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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그런 식으로 하시면, 당회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절차를 밟아서 일을 진행하세요. 주변 사람들 의견도 경청하시고요. 참다 참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최도훈 장로가 얼굴이 시뻘게 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앉은 동갑내기 장로가 최도훈 장로의 팔을 붙잡고 진정하라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호열 목사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를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장로님을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진정하시고,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최도훈 장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딴 식으로 목회하지 마세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최도훈 장로의 협박스러운 말투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참다못했는지, 나이 많은 장로가 최도훈 장로에게 말했다.

 

“이봐, 최 장로. 너무 나갔어. 그렇게 감정이 앞서면 옳은 말도 틀린 말로 들리는 거야. 일단, 자리에 앉게. 대화로 해결해야지, 이 사람아.”

 

그리고, 나이 많은 장로는 목사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사님, 아무래도 회의를 일찍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심려 마시고, 다음 주에 만나 뵈시죠.”

 

김호열 목사는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른 장로들 역시 나이 많은 장로의 지혜로운 처사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최도훈 장로만 예외였다. 나이 많은 장로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장로님, 그런 식으로 좋은 게 좋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당회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겁니다. 나는 용납 못해요. 끝장을 볼 겁니다.”

 

최도훈 장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이 부서져라 힘껏 닫았다. 쾅 하는 소리를 끝으로, 당회실은 적막해졌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킬뿐이었다.

 

#

 

“여보, 표정이 왜 그래? 오늘 교회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서 들어온 최도훈 장로에게 그의 아내가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에게 다가왔다.

 

“여보, 무슨 말 좀 해봐. 왜 그래 도대체?”

 

남편이 말없이 TV만 응시하자, 아내는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오늘 당회하고 왔구나. 또 목사님한테 험한 말 했지? 이제 그만해, 여보. 당신 그거 완전히 오해라니까.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핏대를 세우고 반대를 해?”

 

아내의 말은 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야? 그 쓰레기 같은 목사가 위선을 떨면서 앉아 있는 거 안 보여?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야지. 기본적인 인성도 안 된 사람이 무슨 목사야? 두고 봐. 내가 그 자식을 가만히 두나.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알겠어! ”

 

그의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 완전히 오해라니까. 계속 왜 그래. 당신 그날 말하는 거지? 목사님 우리 집에 심방 오신 날? 그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당신 정말 오해하는 거라고!”

 

그는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딴 짓을 당하고도, 그놈을 감싸고돌아? 내 편을 안 들고, 어떻게 그놈 편을 드냐고!”

 

그의 아내는 포기한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흐느껴 울었다.

 

#

 

최도훈은 젊은 시절, 의류 유통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아내가 아무리 교회에 가자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다, IMF를 만났다. 돈과 사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살던 집에 빨간 색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옷 가지 몇 개를 챙겨 나온 게 전부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장모님이 당분간 시골에 내려와 지내라고  설득했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모텔, 여관방을 전전하다가 시골로 내려갔다.

 

장모님이 살던 시골집은 최도훈의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비좁았다. 마당 한 귀퉁이에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고, 온 가족이 그 안에서 생활을 했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딱한 사정을 듣고, 컨테이너를 잠시나마 빌려준 것이다.  

 

시골에 내려온 그날부터, 그의 아내는 새벽마다 교회에 가기 시작했다.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던 최도훈은 아내의 인기척을 느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말없이 아내를 따라나섰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골 교회 새벽 예배의 풍경은 가관이었다. 피곤에 쩔은 목사가 대충 설교를 하는데, 앉아서 듣는 사람이라고는 머리가 새하얀 노인  세 사람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장모님이었다. 어이가 없었는지, 최도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교회 안이 어두워지자 아내가 소리 없이 울었다. 그의 마음이 뭉클했다. 아내가 기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돈을 실컷 벌어다 줄 때는, 아내가 마음 편히 사니까 교회 나가서 교양이나 떠는 줄 알았다. 사업이 망한 후에도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아내에게 숙연한 감정을 느꼈다.

 

사업할 때는, 사업으로 바쁘다고 아내를 돌봐주지 못했다. 사업을 하지 않는 지금은, 그야말로 돈이 없어서 아내를 돌봐주지 못한다.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아내가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어딘가, 신이 존재한다면, 바지 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이 열렸다. 처음에는 새벽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민망한 듯 교회에 나갔지만, 이내 조금씩 용기가 났다. 밝은 낮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간 것이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그는 마음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의 인생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

 

최도훈은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유통에 밝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시기를 기회로 잡고,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고객에게 직접 유통했다. 수익은 고스란히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데 투자했다. 땅을 사고, 재배량을 늘리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신도시 계획을 듣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던 그는, 아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사 모은 땅은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이 올랐고, 그는 땅을 매각하고 큰돈을 벌었다.

 

상가 건물 몇 채를 사들였다. 임대료 수익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자, 제법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교회 이곳저곳에서 봉사할 일이 늘어났다. 그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사람들도 그의 진심을 알았는지, 그는 어느덧 장로가 되어 있었다.

 

#  

 

그의 사업이 번창하듯, 교회 역시 성장했다. 도시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교회는 두 번에 걸쳐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예배시간에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기도 중에, 교회 건축을 하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성도들은 비좁고 불편한 상가 건물이 불편했던 터라, 담임 목사의 기도 응답에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최도훈 장로는 심기가 불편했다. 다른 장로들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표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표정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당회를 열었다. 당회에서 겸손한 태도로 장로들에게 사과의 말을 먼저 덧붙였다. 장로님들과 먼저 상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름의 논리로 장로들을 설득했다. 높아지는 임대료와 몰려드는 사람들을 계산했을 때,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 교회를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가만히 목사의 말을 경청하던 장로들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지만, 손뼉을 치면서까지 동의할 내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최도훈 장로는 참았던 말을 하고 말았다.

 

“목사님, 땅값이 오르기 전에 교회를 서둘러 지어야 한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김호열 목사는 당황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답변했다.

 

“장로님, 성경에 그런 말은 안 나옵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내리자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을 잘 풀고 해석해서 지혜로운 선택을 내려야지요.”

 

최도훈 장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목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되물었다.

 

“성경 어느 구절을 해석하면, 그런 지혜가 나옵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김호열 목사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고, 장로님. 제가 장로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봅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최도훈 장로는 다른 장로들을 둘러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로님들, 어떻게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계십니까? 땅값 오르기 전에 땅을 사서 교회를 짓자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땅 투기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지, 목사님이 하실 말씀이냐고요?”

 

김호열 목사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이대로 당회를 마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제 말에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 건축, 안 해도 됩니다. 불편해도 그냥 참고 지내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합니까.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곳을 한 번 둘러보세요. 아주 난리예요.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어서 고민인데, 우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서 걱정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예배드리는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그래서, 어려운 말씀드린 겁니다. 교회 건축 안 해도 되니까, 제발 노여움 푸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김호열 목사의 말을 듣고, 다른 장로들은 공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본 최도훈 장로는 미칠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목사의 멱살이라도 움켜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이 가식적인 놈아. 말만 그럴듯하지. 나는 네놈의 실체를 다 알고 있어.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최도훈 장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둔 말이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잊지 못했다. 김호열 목사가 자신의 눈앞에서 저지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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