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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혜연은 용기를 내서 목사님과 마주했다. 교회 목사님이 혜연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밤새 고민하며, 정리해 두었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막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그런 혜연이 답답했는지, 옆구리를 꾹 찌르며 속삭이듯 말했다.

 

“뭐 한다냐? 목사님 모셔다 놓고.”

 

혜연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목사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가 있어요. 저는 목사님이 무서워요.”

 

목사는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차분해졌다. 오랜 경륜으로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무섭다고요?”

 

혜연은 움찔했다. 파도처럼 후회가 밀려왔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목사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겠어요?”

 

혜연은 혹시라도 목사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주일 설교를 하실 때와 수요 예배 설교를 하실 때, 목사님의 설교 스타일이 조금 다르신 것 같아요….”

 

“네, 정확히 아시네요. 주일 설교와 수요 설교는 청중이 다르잖아요. 주일에는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아무래도 부드럽게 설교하지요. 하지만, 수요 예배는 청중이 달라요. 헌신된 분들이고,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이니까 그에 맞게 설교하지요.”

 

“저는 수요 예배에 가면 무서워요, 목사님.”

 

“그러니까, 뭐가 무섭다는지 말씀해 주세요.”

 

혜연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고 싶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말씀을 전하시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면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목사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아,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수요 예배에서는 제가 조금 강하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요즘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분들이 많아서요.

 

언제까지나 새가족일 수는 없잖아요. 교회 오래 다니셨으면, 말씀을 듣고 자라나야죠.자매님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적응이 되실 거예요.”

 

벌써 6년이었다. 혜연은 적응할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긴, 혜연에게 목사가 다시 물었다.

 

“최근에 그런 적 있으세요?”

 

“지난주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다가 성도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어요.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게 뭐냐고. 그게 성도의 바른 자세냐고. 저는 목사님이 소리를 지르시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 기억나요. 그날 몇 사람이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그래서, 깨워준 거예요. 제가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화가 났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제가 소리를 지른 건,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예요. 항상 깨어서 말씀을 들어도 모자란 판에, 예배 시간에 졸다니요. 그럴 수는 없지요.”

 

목사는 혜연의 반응을 살폈다.

 

“맞아요, 목사님. 저도 목사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아요. 일상생활에서 목사님 말투는 설교하실 때와 다르시거든요. 평소에는 지금처럼 편안하게 말씀해주시잖아요. 하지만, 저한테는 설교하는 목사님과 대화하는 목사님이 구분이 되지 않아요. 지금처럼 편하게 대화하다가도 목사님이 버럭 화를 내실까 무섭거든요.”

 

목사는 시계를 바라보며, 조급한 심정을 드러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어릴 때 상처받은 기억이 있으세요? 저는 한 교회에서 10년 넘도록 목회를 했는데, 자매님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 만나보거든요.”

 

혜연은 깜짝 놀랐다. 친정 엄마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서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혜연의 그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그녀의 엄마가 나섰다.

 

“목사님, 말씀 들으니께, 생각나는 것이 있네유. 사실, 얘 시아버지가 그리 무섭다네유. 신혼 초에 아주 무서워서 혼났다고, 그리 말한 기억이 나유. 혹시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유?”

 

목사는 “아하!”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단서를 발견한 것이었다. 혜연을 대하는 태도가 급변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매님, 그럴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저도 당분간은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자매님 역시,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셔야 해요. 주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혜연은 엄마가 야속했다.

 

목사는 심방을 마무리하는 기도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강하게 선포했다.

 

#

 

혜연은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엄마에게 공격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평정심을 되찾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제 목사님 앞에서 왜 그렇게 말했어? 나 속상했어. 내가 무슨 환자 같았잖아. 엄마까지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떻게 하라고. 목사님이 나를 얼마나 오해하시겠어.”

 

혜연의 엄마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뭐 잘못했다냐. 니가 그래 말을 안하고 있으니까, 내가 대신 말해준 것이여! 니가 또박또박 말을 했으면, 엄마가 그리 말을 했것어? 답답하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한 마디도 못 혀…. 다 커 가지고 답답해 죽것네. 그래서, 지금 엄마한테 따지고 있는 겨?”

 

운전대를 잡고 있던 혜연은 엄마가 내던진 말에 화가 났다. 빨간색 신호 앞에서 차가 멈춰 섰을 때, 혜연은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는 왜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 나 정말 답답해.”

 

엄마는 뒷자리에 앉아, 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엄마가 입을 처닫고 쥐 죽은 듯이 있어야, 니 속이 편하제? 알것어. 이제 그럴 겨. 교회도 이제 너 혼자 나가 이것아. 억지로 늙은 애미 끌고 나가지 말고!”

