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진아,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김종민은 골목에서 이수진을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도하면서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그래도, 말을 해야지. 혼자 다니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어서 가자.” 

 

이수진은 평소와 다른 김종민의 행동에 당황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했던 김종민은 유독 그녀에게 어색하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선교지에 오더니, 사람이 조금 달라졌네.’ 이수진의 생각이었다. 

 

그녀가 공동체에 합류했을 때, 여기저기서 한 마디 씩 했다. 

 

이수진이 민망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행히,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온 이수진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두 살 동생, 최소연이 한쪽 구석으로 이수진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언니, 종민이 오빠 어때?” 짓궂은 표정이었다. 

 

이수진은 황당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가 없어졌을 때, 종민이 오빠가 어땠는 줄 알아?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사방팔방 앞장서서 뛰어다니더라고.” 

 

이수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민망한 상황을 다른 말로 피해 가고 싶었다.

 

“책임감 때문에 그렇겠지. 단기선교팀 리더잖아.”

 

“이 언니 봐라? 내 촉을 몰라? 나 아직 감 안 떨어졌어. 도연 언니랑 재훈 오빠 사귀는 것도 내가 제일 먼저 눈치챘잖아.” 

 

“그건 그거고. 나랑 이어붙이지 마.”

 

“아니야, 언니. 종민이 오빠가 언니 좋아하는 것 같아.” 

 

멀리서 두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최소연은 이수진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두고 봐. 최소연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이수진에게 김종민이 다가왔다. 

 

“아까 너무 예민하게 말해서 미안해. 걱정돼서 그랬어.” 

 

이수진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최소연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종민 오빠가 언니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에요. 제가 말도 안 하고 돌아다녀서 그렇죠. 죄송해요, 괜히 걱정 끼쳐서….”

 

김종민은 이수진의 말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단기선교 내내 고생 많았어.”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이수진은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중간 자리 창가에 기대어 앉은 이수진의 옆자리에 최소연이 잽싸게 앉았다. 

 

최소연이 짓궂은 표정으로, 이수진의 옆구리를 꾹 질렀다. 

 

이수진은 멋쩍게 웃었다. 김종민의 다정한 말투도, 최소연의 짓궂은 장난도 싫지 않았다. 이제껏 누군가 자신을 걱정하며 찾아준 기억이 그녀에게 없었다. 

 

#

 

매력은 상대적이다. 매력은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 자신 안의 결핍이 상대방의 강점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내게 없는 그 무엇을 그가 가졌고, 내가 받지 못한 그 무엇을 그가 채워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1.  

 

단기선교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처음 맞이한 주일, 열두 명의 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단기선교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두세 시간의 모임을 마치고, 팀원 모두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종민은 수진에게 다가갔다. 

 

“수진아, 잠시 시간 내줄 수 있어?” 

 

수진은 당황했다. 

 

“지금이요?”

 

“응, 조금 있다가. 일행들 다 흩어지면, 근처 카페에서 잠깐 보자.” 

 

수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언니, 가자.” 

 

멀리서 최소연이 손짓했다. 

 

수진은 최소연에게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최소연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다음에 봐, 언니.” 

 

수진과 종민은 카페에 나란히 앉았다. 종민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꿀꺽 삼켰다. 

 

“수진아, 저기 있잖아….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수진은 종민이 긴장한 채로 말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녀에게 종민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밝은 남자였다. 종민이 말을 더듬으면서까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우리 진지하게 만나보면 어떨까 해서….” 

 

수진은 머그컵을 가만히 들어 올렸다. 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쥔 채로 잠시 침묵했다. 그녀 역시 서툰 것은 마찬가지였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당황했지? 내가 괜한 말 꺼내서 미안해. 부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종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애써 웃는 얼굴 뒤로 나타나는 실망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우리 이제 일어날까?” 종민이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수진이 말했다. 

 

“오빠, 우리 지금 당장 결정하지 말고, 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종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한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도하면서, 오빠를 조금 더 알아가고 싶어요.” 

 

#

 

연애를 시작하는 시기, 남자와 여자의 관점은 서로 다르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여자가 곧장 결정을 내려주기를 원한다. 혼자서 D-day를 정하고, 여자에게 제안서를 내밀듯 말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대답은 “좋다, 싫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좋다, 싫다”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 고백에 앞서,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편안한 관계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좋아하는 감정이 서서히 싹트는 것이다. 어쩌면 여자에게는, “우리 사귈래?”라는 진부하고 유치한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연애를 시작할 때, 비장한 각오는 필요 없다. 상대방을 몰아세우면 결국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실망과 상처 뿐이다. 

