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받으실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처음 내뱉은 말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았다. 

 

주연은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내 말을 들으면, 목사님도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나는 이미 상처받았어요.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무슨 일 있겠어요. 제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하세요.”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아마 혼자 계실 때 알게 되실 거예요. 가끔 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여요. 목사님도 저와 대화를 시작하시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받으실 거예요.” 

 

그 순간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된 듯했다.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섬뜩했다. 

 

주연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어 보이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걱정은 마세요.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주연은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목사님은 귀신을 본 적 있으세요?” 

 

주연은 내가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나는 귀신을 본 적 있어요.” 

 

 

새벽 예배를 마치고, 주연은 싱글벙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대충 치우고 교회에 갈 작정이었다. 시계가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교회 성경공부 모임에 늦고 싶지 않았다. 

 

주연은 부리나케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몸을 적시고, 손바닥에 샴푸를 담았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는데, 주연의 등골이 오싹했다. 

 

누군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주연은 비명을 질렀다. 

 

젖은 머리카락에 샴푸 거품이 뒤엉킨 채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여보, 화장실에 뭔가 있어. 시커먼 게 나를 보고 있었다고.” 

 

주연의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남편의 신문을 적셨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에도, 거품 낀 물방울이 남편의 옷과 얼굴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또 시작이네. 당신이 애야? 화장실에 뭐가 있다고 그래. 제발 좀 그만해.” 

 

“여보, 그게 아니고, 정말 뭐가 있다니까. 당신이 한 번 가봐. 응?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주연은 거실 귀퉁이에 앉아 손과 발을 벌벌 떨었다. 남편은 의도적으로 화장실 불을 몇 번이나 껐다 켜면서, 주연을 안심시켰다. 

 

“아무것도 없지?” 

 

남편의 물음에, 주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남편은 주연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당신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면 어때?”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에도 가봤잖아. 그냥 약만 주고, 별다른 도움도 못 받잖아. 나 약 먹기 싫어. 약 기운에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단 말이야.” 

 

“아니, 그럼 뭐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 애들은 생각 안 해?” 

 

“내가 애들 생각 안 한 게 뭐 있어?” 

 

“당신이 지금 정상이야? 애 둘만 싸질러 낳고, 엄마 구실을 못하잖아.” 

 

“뭐?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내가 무슨 틀린 말 했어? 당신 올해 들어 집에서 몇 번이나 잤어.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 가잖아.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교회에서 잠을 자? 애들 뒤치다꺼리는 누가 하라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나도 지금 미칠 것 같아.” 

 

“그러니까,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내가 그랬잖아. 약 먹기 싫다고. 나 기도해서 고칠 거야.”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더 말하면 나 미칠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주연은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연은 남편에게 서운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주연을 괴롭히는 문제가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서러운 감정이 주연을 덮쳤다. 소파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수건으로 둘둘만 머리카락 끝자락에서 거품이 뒤섞인 물방울이 거실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남편은 24시간 하루 근무, 24시간 하루 휴식의 일정을 반복했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주연은 혼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문을 이중으로 잠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연은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엄마 집으로 도망쳤다. 

 

주연은 엄마와 같은 방에서 함께 자기를 원했다. 

 

“오늘 외할머니 오셨으니까 불편하더라도 외할머니하고 같이 자. 엄마가 오늘은 혼자 자고 싶어.” 

 

주연은 알겠다고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주연은 벽에 기대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깬 할머니가 말했다. 

 

“으미, 깜짝이야. 너 시방 뭐 하는 거여. 누워야 잠이 오제, 어찌 앉아서 잠을 잔다야. 빨랑 누워, 이것아.” 

 

“신경 쓰지 말고 자, 할머니. 나는 잠이 안 와. 밤마다 이래.” 

 

“별 희한한 일 다 보겠구먼. 잠을 안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할머니는 밤새 주연과 대화를 나누었다. 동이 틀 무렵 할머니는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주연은 주섬주섬 이불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집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준비할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주연의 상태를 물었다. 

 

“걔가 언제부터 그러데? 밤새 잠을 못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다 큰 애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혼자 잠을 못 자. 안 그러던 애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래.”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애가 눈빛이 영 이상해. 점을 한 번 보러 가야 쓰것어. 애 눈을 보는데 섬뜩하더라니까.”

