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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아내와 결혼을 결심했다. 

내 복잡한 심경을 이해라도 한 듯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괜찮아”,라는 말조차도 내 자존심을 짓밟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아내는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을 뿐이다.

아내가 자라온 환경은 나와 사뭇 달랐다. 장인어른은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사랑하는 감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셨다.

장인, 장모님을 처음 뵌 날,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아내의 집에 들어선 나는, 앞치마를 두룬 장인어른과 마주했다.

장인어른이 요리를 하고 계셨다. 장모님은 옆에서 보조 역할을 했다. 음식은 맛있었다. 장인어른은 가족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내오고, 뒷정리까지 모두 장인어른이 하셨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를 현실로 경험한 것이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나는 아내의 첫 남자친구였고, 남자친구로서의 첫 방문이었다. 두 분 역시 나를 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자랐구나, 내심 고맙고 안심이 되면서도 이상하게 주눅이 들었다. 내가 아내를 충분히 사랑해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의 부모님은 사소한 일로 죽도록 싸웠다. 다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식사 자리에서 욕설은 기본이고, 밥 먹다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밥상을 뒤집어엎은 기억을 헤아리면 열 손가락을 넘어간다.

이 모든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결혼해서 부모님 때문에 여러 번 싸웠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부모님을 아내가 이해할 리 없었다. 아내는 수시로 내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러셔?”

아내가 궁금해서 물었을지라도, 그 당시 나는 아내의 말을 질문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와 부모님을 무시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이성을 잃었다.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릅뜨면서,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아내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하는 짓이 아버지와 똑같았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이 다가오면서 나는 아내를 배려하고자 노력했다. 다정다감하게 아내를 대해줄 능력은 없었다. 감정을 숨겼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갈등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내를 위한 최선의 배려였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곧바로 시부모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아내가 이상히 여겼을 것이다. 내 표정과 말투에서 내 감정을 읽어냈을 것이다.

역시나, 아내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고 삼 일이 지나서야, 부모님이 찾아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말했다. 아버지 쪽은 쳐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뒷짐을 지고 유리창 너머에 누워있는 손자를 바라봤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한참을 서 있다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나한테 한 짓도 모자라서, 내 아들에게도 이러는 거예요? 내 아들한테는 다르게 대할 줄 알았어.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면서요? 우리 집은 도대체 뭐가 잘못돼서 이 모양 이 꼴이에요, 진짜.”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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