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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ecord

온 더 레코드

“공개 동의를 받은 공식 인터뷰”

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 고민을 말해보세요. 끊지 않고 들어볼게요.

 

뭐부터 말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요즘 각자 일도 많고 예민해져서 자주 다퉜거든요. 다들 겪는 일이라고 해서 참고 견디려고 했는데, 남자 친구 말 한마디에 폭발했어요. 

 

남자 친구가 운전하다가, 이렇게 말했거든요.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너무 기가 막혔어요. 지금 무슨 소리 하냐고 따졌죠.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운전하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저도 너무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남자 친구가 핸들을 확 꺾고 브레이크를 밟더라고요.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저보고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랬더니, 남자 친구가 차에서 내리더니 조수석 문을 세게 열더라고요. 제 팔을 잡아당기더니 인도 쪽으로 밀쳤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더라고요. 너무 속상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우리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했죠.

 

남자 친구가 며칠 뒤에 한 번 보자고 하더라고요. 남자 친구가 말했어요. “우리 서로 생각할 시간 가져보자.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고, 결혼한다면 너와 하고 싶은데, 지금 뜻하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 주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저도 같은 생각이었을지 몰라요.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 있거든요. 그래도, 남자 친구가 그날 일에 대해 사과 한 마디 할 줄 알았어요. 길가에 저를 버리고 갔잖아요. 사과 한 마디를 안 해서, 제가 그랬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남자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고. 결국, 사과는 없었죠.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고민이 하나 늘었어요. 자기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맞을까.

 

남자 친구나 저나, 서로 힘들게 살아왔거든요. 양쪽 부모님이 서로 상처가 많은 분들이세요. 우리는 서로 행복하게 살자라고 용기를 주면서 지내왔는데, 결국 이렇게 됐어요.

 

생각할 시간을 갖는 동안,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하거든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요. 평소보다 기도를 많이 하고 말씀도 많이 읽거든요. 공동체 사람들도 돌아보게 되고, 장점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남자 친구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정말 답답해요.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 같아요.

 

벌써 두 달이 지났어요. 남자 친구에게 가끔 잘 지내냐고 문자가 오면, 잘 지낸다는 식으로 답장은 보내는데, 아직 만나지는 않았어요. 제가 먼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때가 되면, 남자 친구가 다시 만나자고 연락을 하겠지, 생각하고 있어요.

 

남자 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제 자신을 조금 더 알고 싶었어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시간이 어느 정도 있을 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게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그러다,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고요. 

 

– 그렇군요. 잘 들었어요. 그럼, 제가 궁금한 것부터 차례대로 질문하면서 들어봐도 될까요?

 

네, 그럼요. 

 

– 차 안에서 서로 심하게 다투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아, 맞아요.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네요.

 

제 부모님을 만나고 오던 길이었어요. 부모님은 남자 친구를 못마땅해 하세요. 저도 그게 스트레스에요. 다행히 남자 친구가 이해해줘서 같이 노력하고 있거든요. 부모님이 남자 친구를 반대하시는 이유는, 어쩌면 저 때문일지 몰라요.

 

– 그게 어떤 의미죠?

 

부모님은 어떤 남자를 데려와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실 거예요. 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시거든요.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부모님의 기대를 꺾지 못하고 있어요.

 

– 무엇을 기대하고 계실까요?

 

부모님은 제가 행복하기를 바라시죠. 당신들은 고생하셨으니까, 애지중지 키운 딸은 고생 안 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세요. 제가 외동딸이거든요. 딸이 하나니까 더 그러시겠죠.

 

–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나요?

 

그럼요. 너무 자주 말해서 외울 지경이에요. “남자 친구 학벌이 너보다 낮지 않냐. 남자 친구의 직업을 봐라. 너보다 돈도 못 버는데.” 이런 말을 계속하세요. 남자 친구 앞에서는 절대 말하지 않으시죠. 저한테 계속 말하세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있나요?

 

있으시겠죠. 부모님은 교회에 다니지 않으세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저하고 달라요. 남자 친구도 좋은 대학을 나왔어요. 대기업에서 어느 정도 일하다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지금 열심히 하고 있어요. 최근에 투자도 조금 받았고요. 안정된 삶은 아니지만, 도전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거든요.

 

– 남자 친구와 싸우기 직전에, 부모님을 만났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눈에 띄는 일은 없었어요. 그냥 조용히 밥 먹고 헤어졌어요.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서로 만나서 식사하고 그러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이 있을 때 주고받은 대화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죠?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 안 나는데, 결혼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남자 친구가 저보다 여섯 살이나 많아요. 저는 28살인데, 남자 친구는 지금 34살이에요. 남자 친구가 결혼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해요.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어요. 부모님을 설득하고 난 다음에 축복받는 결혼을 하고 싶거든요.   

 

– 그렇군요. 하지만, 남자 친구가 “그만 만나자”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요?

 

아, 제가 중요한 말을 빠드렸어요. 최근에 양쪽 부모님이 저희를 빼고 서로 만나셨어요. 우리 두 사람이 결혼에 대한 의지는 확실하니까 결혼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시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남자 친구 부모님은 “둘 다 성인인데,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그 말에 기분이 상하셨나 봐요. “그렇게 급할 필요 뭐 있냐. 결혼하면 평생 같이 살 건데.”라고 말씀하셨나 봐요. 화살은 저희에게 돌아왔죠. 저도 그렇고, 남자 친구도 그렇고, 각자의 부모님에게 상처받는 말 많이 들었어요.