 

할머니는 주연을 챙겨,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주연의 눈빛을 살피더니, 뭐에 씌인 것 같다며 크게 굿을 한 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연은 내심 걱정이었다. 굿을 하는데, 당장 수백만 원이 필요했다. 주연은 망설였다. 남편에게 굿을 하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연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도로 옆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를 올려다보는 순간,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주연의 마음은 이상하게 편했다.

 

‘굿은 무슨 굿이야. 차라리 교회를 나가보자.’ 

 

 

“사모님 죄송한데, 어려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사모는 멈칫하며 주연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 제가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혼자 방에 누우면, 천장에서 마주하는 얼굴이 있어요.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그 얼굴 뚝 떨어져 나를 덮칠 것 같거든요. 너무 무서워요.” 

 

주연은 슬픈 감정에 사로잡혔다.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마귀가 역사하네요. 기도하면 나아질 거예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사모가 물었다. 

 

“교회에서 잘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교회에 오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거든요.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게요.” 

 

사모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냐며, 주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요, 언제든 오셔서 주무세요. 저랑 같이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하면 되죠. 저도 가끔 교회에서 자고 그래요.”

 

주연은 사모에게 거듭 감사하다 말했다. 사모는 주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연은 밤낮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집과 거리, 어느 곳 하나 예외가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는 교회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혼자 가는 건 무섭지 않으세요?” 

 

“아, 무섭지 않아요. 어두운 예배실에 들어서면 잠깐 움찔은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회에 가면, 예수님이 날 지켜주시는 것 같아요. 건물 위층에 사모님도 계시고요. 그 위에서 사시거든요.” 

 

“두려움을 없애주는 사람이 예수님인가요, 사모님인가요?” 

 

“물론, 예수님이죠. 하지만, 사모님도 필요해요. 솔직히 말하면, 사모님이 성품이 따뜻하신 분은 아니에요. 그래도, 당분간은 사모님이 필요해요.” 

 

어려운 개척교회였다. 사모는 주연의 부탁으로 예배실 옆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주연과 함께 잤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연이 교회에서 잠을 자도록 허락해 준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사모는 밤마다 사택에서 내려와 주연과 함께 지냈다. 사모 입장에서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모의 불편한 감정이 주연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나, 주연은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고라도 사모 곁에 있고 싶었다.

 

주연은 물에 빠진 심정이었다.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사람의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연은 분명히 알았다. 사모와의 관계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사모가 처음이 아니었다. 사모는 주연이 의존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

 

주연과 사모가 함께 성경을 읽는 자리에, 목사가 들어와 한 마디를 꺼냈다. 

 

“자꾸 대출이자 때문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네.”

 

사모는 주연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 교회 팔리면, 이제 주연 자매는 어떻게 해? 기도 많이 해야겠어. 우리야 어디 가서 또 목회하면 되지만, 주연 자매는 우리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주연은 당황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주연이 큰마음을 먹고 헌금을 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헌금을 한 것을 두고, 사모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 주연은 실망했다. 

 

#

 

“기분이 나빴어요. 무시를 당한 것 같았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대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자존심이 상해서, 두 번 다시는 사모님을 의지하지 않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사모가 내뱉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주연은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뭐, 지 아니면 안 될 줄 알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주연은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정도로 불안했다. 

 

밤새도록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괴로웠다. 

 

저녁을 대충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먼저 돌아오고, 남편이 뒤늦게 들어왔다.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주연은 바통을 넘겨주듯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 오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애들하고 저녁 먹고 뒷정리 좀 부탁해.” 

 

남편은 한심한 듯 말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사모가 뭐라고 그렇게 매달려. 그러다, 또 실망하고 뭐하고 비참해진다며? 제발 작작 좀 해.” 

 

주연은 남편의 말에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집에서 교회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교회에 도착한 주연은 예배실 문을 열었다. 예배실은 조용했다. 어두운 예배실 안에서 주연은 안정을 되찾았다. 

 

불안에 떨면서 감정 소모가 심한 탓인지, 주연은 엎드린 채로 기도하다 잠에 들었다.

