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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죄송한데, 어려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사모는 멈칫하며 주연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 제가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혼자 방에 누우면, 천장에서 마주하는 얼굴이 있어요.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그 얼굴 뚝 떨어져 나를 덮칠 것 같거든요. 너무 무서워요.” 

 

주연은 슬픈 감정에 사로잡혔다.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마귀가 역사하네요. 기도하면 나아질 거예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사모가 물었다. 

 

“교회에서 잘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교회에 오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거든요.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게요.” 

 

사모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냐며, 주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요, 언제든 오셔서 주무세요. 저랑 같이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하면 되죠. 저도 가끔 교회에서 자고 그래요.”

 

주연은 사모에게 거듭 감사하다 말했다. 사모는 주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연은 밤낮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집과 거리, 어느 곳 하나 예외가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는 교회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혼자 가는 건 무섭지 않으세요?” 

 

“아, 무섭지 않아요. 어두운 예배실에 들어서면 잠깐 움찔은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회에 가면, 예수님이 날 지켜주시는 것 같아요. 건물 위층에 사모님도 계시고요. 그 위에서 사시거든요.” 

 

“두려움을 없애주는 사람이 예수님인가요, 사모님인가요?” 

 

“물론, 예수님이죠. 하지만, 사모님도 필요해요. 솔직히 말하면, 사모님이 성품이 따뜻하신 분은 아니에요. 그래도, 당분간은 사모님이 필요해요.” 

 

어려운 개척교회였다. 사모는 주연의 부탁으로 예배실 옆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주연과 함께 잤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연이 교회에서 잠을 자도록 허락해 준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사모는 밤마다 사택에서 내려와 주연과 함께 지냈다. 사모 입장에서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모의 불편한 감정이 주연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나, 주연은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고라도 사모 곁에 있고 싶었다.

 

주연은 물에 빠진 심정이었다.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사람의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연은 분명히 알았다. 사모와의 관계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사모가 처음이 아니었다. 사모는 주연이 의존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

 

주연과 사모가 함께 성경을 읽는 자리에, 목사가 들어와 한 마디를 꺼냈다. 

 

“자꾸 대출이자 때문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네.”

 

사모는 주연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 교회 팔리면, 이제 주연 자매는 어떻게 해? 기도 많이 해야겠어. 우리야 어디 가서 또 목회하면 되지만, 주연 자매는 우리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주연은 당황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주연이 큰마음을 먹고 헌금을 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헌금을 한 것을 두고, 사모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 주연은 실망했다. 

 

#

 

“기분이 나빴어요. 무시를 당한 것 같았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대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자존심이 상해서, 두 번 다시는 사모님을 의지하지 않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사모가 내뱉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주연은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뭐, 지 아니면 안 될 줄 알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주연은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정도로 불안했다. 

 

밤새도록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괴로웠다. 

 

저녁을 대충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먼저 돌아오고, 남편이 뒤늦게 들어왔다.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주연은 바통을 넘겨주듯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 오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애들하고 저녁 먹고 뒷정리 좀 부탁해.” 

 

남편은 한심한 듯 말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사모가 뭐라고 그렇게 매달려. 그러다, 또 실망하고 뭐하고 비참해진다며? 제발 작작 좀 해.” 

 

주연은 남편의 말에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집에서 교회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교회에 도착한 주연은 예배실 문을 열었다. 예배실은 조용했다. 어두운 예배실 안에서 주연은 안정을 되찾았다. 

 

불안에 떨면서 감정 소모가 심한 탓인지, 주연은 엎드린 채로 기도하다 잠에 들었다.

 

주연은 팔이 잘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꿈에서 본 것처럼 팔에 감각이 없었다. 팔을 베고 잔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주위를 살폈다. 예배실 뒤편에 작은 할로겐 조명이 켜진 채였다. 

 

사모가 들어온 것이다. 

 

주연은 교회 뒤편 마련된 작은방을 살폈다. 사모가 피곤했는지 미리 이불을 펴고 잠든 후였다. 

 

주연은 잠시 멈칫했다. 

 

‘우리 없으면, 이제 주연 자매 어떻게 해?’ 

 

며칠 전 사모가 내뱉은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차마 집으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주연은 가만히 들어가 사모 옆자리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주연은 사모 옆에 자리를 폈지만, 사모를 등지고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자주 심부름을 시켰어요. 밤에 슈퍼를 가려면 대나무숲을 지나야 했거든요.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지나가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항상 누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죽도록 뛰었거든요. 가끔 엄마가 사 오라고 한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냥 집으로 뛰어온 적이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다시 가서 가져오라고 그러죠.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무서웠거든요.” 

 

 

나는 주연의 공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주연은 적극적이었다. 공포심을 물리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내게 전해졌다. 그녀는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순서 없이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었어요. 할머니가 굿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어머니는 할머니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자녀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분이셨어요.” 

 

주연은 그녀의 어머니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미신 같은 것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녀가 20살 남짓 되던 해에, 고기를 먹다가 급하게 체한 적이 있었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 시름시름 앓았다. 

 

주연의 어머니는 낯선 남자에게 주연을 데려갔다. 

 

낯선 남자 앞에서, 주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옆에 마련된 세면기에 손을 씻었다. 

 

남자는 주연에게 다가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을 벌렸다. 주연은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사정없이 솥뚜껑 만한 손을 주연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남자의 억센 손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주연은 외마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웩웩 소리를 지르는 찰나에, 남자는 주연의 목구멍에서 손을 빼냈다. 

 

남자의 손은 주연의 타액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자가 손을 펴자 그 안에는 작은 고기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세면기로 가서 손을 씻었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며, 주연에게 말했다. 

 

“속이 뻥 뚫려서 후련하지. 집에 가자.”

 

 

나는 충격에 빠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 무심결에 그 장면을 상상했는데, 그 자체로 역겨웠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나는 내담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사실인가요?” 

 

주연은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믿기 힘드실 텐데, 정말이에요. 가끔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은 진짜였어요. 제가 고기를 먹으면 자주 체하거든요. 그 후로도 그 사람을 몇 번 찾아갔어요.” 

 

주연의 말을 억지로 믿었다. 그러나, 내 진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나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고, 섬뜩한 남자에게 내 입을 벌려줘야 했다.

 

#

 

두려움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사방이 막혀 있는 듯 답답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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