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받으실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처음 내뱉은 말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았다. 

주연은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내 말을 들으면, 목사님도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나는 이미 상처받았어요.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무슨 일 있겠어요. 제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하세요.”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아마 혼자 계실 때 알게 되실 거예요. 가끔 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여요. 목사님도 저와 대화를 시작하시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받으실 거예요.” 

그 순간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된 듯했다.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섬뜩했다. 

주연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어 보이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걱정은 마세요.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주연은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목사님은 귀신을 본 적 있으세요?” 

주연은 내가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나는 귀신을 본 적 있어요.” 

새벽 예배를 마치고, 주연은 싱글벙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대충 치우고 교회에 갈 작정이었다. 시계가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교회 성경공부 모임에 늦고 싶지 않았다. 

주연은 부리나케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몸을 적시고, 손바닥에 샴푸를 담았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는데, 주연의 등골이 오싹했다. 

누군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주연은 비명을 질렀다. 

젖은 머리카락에 샴푸 거품이 뒤엉킨 채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여보, 화장실에 뭔가 있어. 시커먼 게 나를 보고 있었다고.” 

주연의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남편의 신문을 적셨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에도, 거품 낀 물방울이 남편의 옷과 얼굴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또 시작이네. 당신이 애야? 화장실에 뭐가 있다고 그래. 제발 좀 그만해.” 

“여보, 그게 아니고, 정말 뭐가 있다니까. 당신이 한 번 가봐. 응?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주연은 거실 귀퉁이에 앉아 손과 발을 벌벌 떨었다. 남편은 의도적으로 화장실 불을 몇 번이나 껐다 켜면서, 주연을 안심시켰다. 

“아무것도 없지?” 

남편의 물음에, 주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남편은 주연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당신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면 어때?”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에도 가봤잖아. 그냥 약만 주고, 별다른 도움도 못 받잖아. 나 약 먹기 싫어. 약 기운에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단 말이야.” 

“아니, 그럼 뭐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 애들은 생각 안 해?” 

“내가 애들 생각 안 한 게 뭐 있어?” 

“당신이 지금 정상이야? 애 둘만 싸질러 낳고, 엄마 구실을 못하잖아.” 

“뭐?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내가 무슨 틀린 말 했어? 당신 올해 들어 집에서 몇 번이나 잤어.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 가잖아.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교회에서 잠을 자? 애들 뒤치다꺼리는 누가 하라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나도 지금 미칠 것 같아.” 

“그러니까,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내가 그랬잖아. 약 먹기 싫다고. 나 기도해서 고칠 거야.”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더 말하면 나 미칠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주연은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연은 남편에게 서운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주연을 괴롭히는 문제가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서러운 감정이 주연을 덮쳤다. 소파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수건으로 둘둘만 머리카락 끝자락에서 거품이 뒤섞인 물방울이 거실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남편은 24시간 하루 근무, 24시간 하루 휴식의 일정을 반복했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주연은 혼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문을 이중으로 잠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연은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엄마 집으로 도망쳤다. 

주연은 엄마와 같은 방에서 함께 자기를 원했다. 

“오늘 외할머니 오셨으니까 불편하더라도 외할머니하고 같이 자. 엄마가 오늘은 혼자 자고 싶어.” 

주연은 알겠다고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주연은 벽에 기대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깬 할머니가 말했다. 

“으미, 깜짝이야. 너 시방 뭐 하는 거여. 누워야 잠이 오제, 어찌 앉아서 잠을 잔다야. 빨랑 누워, 이것아.” 

“신경 쓰지 말고 자, 할머니. 나는 잠이 안 와. 밤마다 이래.” 

“별 희한한 일 다 보겠구먼. 잠을 안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할머니는 밤새 주연과 대화를 나누었다. 동이 틀 무렵 할머니는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주연은 주섬주섬 이불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집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준비할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주연의 상태를 물었다. 

“걔가 언제부터 그러데? 밤새 잠을 못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다 큰 애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혼자 잠을 못 자. 안 그러던 애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래.”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애가 눈빛이 영 이상해. 점을 한 번 보러 가야 쓰것어. 애 눈을 보는데 섬뜩하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