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화를 안 받는 거죠?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문자도 남고, 부재중이라고 뜨잖아요. 몇 시간 동안 전화를 안 받으면 당연히 걱정되지 않겠어요?”

        남편이 말했다.

        “미용실 갔다고 말했잖아. 여자는 남자와 달라. 몇 시간 걸린다고. 아는 언니하고 밥 먹고 머리하느라 확인을 못했어. 문자보고 바로 전화했잖아.”

        아내가 남편 말을 잘랐다.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말이 안 되잖아. 밥 먹으면서 문자 확인 못해? 미용실 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야. 확인할 시간 있었잖아. 미용실에서 요즘 다 휴대폰 가지고 이것저것 하던데, 당신은 휴대폰을 맡겼다고 했잖아.”

        “휴대폰만 따로 맡긴 게 아니라, 가방에 넣고 통째로 맡겼다고. 오랜 만에 만난 언니랑 대화해야 하니까.”

        “참 나, 내가 보통 점심 먹고 전화하잖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여보, 내가 어린애가 아니잖아.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미용실에서 나와 바로 전화했잖아.”

        “세 시간이나 지난 다음이지.”

        “됐어. 그만해.”

        “당신이 걱정 되어서 그런 건 알지?”

        “내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건 이해했어?”

        “아니, 솔직히 이해는 안 가.”

        “이해가 안 된다고? 내가 계속 설명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앞으로 개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한 말을 못 믿겠다는 거잖아.”

        “아니, 믿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가 거짓말한데? 그건 논점을 벗어난 거야. 당신이 전화를 안 받은 이유에 대해서만 말해. 주제에서 벗어나지 말고.”

        “나는 당신이 날 이해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돼. 사실대로 말했잖아. 다음부터는 전화 받겠다고 했고.”

        “그래. 다음부터는 전화를 받아. 그럼 대화 끝난 거지?”

        “당신 정말 답답하다. 나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J는 결혼 8년차 두 아들의 엄마이다. 남편의 가정적인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때로 그가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힘들다고 말했다. 남편은 회사와 집 밖에 모른다. 다른 취미 활동도 하지 않는다.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아내가 힘들어하자 아내에게 우선순위를 두었다.

        “남편이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반쪽짜리 고마움이죠. 제가 뭘 해달라고 하면 싫어하는 게 눈에 보여요. 자기 방식이 있다고,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니 명령하지 말라고요. 제가 무슨 명령을 하겠어요? 남편이 무시하니까 더 이상 부탁하고 싶지 않아요. 도와준다고 뭘 해놔도 제가 다시 해야 돼요. 부탁한대로 해주면 좋겠는데 자기 방식으로 하니까 저도 피곤하고 힘들죠.”

        남편은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의 규칙에는 점심에 아내에게 전화하고 안부 묻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하기 위해 나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회의 중이거나 출장을 가서 동료들과 차를 마시다가도 잠깐 나와 전화를 한다. 집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다짐한 행동 수칙을 지킨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기분이 묘하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약간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 전화해도 받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내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아내를 속이면서 자기 시간을 가져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 무엇을 위해 일하나요? 가족을 위해서죠. 제 신념입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게는 최고의 보상이죠. 아내는 모를 거예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을 줄 수는 없거든요. 그때 마음이 좀 힘듭니다. 제가 어린애처럼 느껴져서 자책감이 들어요. 그러다 다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내를 돕죠. 아내는 잔소리하고 투정하고, 계속 원하는 것을 말하지만 묵묵히 합니다. 완벽한 건 없잖아요.”

        아내가 말했다.

        “이 사람이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자기 방식 대로 하고 혼자 보람을 느끼죠. 남편이 상처받을까봐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요.

        자기가 하는 일, 한 말에 대해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남편은 자기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지에 대해 인정해달라고 하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제가 고맙다고 느껴야 고마운 거죠. 답답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남편은 대학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각 부서의 업무가 충돌할 경우,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한다. 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찾아가 충분한 대화를 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는 경직되어 있어서 윗사람에 말에 그대로 따라야 했다. 업무지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 역시 상사가 명령하듯 말했다.

        “회사라서 어쩔 수 없죠. 명령하듯 말해도 다 따라야 해요. 아내가 명령하듯 말하는 게 싫어요. 도와줘야지 생각하다가도  명령하듯 짧게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내가 집에서도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어요.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잖아요. 아내가 말만 예쁘게 하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어요.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아내는 못 알아듣더라고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했다. 뉴스 기사를 보고  의견을 말하면 그는 조용히 비웃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자기 생각이 분명했고, 그것을 관철시켰다. 아내 생각은 늘 모자라고 부족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받은 대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아내가 남편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육아와 살림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무시당한 감정을 그대로 돌려줬다.

