혼자 버텼다. 믿음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처에서 시작된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고장난 기능 때문에, 나와 내 가족은 온갖 고생을 함께 했다. 아내와 자녀를 벼랑 끝에 여러 번 세웠다. 피눈물을 흘려도,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나 자신 때문에, 나는 정말로 괴롭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기억의 저편에서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의 스크린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나는 혼잣말로 속삭였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력하다.”

 

#

 

“야, 너 서울에서 전학 왔다며?”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명식이 형은 마을의 전설이었다. 서울에서 이사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명식이 형의 클럽에 가입을 했다.

 

명식이 형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명식이 형이 데리고 다니는 또래 역시 전부 초등학생이었다.

 

그렇다면, 명식이 형은 중학생이었을까? 고등학생이었을까? 아니다.

 

어른이었다.

 

흐릿한 기억을 추적해보건데, 적어도 이십 대 중후반이었을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골목대장을 하고 있으니, 중고등학교 형들도, 클럽에 소속된 아이들을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우리 동네 규칙을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동네 중학생이, 명식이 형이 돌봐주는 애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 봉변을 당했다.

 

명식이 형은 중학생에게 맞았다는 아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른 동네까지 직접 찾아갔다. 클럽 아이를 때리고 도망간, 중학생을 기어코 찾아내서 사정없이 패줬다. 부모가 달려 나와 욕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뜯어말려도 소용 없었다.

 

말리는 부모를 밀쳐내고, 그 집 아들을 두들겨 팰 정도니 명식이 형이 나타났다고 하면, 동네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명식이 형은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틈만 나면,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남자는 강해야 돼, 알아? 약하잖아? 그거 등신이야, 등신. 남자가 힘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한심한 듯이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쥐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다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자, 먼저 손바닥을 쭉 펴봐. 그리고, 손가락 네 개를 반으로 접어. 그다음, 손바닥 안의 살을 움켜쥔다고 생각하고, 주먹을 꽉 쥐는 거야. 그럼, 엄지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딸려오거든. 주먹 안에 살이 조금 잡혀야 힘이 꽉 들어가는 거야. 그다음에는 이걸로, 그냥.”

 

명식이 형은 이론만으로는 안되겠다는 듯이 아이들을 비슷한 체형으로 둘씩 짝을 지었다.  

 

“야,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오늘부터 서바이벌이야. 이긴 놈만 살아남는다. 지는 놈은 이제부터 우리 클럽 아니야. 바로 탈락이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죽도록 싸워. 알겠지?”

 

서로 눈치를 보고 서성거리니까, 명식이 형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치겠네. 야, 공과 사를 구분 못해? 지금은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고. 미친 듯이 싸워라. 싸우는 척만 하면, 나한테 죽는다.”

 

아이들의 반응은 대략 둘로 나뉘었다.

 

“너 죽었어”,라고 기세등등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아이들. 그리고, 잔뜩 주눅이 들어 겁을 먹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아이들.

 

승부는 금세 갈렸다.

 

명식이 형은 패배자들을 한 줄로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이놈들은 패배자야. 우리 동네에 같이 살아도, 더 이상 우리 클럽은 아닌 거지. 야, 한 줄로 나와서 이 새끼들 신발에 침 뱉어.”

 

나는 한 살 많은 형의 신발에 침을 뱉어야 했다. 뱉고 싶지 않았다. 그 형은 이미 울고 있었다. 그렇게, 비참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엉거주춤 망설였다.

 

명식이 형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뭔가 번쩍했고, 나는 잠깐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코밑으로 진한 쑥 냄새가 났다. 쑥을 빻아 둥그렇게 말아서 콧구멍에 쑤셔 박은 것이다. 그러면, 피가 멈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명식이 형은 그것마저 못마땅했는지, 내 볼을 두 손가락으로 세게 움켜쥐고 사정없이 흔들면서 말했다.

 

“야, 울어? 남자 새끼가 우냐고? 죽고 싶지 않으면, 그만 울어라.”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싸움 기술을 배웠다. 애들끼리 마주 서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학원 가듯 명식이 형의 클럽으로 가야 했다. 그것이 하루 일과였다.

 

#

 

싸움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면, 명식이 형은 친구처럼 다정했다.

 

“우리 삼촌이 비디오 가게 하거든. 언제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구해다 줄게.”

 

명식이 형의 집에 놀러 가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 십 개의 비디오테이프였다. 책상 위에 책 대신 비디오테이프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제목은 다양했지만, 장르는 단순했다. 무술 영화 아니면 액션 영화였다.

 

명식이 형의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화를 보다가 배가 고프면, 명식이 형이 끓여준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또 영화를 봤다.

 

화면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 같으면, 바깥이 어두워졌다는 뜻이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삼삼오오 집으로 흩어졌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계속 보기 위해서라도 명식이 형의 클럽에 계속 남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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