 

주연은 팔이 잘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꿈에서 본 것처럼 팔에 감각이 없었다. 팔을 베고 잔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주위를 살폈다. 예배실 뒤편에 작은 할로겐 조명이 켜진 채였다. 

 

사모가 들어온 것이다. 

 

주연은 교회 뒤편 마련된 작은방을 살폈다. 사모가 피곤했는지 미리 이불을 펴고 잠든 후였다. 

 

주연은 잠시 멈칫했다. 

 

‘우리 없으면, 이제 주연 자매 어떻게 해?’ 

 

며칠 전 사모가 내뱉은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차마 집으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주연은 가만히 들어가 사모 옆자리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주연은 사모 옆에 자리를 폈지만, 사모를 등지고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자주 심부름을 시켰어요. 밤에 슈퍼를 가려면 대나무숲을 지나야 했거든요.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지나가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항상 누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죽도록 뛰었거든요. 가끔 엄마가 사 오라고 한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냥 집으로 뛰어온 적이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다시 가서 가져오라고 그러죠.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무서웠거든요.” 

 

 

나는 주연의 공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주연은 적극적이었다. 공포심을 물리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내게 전해졌다. 그녀는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순서 없이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었어요. 할머니가 굿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어머니는 할머니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자녀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분이셨어요.” 

 

주연은 그녀의 어머니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미신 같은 것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녀가 20살 남짓 되던 해에, 고기를 먹다가 급하게 체한 적이 있었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 시름시름 앓았다. 

 

주연의 어머니는 낯선 남자에게 주연을 데려갔다. 

 

낯선 남자 앞에서, 주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옆에 마련된 세면기에 손을 씻었다. 

 

남자는 주연에게 다가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을 벌렸다. 주연은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사정없이 솥뚜껑 만한 손을 주연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남자의 억센 손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주연은 외마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웩웩 소리를 지르는 찰나에, 남자는 주연의 목구멍에서 손을 빼냈다. 

 

남자의 손은 주연의 타액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자가 손을 펴자 그 안에는 작은 고기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세면기로 가서 손을 씻었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며, 주연에게 말했다. 

 

“속이 뻥 뚫려서 후련하지. 집에 가자.”

 

 

나는 충격에 빠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 무심결에 그 장면을 상상했는데, 그 자체로 역겨웠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나는 내담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사실인가요?” 

 

주연은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믿기 힘드실 텐데, 정말이에요. 가끔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은 진짜였어요. 제가 고기를 먹으면 자주 체하거든요. 그 후로도 그 사람을 몇 번 찾아갔어요.” 

 

주연의 말을 억지로 믿었다. 그러나, 내 진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나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고, 섬뜩한 남자에게 내 입을 벌려줘야 했다.

 

#

 

두려움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사방이 막혀 있는 듯 답답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주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무서웠다.  

 

첫 세션에서 주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주연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당신 이야기가 너무 기괴하고 무섭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옳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잊혀졌던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생각나요. 

 

할머니가 사랑방에 손주들을 모아놓고, 호롱 불을 하나 켜셨거든요. 호롱 불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니까, 그림자가 춤을 추는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는 군밤을 까주시면서, 할머니가 어려서 시골에서 겪었던 기괴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 마을에 들어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데요. 자정에 고개를 넘을 때는, 절대로 혼자가 면 안된다고 했어요. 

 

자정이 지나면, 푸른 불빛이 사람을 홀려서 깊은 숲속으로 끌어들인다고 했어요.

 

마을 어른 여럿이 푸른 불빛 때문에 죽어나갔다고 했죠.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할머니는 “워!”라고 소리를 질렀죠. 손주들 중에 내가 제일 컸는데, 나마저도 울음을 터뜨릴 뻔했어요. 

 

나는 그날 밤, 이불에 오줌을 쌌어요. 잠에서 깼지만, 혼자 화장실에 갈 용기가 없었거든요.”

 

 주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묻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두려운 감정을 가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직접 말로 표현한 적 없지만, 지속적으로 내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자, 잘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내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우리는 무서움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고, 당신은 계속 내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과 동일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야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당신을 두려움의 소용돌이에서 구해주려면, 나는 소용돌이 밖에 서 있어야 해요. 그래야,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어요. 이미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섬뜩하고 무서웠거든요. 