***

        아이들은 종이 상자 안에 들어가기 좋아한다. 이유는 모른다. 상자 안이 아늑해서 일까 아니면 혼자만의 영역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혼자 들어가 놀 수 있는 상자는 아이들에게 놀이 공원만큼 즐겁다.

        상자 안에 들어가 좌우로 몸을 흔들면 상자는 배가 된다. 부모가 상자를 끌어주면 기차가 되고, 아이가 상자 안에서 잠들면 침대가 된다. 상자가 익숙해진 아이는 상자를 자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상자만 보면 본능적으로 들어가 앉는다.

        때론 상자 때문에 싸운다. 좁은 상자 안에 다른 친구가 들어오려고 하면 나가라고 떠민다. 충분한 공간이 있어도 못 들어오게 한다. 다른 친구는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상자가 찢어진다. 혼자 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지만 둘이 들어가기에는 좁다. 찢어진 상자를 보면서 서로 비난하면서 울고 난리다.

        부모는 찢어진 상자를 버린다. 다시 고치고 붙여서 둘이 같이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이상 물건을 담는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찢어진 상자는 버리는 것이 맞다.

        부부가 서로 만나 결혼하기 전에는 각자의 상자에서 살았다. 혼자 들어가기 적당한 상자이다. 둘이 들어가기는 좁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 상자를 합친다. 나란히 붙여놓고 노는데 재미가 없다.

        남자 꼬마가 말한다. 내 상자에 들어오라고. 여자 꼬마가 말한다. 싫다고.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한다. 결국, 가위바위보를 한다. 여자 꼬마가 졌다. 남자 꼬마의 상자로 옮겨간다. 남자 꼬마는 다리를 모으고 공간을 만들어준다. 여자 꼬마는 조심성 없이 막 들어와 자기 상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불편하다고 다리를 펴다가 상자 모서리 부분이 찢어진다.

        남자 꼬마가 말한다.

        “조심해!”

        자기가 오라고 해놓고 막상 오니까 푸대접이다. 여자 꼬마는 자기 상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남자 꼬마는 그냥 있으라 말한다. 둘이 서로 밀치고 싸우다가 상자가 찢어진다. 남자 꼬마는 화가 나서 여자 꼬마의 상자를 발로 찬다. 상자가 찢어진 채로 너덜거린다. 둘은 서로를 비난한다.

        종이 상자는 생각, 기준을 의미한다. 결혼 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았다. 결혼하면 그것을 합쳐야 한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 없다. 정확히 절반씩 합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다. 종이 상자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상자를 만드는 것이다. 종이 상자는 힘이 없고 약해서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둘이 들어갈 넉넉한 상자를 만들어야 한다. 집착은 하지 말자. 익숙해지면 버려야 한다. 곧 세 사람, 네 사람이 쓰는 상자로 갈아타야 한다. 상자 안에 들어갈 가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만나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면 위기를 만난다. 연애, 결혼, 출산. 단어 몇 개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각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가 만든 공간 안에는 혼란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조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면 안 된다. 종이 상자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상자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잠깐 쓰고 버릴 상자를 만들다가 우리는 인생의 끝을 만나게 된다.

        남편은 혼자 쓰던 상자를 버리고 아내가 원하는 상자에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내가 쓰던 상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상자 속 아내가 혼자 가지고 놀던 인형과 장난감, 즐겨 먹던 사탕 봉지와 과자 부스러기를 살펴보자.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모르면 물어보자. 아내가 원하는 것을 새로운 상자에 채워 넣어라. 그녀가 좋아한다.

        아내는 남편의 상자를 발로 걷어차지 말자. 정성이 깃든 상자이다. 버리라고 하면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다. 버리는 걸 쉽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 당장 버리라고 재촉하면 남편은 그 상자 안에 머문다. 미련이 남는다. 너덜너덜해진 종이 상자 안에서 혼자 산다.

        가족과 단절된다. 남편을 모질게 대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하라. 새로운 상자로 남편을 초대하자. 그가 새 것과 낡은 것 사이에 걸쳐 있는가? 새로운 상자로 완전히 넘어 올 수 있도록 그를 격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