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키우기 힘들어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는데  

쉽지 않아요. 

 

아내가 자주 말해요.  

“자기 마음 불편한 거 

표현하는 거잖아. 

그냥 그렇구나 하면 되지.” 

 

나는 아내처럼 착하지 않아요. 

아들을 키우면서 순간순간 욱해요.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못난 아버지예요. 

 

다 지난 일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솔직하고 싶으니까 

있는 그대로 말할게요. 

 

아들을 키우면서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극단적인 말이지만, 

아버지가 왜 이렇게 나를  

때렸는지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아버지의 폭력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에요.

 

‘아버지도 나를 키우기 

참 힘들었겠다’, 여기까지 

인정이 됐다는 말이에요. 

 

지금 돌아보면 

나는 예민한 아이였어요. 

 

아버지는 먹고사는 것도 

빠듯해서 술을 의지했는데 

예민한 아들을 감당하기 힘드셨겠죠. 

 

아버지는 말 대신 

매로 나를 키우신 거예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문제는 과거의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예요. 

 

나는 아버지가 아닌데,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데,

아들에게 꽥 소리를 질렀어요.  

 

아들이 나를 닮아서 예민해요. 

나도 아들을 때리지는 않을까 

두려웠어요.

 

자녀를 키우다 보면 

때릴 수도 있지…. 

 

나한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내가 화를 내면 

겁먹은 아들의 눈빛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여요.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데…. 

아들 입장에서 

충분히 속상할 수 있는데, 

나는 왜 화를 못 참았을까? 

 

죄책감에 시달려요. 

내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 같아서요. 

 

아들에게 사과를 해요. 

아까 별일도 아닌데 

화를 내서 미안했다고…. 

 

혼자 무슨 생각을 할까 싶더라고요.

제아무리 부모라도 

자녀의 마음속은 알 수가 없잖아요. 

 

아들이 열 살이 되던 해였어요. 

내가 미안하다고 하니까 

아들이 말하더군요.  

 

“아빠,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 안 해도 돼. 

나 사랑해서 혼내는 거잖아. 

아빠 마음 알아.” 

 

아들이 다가와서 안아주는데 

울컥 눈물이 터졌어요. 

 

나는 못난 아버지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아들을 키웠어요. 

 

상처를 물려주는 건 아닌가 

두려웠지요. 

 

아니었어요. 

아들은 나와 달랐어요. 

 

상처가 뒤섞인 

못난 양육 방식을 벗어나 

아버지의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아들로 자랐더군요. 

 

아들을 끌어안고 

많이 울었어요. 

 

못난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아들에게 고마워서요.  

 

아들이 열세 살이에요. 

사춘기가 한창이죠. 

 

아내와 나는 

아들 때문에 밤새 대화하고 

더 많이 공부해요. 

아들 키우기 힘들어서요. 

 

그래서 나아질까요? 

글쎄요. 아버지가 못나서…. 

다른 방법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가 키우셔야죠. 

 

아들, 

아빠 마음 알아줘서 고마워. 

 

아빠도 네 맘 알아. 

자녀라서 그런 거잖아. 

자녀는 그래도 돼. 

 

하나님께 사랑받으면서 

가장 너다운 모습으로 커. 

아빠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야.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