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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 참 이쁘게 태어났네.”

 

장인어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고 말했다. 장인, 장모님은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의와 감격이 두 사람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모님이 부드러운 말투로 장인어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오래 안고 있지 마세요. 아기 불편해요.”

 

“아, 그랬나. 난 잠깐 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자, 그래 여기 있다. 엄마한테 가라.”

 

장인어른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아내의 품으로 옮겼다.

 

아내는 아기를 살며시 받아들고, 밝게 웃었다.

 

“괜찮아, 엄마. 얼마나 오래 안고 있었다고.”

 

“그래도, 그게 아니야. 아기한테는 엄마 품이 가장 편한 거야. 배고픈 거 같은데, 젖 좀 먹여.”

 

“그럴까? 잠깐만.”

 

아내는 몸을 돌려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무심결에 물었다. 

 

“여보, 아버님, 어머님은 오고 계신 거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곧 오실 거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금 전 나는 아버지와 통화를 마쳤다. 아버지의 반응은 내 예상 밖이었다. 아버지가 기뻐할 줄 알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무관심했다.

 

“아버지,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래, 알겠다.”

 

“언제쯤 오실 거예요?”

 

“글쎄. 시간이 날지 모르겠는데, 시간 되는 대로 한 번 가볼게.”

 

“알겠어요, 그럼.”

 

나는 전화를 끊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분노가 일어났다.

 

‘어떻게 내 아들에게마저 이럴 수 있는가.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감정이 고장 난 사람이었던가.’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던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궁색한 변명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야간 근무를 하셔서, 주무시고 계시나봐. 아버지 일어나는 대로 함께 오신다네. 엄마가.”

 

아내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짧게 알겠다고 말했다.

 

#

 

오래전부터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언제나 술에 취해 세상을 원망하던 사람이었다. 가족에게 세상에 대한 분풀이를 했다. 아내를 때리고, 자식들을 때렸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새겨듣고 지키려 했다. 술에 취해 한 말이라도 잊지  않으려고 수첩에 적어 두었다.

 

“책상 정리 해라.”

“신발 정리해라.”

“매일 일기를 써라.”

 

수 십 가지가 넘는 생활규칙을 외웠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와, 생활규칙 중 하나를 지적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사정 없이 때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였다. 아버지는 항상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아버지는 분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스스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말을 해대면서, 어린 아들을 두들겨 팬 것이다.

 

몸이 커지고 제법 힘이 붙자 나는 아버지 말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아버지가 잔소리라도 할 때면, 나는 조용히 집을 나가버렸다.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공식적으로 아버지와 나는 결별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불편한 감정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내 목소리와 시선은 어머니를 향했다. 아버지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도, 아내에게 내 부모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아내가 부모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를 무시할 것만 같았다.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어릴 때 부모님을 떠나서, 현재의 나, 미래의 나에 집중하며 살았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과거와 연결된 느낌 자체가 싫었다.

 

부모님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결혼하면 부모님 의지하지 말고, 우리끼리 열심히 살자.”

 

아내는 동의했다.

 

#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갖던 나는 부모님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아들자식 며느리를 결혼식장에서 처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아내를 부모님에게 데려간 것이지만, 어쩌면 나는 아내가 될 사람에게 부모님을 보여주면서,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부모님이라도 이해해줄 수 있겠어?”

 

나는 직접 보여주고 아내에게 묻고 싶었다.

 

아내를 데려가기 한 달 전부터, 나는 긴장했다. 어머니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약속한 당일 절대로 아버지가 술에 취해 계시면 안 된다고. 어머니는 몇 번이나 알겠다고 말하며 짜증을 냈다.

 

당일 오전에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만큼은 아버지가 절대로 술을 마신 채로 아내를 만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듯 알겠다고 말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아내를 부모님에게로 데려갔다. 집으로 데려갈 용기는 차마 없었다. 그야말로 누추했기 때문이다. 근처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식당을 들어서자, 불길한 기운이 나를 덮쳤다.

 

어머니 홀로 식당에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나는 어머니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아버지는요?”

 

“몰라, 계속 전화를 안 받아. 점심에 나가서 지금까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아.”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내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서로 대화를 나눴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얘가 우리 며느리 될 애여? 이쁘네. 우리 뭐 볼 거 있겠어. 둘이 알아서 결정해. 우리 상관하지 말고….”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 자리를 지켰다.

 

아내는 태연했다. 부모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돌아오는 차에서, 아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걱정이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버텨온  나는, 아내의 비난과 무시를 견딜 힘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긴장된 상태로 앞만 바라보며 운전을 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는 부모님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

 

나는 그날, 아내와 결혼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