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의 오전은 한가롭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집 안에 머문다.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앉은 지연은 평온해 보인다. 잠시 후, 그녀는 쓰러지듯 소파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석 달 전, 그녀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빨랫감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주머니에서 유흥업소의 명함을 발견했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빨랫감을 집어던지고,  소파에 앉은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 이게 뭐야?” 

남편은 당황했다. 

“뭐가?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왜 이런 게 당신 주머니에 있어?” 

지연은 유흥업소의 명함을 남편에게 집어던졌다. 남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그거 어제 술에 취해서 받은 거야. 친구랑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고 대리기사 기다리는 동안, 길에서 나눠주는 거 받은 거네. 술에 취해서 기억을 못 했어, 내가….”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말이 안 되면 뭐 어떻게 해. 그게 사실인데. 당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지연은 남편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은 술을 즐겨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의 친구 A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에 모처럼 만난 자리였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거지? 당신 나한테 숨기는 거 없지?” 

“아, 그런 거 없다니까.” 

지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사흘 뒤, 지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 친구 A의 아내였다. 지연이 전화를 받아들었을 때, A의 아내가 흐느껴 우는 소리부터 들려왔다. 

“언니, 알고 있었어요?”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지연이 되물었다. 

“우리 오빠하고 언니 남편하고, 성매매 업소 갔다 왔어요.” 

지연은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가 PC로 카카오톡 메신저를 하다가, 로그아웃을 안 하고 나갔어요. 거기서 두 사람 대화를 읽었는데, 서로 그 짓을 하러 다닌 거예요.” 

지연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사실이야?” 

“사실이라니까요. 우리 오빠는 인정했어요. 내가 어제 미친 여자처럼 살림 부수고 난리 쳤다니까요. 언니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저 이 남자랑 못 살아요.” A의 아내는 다시 흐느껴 울었다. 

지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떨리는 입술을 이빨로 꽉 깨물고,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일단, 전화 끊어.” 

남편은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무릎을 꿇고 빌었다. 지연은 남편의 옷가지를 집어던지며, 당장 집을 나가라고 울부짖으며 소리를 질렀다.

남편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라고 말했다. 각방을 쓰면서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연의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지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같은 일로 이혼한 선배 언니의 조언이 냉수처럼 지연을 일깨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아니야. 나는 너무 후회스러워. 부부 상담이라도 받아봐.”

지연은 남편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부부 상담이라도 받자. 이대로 당신도 나도 못 살아.” 

남편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 

상담 안에서, 두 사람은 일상 대화에서 불가능했던, 진심을 공유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오열하듯 고통스러운 감정을 쏟아내었고, 남편은 그 감정을 오랜 시간 받아냈다.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남편 역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표면적으로, 두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내는 반복되는 기억으로 고통받았다. 

남편이 식탁 앞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거짓말을 했던 모습이 떠오르면, 남편을 향한 분노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분노를 느낄 때마다 쥐잡듯 남편을 잡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될 것이 뻔했다. 두 사람의 회복을 위해 혼자 간직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 

남편을 향한 분노는 점차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로 변질되어갔다. 

‘왜 몰랐을까? 얼마나 어리석으면 몰랐을까? 남편 친구의 아내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지 않았을까? 얼마나 멍청하면 그랬을까?’ 

지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 없이 무너졌다.  

상처의 사건은 일시적이지만, 상처의 기억은 무한 반복이다. 상처의 무시무시한 속성이다. 

피해자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제멋대로 기억을 재생한다. 피해자를 의자에 묶어놓고, 바로 눈앞에서 끔찍한 장면을 무한 반복, 자동 재생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 것만으로 상처의 공격을 버텨낼 수 없다.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상처의 속성을 알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다. 

첫째, 의자에 묶이면 안 된다. 몸을 움직여라. 아등바등 움직여서, 꽉 묶인 밧줄에 공간을 만들어라. 손목 하나라도 뺄 수 있다면, 밧줄을 풀고 의자에서 탈출할 수 있다. 

둘째, 눈을 감지 말아라. 눈을 뜨고 놓친 장면을 세세히 살펴라.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장면은 상처가 각색하고 편집한 장면이다. 편집되고, 왜곡된 장면을 찾아내라. 상처가 일부러 도려낸 장면이 있다. 찾아내서 원래의 자리에 끼워 넣어라. 

지연의 잘못은 없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러나, 지연은 상처의 왜곡된 기억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끔찍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순간의 결단보다 중요한 것은, 용서로 다시 시작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남편을 용서한 지연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용서의 결단이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기억을 지워주지 않는다. 반복되는 기억으로 고통받는 과정을 남편과 공유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을 표현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고통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 오늘도 문득 그 기억이 찾아왔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나. 내가 기억으로 힘들 때마다,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내가 힘들어서 울면, 따뜻하게 안아줘.” 

남편을 향한 비난을 제거하고, 진심을 담아라.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남편은 기꺼이 아내를 돌볼 것이다. 

용서받은 남편에게 부탁한다. 상처의 속성은 반복이다. 일 년이든 십 년이든, 아내가 반복되는 상처에서 벗어날 때까지, 남편은 지치지 않고 아내를 돌봐야 한다. 

남편이여, 자존심 때문에 과거를 부정하지 말아라. 아내가 용서했다면, 과거는 남편의 실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내의 상처에 관한 것이다. 용서는 순간이지만, 기억은 평생 간다.    

남편의 자존심 때문에, 아내가 툭하면 과거를 꺼내서, 남편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으로 오해한다. 남편의 약점을 언급해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서툴러서 그렇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것이다. 

진심은 간단하다. 

“과거의 기억으로 아프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라. 

“너 때문에 아프다.”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아내가 과거를 언급하며 괴로운 감정으로 되돌아간다면, 아내를 위한 치유자가 되라. 오해를 넘으려면,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내를 과거에 얽매여 사는 나약한 여자로 취급하지 말고,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쌍한 여자로 보라.  

아내가 남편의 가치를 안다. 그래서, 실망했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상처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남편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 당신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다. 

잘못이 후회된다면, 그만큼 아내에게 정성을 쏟아라. 당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고,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