 

누구나 시작은 서투르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능숙하시다. 두 사람을 향한 온전한 뜻을 이루어가신다. 

 

 

 

3.

 

수진은 종민에게 2주의 시간을 요구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는 뜻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같은 마음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 믿었다. 

 

종민은 동의했다. 적어도 거절당하지 않은 것이다. 수진의 진지한 태도가 고마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수진에게 더욱 마음을 빼앗겼다. ‘아, 이 여자구나. 절대로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된다.’ 종민의 생각이었다. 

 

수진은 다음 날부터 새벽 예배에 참석했다. 두 번 다시 남자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결혼할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연애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기도는 순조롭지 않았다. 종민과의 만남을 놓고 기도하는 동안, 이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아픈 기억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오래된 일이라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2주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확실한 응답은 없었다. 종민을 다시 만나, 솔직한 생각을 말할 작정이었다. 

 

종민은 수진과의 관계가 맞냐 아니냐를 놓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그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종민의 시간 역시 빨랐다. 2주의 시간이 지나, 수진을 다시 만날 때가 온 것이다. 

 

“수진아, 잘 지냈어?” 종민이 카페에 마주 앉아 수진에게 물었다. 

 

“네, 오빠도 잘 지내셨어요?” 수진이 말했다. 

 

“응, 그럭저럭. 일단, 수진이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어. 최대한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

 

수진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오빠가 싫다는 말은 아니에요. 제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종민은 움찔했다. 

 

“아…. 그렇구나. 그래, 그럼.” 

 

“미안해요, 오빠.” 

 

“아니야….” 

 

종민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진아, 나 조금만 더 기다려도 될까? 마음의 준비가 되는 동안 말이야. 내가 싫은 게 아니라면….” 

 

“잘 모르겠어요….” 수진이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종민에 말에, 수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 모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기도는 OX 게임이 아니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놓고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속에 동그라미나 엑스를 표시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기도의 중심에 놓고 맞냐 아니냐를 집요하게 묻는다. 

 

모든 기도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라도 예외는 없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에 정답은 없으나,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결정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과정을 위한 기도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가장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수년 동안 연애를 해도, 결혼한 첫날 새로운 사람을 마주한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질 만큼,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배우자에 대한 신비하고 놀라운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연애나 결혼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위험하다. 개별 사례가 아닌,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의 중심이 되셔야 한다. 

 

시작부터 결혼을 논한다면, 씨를 뿌리기 전에 열매부터 얻고자 하는 욕심일지도 모른다.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라. 결과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서로 끌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감정을 존중하신다. 서로의 감정 안에 평안함이 있다면,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부디, 용기를 가져라. 

 

 

4.

 

수진은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종민의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괜찮아,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어쩌면, 그녀가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종민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급하게 일어나, 카운터에서 티슈를 집어 왔다. 수진에게 티슈를 건네고, 그녀의 감정이 차분해질 때를 기다렸다. 

 

수진은 한참 동안 눈물을 닦아내다가, 목이 잠긴 채로 말했다.  

 

“죄송해요. 울어서….”  

 

수진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했다. 

 

종민은 그녀의 속마음을 엿듣기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수진아, 나 그냥 네 옆에서 기다릴 거야. 부담 주지 않을게.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서 조급했나 봐.”

 

“아니에요, 오빠. 저도 오빠한테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아요.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만나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종민의 서툰 감정을 수진이 받아준 것이다. 서툴지만 따뜻한 그에게 수진은 자꾸만 끌렸다.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자신을 과도하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결핍을 가진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드러내고, 상대방이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불안한 마음이 앞서, 약속이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상처가 있다. 당신은 안전한 사람인가?”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대화에 반영된다. 

 

“남자를 못 믿겠어요. 이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거든요.”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당신은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세요. 그래야, 시작할 수 있어요. 두 번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우리 아빠는 폭력적이었어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죠?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나는 다른 건 참아도, 거짓말은 못 참아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죠? 언제나 진실을 말해줄 거죠?” 

 

“저와 교제하고 싶으시면, 교회는 꼭 다니셔야 해요.” 

“나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불안한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용기 내어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서두를 필요 없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상처를 드러내면 상대방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편견은 무섭다. 상대방은 내 의도와 달리 내 결핍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본다. 

 

“내 전화  왜 안 받았어?” 

‘아, 또 집착하는구나. 내가 바람이라도 피운다고 생각하는 건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아, 또 시작이다. 조금만 목소리가 커지면, 자기 아빠라고 생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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