 

마트에 도착할 때까지, 혜연은 엄마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마트 사이를 거닐었고, 택배 직원처럼 식재료를 차에 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혜연의 엄마는 쉬지 않고 푸념했다.

 

#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교회 목사님 말씀대로, 제 상처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런 문제로 상담받는 게 조금 웃기지만, 상처 때문이라면 치유받고 싶어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의도적으로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직설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교회를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더 건강하고 따뜻한 교회도 있어요.”

 

“아니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요.”

 

혜연은 밝은 목소리로 즉시 대답했다. 의외였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가 좋아요. 목사님의 말씀으로 은혜받고 있고요. 단지, 목사님의 표현 방식이 제게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목사님이 심방 오셨을 때, 제 생각을 솔직히 표현을 못 해서 답답했던 거예요.”

 

그녀는 잠시 기억에 잠긴 듯했다.

 

“이 교회가 저의 첫 교회에요. 여기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거든요. 나는 내 발로 교회를 떠나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요.”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감동의 파장은 컸다.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청량한 말투는, 먹구름 사이에서 직선으로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빛과 같았다.

 

#

 

“여보, 나 몸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아기가 나오려나 봐.”

 

예정보다 두 달이나 빨리 산통이 찾아왔다. 남편은 아내를 급하게 챙겨, 병원으로 데려갔다.

 

“괜찮습니다. 너무 무리하신 것 같아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셔야 해요. 엄마가 마음이 편해야, 아이도 뱃속에서 마음 편하게 잘 지냅니다.”

 

의사가 혜연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혜연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극성떨어서 미안해. 당신 잠도 못하고 피곤할 텐데….”

 

남편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혜연의 손을 꼭 붙잡았다.

 

큰일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아기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두 달 뒤에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부부는 행복했다.

 

일주일 뒤, 혜연에게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남편은 어제 저녁 야근으로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혜연은 지난번의 경험을 떠올렸다. 남편을 깨우고, 병원에 가는 동안 통증이 가라앉았다. 남편을 깨워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세 시간만 버티면,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여보!”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혜연은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고, 맞이한 것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였다.

 

혜연은 소파에서 의식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잠에서 깬 남편이 의식을 잃은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다.

 

곧바로 수술이 이어졌다.

 

혜연은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아기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것은 축복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의사는 혜연에게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기절해 있는 동안, 아기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아, 아기의 뇌가 망가진 것이다.

 

 

#

 

“기다려야지.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안 돼.”

 

혜연의 남편은 아들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가만히 손을 내리고, 아빠의 눈치를 봤다. 아빠가 한 눈을 판 사이에, 손으로 스팸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내려놔! 아빠가 몇 번 말했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들면 안 된다고!”

 

남편이 큰 목소리로 말하자, 혜연은 깜짝 놀랐다.

 

“태호야. 아빠 말 들어야지. 엄마랑 있을 때는 잘하잖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국만 뜨고, 바로 갈게.”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태호가 엄마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주말 아침 두 시간 동안은, 마음껏 스마트폰을 쓰게 해준다는 규칙을 따른 것이다.  

 

태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혜연은 남편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여보, 내가 부탁했잖아. 소리는 지르지 말라고. 태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알면서도 잘 안되네. 답답해서 그랬어.”

 

“아니야, 여보. 나도 심하게 말해서 미안해. 당신 같은 아빠 없어. 우리 태호가 특별한 거잖아.”

 

남편은 식탁에서 일어났다.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챙겨서 태호를 불렀다. 태호는 신이 나서, 아빠를 따라나섰다.

 

혜연은 현관까지 걸어 나와, 남편의 볼과 태호의 이마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태호랑 조금만 놀다 올 테니까, 당신도 집안일 하지 말고 눈 좀 붙여. 내가 갔다 와서 할 테니까.”

 

“응, 알았어.”

 

두 사람을 내보내고, 혜연은 싱크대에 서서 물을 틀었다. 수세미에 거품을 내고, 접시를 닦았다.

 

#

 

“태호야! 너 정말 왜 그래?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해?”

 

태호는 공중에 팔을 휘저으며,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태호를 당해낼 수 없었다. 팔을 휘젓고 몸을 비틀어서, 엄마 품에서 빠져나온 태호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말했다.

 

“엄마, 미워.”

 

혜연은 지쳐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가 왜 미워?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데, 태호는 그것도 몰라?”

 

“몰라. 엄마 나가. 엄마 내 방에서 나가.”

 

“태호야. 엄마가 왜 나가. 제발 엄마 말 좀 들어. 엄마 힘들어서 미치겠어.”

 

“싫어. 엄마 싫어.”

 

혜연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어깨를 떨면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보니, 태호는 책상 밑에서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차분해진 아이를 품에 안아, 침대에 눕혔다.

 

잠에 든 태호는 여느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태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혜연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

 

“태호가 오래 못 버틸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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