 

당신 말대로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어요. 

 

내 일상에서 악몽을 몇 차례 꾼 적이 있거든요. 악몽은 내게 드문 일이에요. 당신과의 상담 전후에 있었던 일이에요. 

 

당신이 나를 완벽히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조용히 상담을 받던 당신이 일어서는 거죠. 그리고, 상담실 안에 시커먼 것이 있다고 말하며, 혼비백산해서 상담실 밖으로 도망을 쳐버리면 돼요. 그러면, 나는 완전히 무너질 거예요.

 

내게는 그것이, 호롱불 아래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워!”라는 메시지겠죠.” 

 

주연은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안정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누군가 한 사람은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내가 무섭다고 말하면, 다들 무시해요. 다 큰 어른이 무섭다고 말하니, 한심하다고 생각하죠.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사람들은 애써 무섭지 않은 척 해요. 두려운 감정을 부정하는 거죠. 소리 없이 내 곁을 떠나요.

 

이해해요. 그 사람들은 나를 버리면,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해요.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사람들은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아요.  

 

내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무섭다고 말해준 사람이, 목사님이 처음이에요. 저 많이 무서웠어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로, 무서웠어요.” 

 

그녀는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격해졌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동안, 나는 기다렸다. 간간이 손으로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 조용히 창밖을 응시했다. 

 

 

그녀의 감정이 차분해지고, 다시 대화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주연의 차분했던 감정이 다시 울컥했다. 눈물이 쏟아져 내릴까 걱정스러운 듯, 손바닥을 가슴에 올려놓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연은 차분히 말했다. 

 

“제 마음을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확대해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신 것 같아요. 그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어왔어요.” 

 

주연의 말을 한참 동안 듣고 나서,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의 상담에서 실패했어요. 나는 당신 안의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두려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고요. 

 

두려움의 소용돌이 빠진 당신을 구해주려다, 나까지 소용돌이에 빠져 버린 꼴이죠. 마음이 급했나 봐요. 유능한 상담자라면, 당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에게 미안해요, 정말로.”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목사님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소용돌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언뜻 떠오른 생각이 있어요. 

 

솔직히 그동안은 극단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나 같은 인생 살아서 뭐해.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사실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어요.

 

예수님은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동안 나는 감히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었거든요. 나를 비난하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무서운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예수님 앞에 떳떳이 설 수가 없었어요. 밤마다 교회에서 회개 기도를 했어요. 이런 나를 용서해달라고. 

 

목사님,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예수님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시겠죠? 얼마나 무섭겠냐고 공감해주시겠죠? 

 

나를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원해서 이런 게 아니거든요.” 

 

주연은 또다시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울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함께 빨려 들어가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불렀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셔서 우리 둘을 살려주시기를 바랐다. 

 

 

급류에 영향받지 않는 존재는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은 그녀를 찾아가셨고, 그녀를 건져주셨다. 나는 그다음으로 건져졌고, 간신히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상담실 안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일을 했다. 

 

예수님과의 왜곡된 관계를 복음적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몇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사모를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돌아가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장기적인 정신과 치료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범위 안에서 유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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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떠나보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의 출처를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이나마 평안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또 다른 사람을 찾아내서 매달리고 애원하고 있을까. 

 

평온한 일상에서 문득 그녀가 떠오르면, 죄책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녀를 밀어낸 것은 아닌가. 

 

어쩌면, 그녀가 말한 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버린 사람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잔잔한 죄책감은 바람을 타고 거센 파도가 되어 내 가슴을 퍽퍽 치고 쓸어내렸다. 

 

나는 잠시 상담을 멈추고 나 자신을 돌봐야 했다. 

 

조용한 곳에 내 몸을 밀어 넣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죄책감처럼, 그녀 안의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녀 안의 두려움은, 내 안의 죄책감처럼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는 강렬한 욕망이 될 것이다. 

 

두려움은 절대로 그녀의 인생을 집어삼킬 수 없을 것이다. 두려울수록 그리스도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나는 물러났어도, 그리스도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와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