 

남자 친구는 제가 스스로 결정해주기를 바라요. 부모님이 반대하시더라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부모님도 마음이 달라지실 거라고. 제가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우유부단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부모님이 동의하고 축복하는 결혼을 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남자 친구가 그날도 물었어요. “그게 언제냐?”라고. 제가 말했어요. “나도 모른다고.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남자 친구가 그다음부터 말이 없었어요. 한참 뒤에 한다는 말이 “그만 만나자”라는 말이었고요.

 

– 저보다 남자 친구에 대해 더 잘 아실 테니까, 조심스럽게 질문해 볼게요. 남자 친구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뭘까요?

 

남자 친구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는 돼요. 서로 오래 만났어요. 벌써 7-8년이거든요. 2년 정도 서로 알고 지내다, 연애를 시작했어요. 연애하고 조금 지난 다음부터 남자 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계속 기다려달라고 했고요. 기다리는 게 힘들었을 거예요. 벌써 몇 년이에요. 지칠 것도 같아요.

 

– 직설적인 질문을 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그럼요.

 

– 남자 친구를 결혼 상대로 진지하게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좋은 남자예요. 그 부분은 남자 친구에게도 계속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 그렇군요. 부담을 드릴 의도는 전혀 없지만,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질문을 드리는 거예요. 당신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동의를 받고 축복받는 결혼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적어도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행복하게 살자고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을 수는 없잖아요. 힘들고 어렵게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저를 키우셨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부모님이 분명 동의해주실 거예요.

 

– 그렇군요. 조금만 기다리면, 부모님이 동의해주실 거라는 말,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의미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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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는 무슨 특목고야. 우리 집안 형편에…. 그냥 일반고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해서 국립대나 가.”

 

“아빠, 정말 왜 그래?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학교야.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

 

“특목고 안 가도 서울대 갈 사람은 다 서울대 가. 특목고 가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알아. 그렇게 극성을 떨어서 뭐 하려고.”

 

“됐어. 아빠하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아빠는 상관하지 마.”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사고로 한 쪽 다리가 불편했다. 취업이 쉽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다. 불편한 다리로 집집마다 방문하며 백과사전을 팔았다. 백과사전은 정수기가 되었고, 비데가 되었다. 영업 능력을 인정받아 대리점을 오픈했지만, 직원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오라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매출은 뚝뚝 떨어졌다.

 

대리점을 처분했다. 남은 것은 빚이었다. 어떻게든 일어서야 했다. 다시 밑바닥부터 영업일을 시작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아파트 현관은 비밀번호로 잠겨 있었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덥고 추운 날에도, 발바닥이 으스러져라 뛰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술을 의지하는 날이 늘어갔고, 몸은 서서히 망가졌다. 살림만 했던 아내가, 근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간신히 먹고살았다. 

 

그녀는 공부를 잘했다. 전교 1등을 척척 받아왔다. 특목고 합격 소식에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처음으로 맛본 성취감이었다. 그녀의 예상과 달리, 기쁨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았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내뱉은 말이 그녀에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녀는 주말 내내 방에 들어가 울었다. 밤새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가난이 싫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 그녀는 평소처럼 일어나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았다.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세차게 닫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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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선생님 좀 볼까?”

 

담임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들어간 그녀는 뜻밖의 말을 전해 들었다.

 

“있잖아. 주말에 아버지한테 연락 왔었어. 그리고 물으시더라. 특목고 가면 돈이 얼마나 드냐고. 대충 설명드렸더니, 그 돈 어떻게든 마련할 거니까, 우리 딸 꼭 특목고 들어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러셨어. 아버지가 술을 조금 드셨는지, 많이 우시더라. 일단, 입학은 해. 그다음은 어떻게든 되겠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쏟아져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품에 무너지듯 안겼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아빠, 내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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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찍 다녀. 계집애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쏘다는 게 제정신이야. 저러다 큰일 나지, 진짜.”

 

“아빠. 지금 공부하다 왔어요. 남자라도 만나고 와서 그런 소리 들으면 몰라.”

 

그녀의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게 되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으로 살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더 이상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 약한 몸으로 무리한 탓에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그녀는 명문대에 입학한 덕분에 과외를 할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을 만큼 일을 하면서, 학교 공부에 열심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부모님에게 상의를 하자,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대학원은 무슨 대학원이야.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지. 계속 공부해서 뭐에 쓰게. 너 좋은 기업에서 오라고 했다며? 그럼, 바로 간다고 해야지, 이것아. 학자가 될 것도 아니면서 무슨 대학원이야.”

 

     며칠 고민 끝에, 그녀는 대학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의 말에 설득된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진로를 깊이 고민했다. 목숨 걸고 대학원에 가려는 열정은 없었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좋은 기업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과외를 하고 피곤하게 집에 들어온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거실에서 딸을 맞이했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이거 아빠가 전해주래. 5년 정도 부은 적금인데, 너 대학원 가는데 보태 쓰라고 했어. 아빠, 알지? 직접 주라고 했더니, 그냥 엄마 보고 전해달래. 하고 싶은 공부 있으면 해. 아빠가 그날 너한테 그렇게 말하고, 잠을 못 자고 고민하시더라.”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픈 감정을 억누르며 태연한 척 말했다.

 

“엄마, 됐어. 나도 첫 학기 등록금 정도는 모았어. 돈 때문에 대학원 안 가는 거 아니야. 내가 생각하고 결정한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렇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고.”

 

###

 

다음 날,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사에 말에 몇 해 전부터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살던 아버지였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대화한 다음 날, 아버지는 인사불성이 되어 딸 앞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듯 말했다.

 

“딸, 아빠가, 아빠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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