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늦잠을 자서, 새벽예배에 늦은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죠.” 

 

이해심 많은 당신에게 고맙다. 하지만, 나는 설교자였다. 

 

떡진 머리카락과 헝클어진 옷, 양치도 못한 입으로 설교를 했다. 정신이 반쯤 나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몰랐다. 

 

설교를 마치자, 조명이 꺼지고 개인기도 시간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 같은 놈을 목사라고 생각할까? 온 교회에 소문이 퍼지겠지? 난 이제 끝났다….” 

 

마음이 무너졌다.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배실 밖으로 나갔다. 치약으로 입을 대충 입을 헹구고, 예배실 문 앞에서 섰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예배실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죄송하다고 말했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면, 사람들의 냉소적인 표정과 마주할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들자,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목회가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냐고, 사과하실 필요 없다고, 오히려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다음 사람도, 그다음 사람도…. 모두가 그랬다. 

 

마지막에 나온 사람은, 내가 밖에 서 있는지 몰랐다며 기도가 길어져 너무 늦게 나왔다고, 내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늦은 것을 기억조차 못 하는 듯 했다.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온갖 파괴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모든 사람들, 최소한 실수의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만의 가설일 뿐이다. 

 

풍선처럼 부풀어진 가설은, 진실이라는 작은 바늘 하나에 “펑!”하고 터져버린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고, 사람들은 의외로 당신의 실수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면, 자신을 비난하지 마라.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할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혹독하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만큼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기 바란다. 진실은,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실수를 용납하시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