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저 혼자 감당 못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어요. 저도 일해요. 남편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에요. 첫째를 키우는 일도 벅찬데 남편은 둘째를 낳으라고만 하니 도무지 신뢰를  할 수 없었거든요. 낳지 말자고 남편을 설득하려고 해도, 대화 자체를 거부했어요.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수술실에 누워 남편을 원망했다고요.”

 

        두 달 전, 아내는 남편 동의 없이 아이를 지웠다. 남편은 둘째를 원했지만 아내는 반대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내는 홀로 육아를 했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야근을 해도 아이를 챙기는 일은 그녀 몫이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기가 벅찼다.

        친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년 전부터 함께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아내는 혹시 임신이라도 될까 싶어 침실에서 신중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남편에게 조심하라고 말했다.

        남편이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대화는 산으로 갔다. 남편은 아이에 대해, 아내는 역할 분담에 대해 말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팠다.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는 몰래 임신테스트를 했다. 빨간색 두 줄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산부인과에 찾아가 최종확인을 받았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남편에게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아이를 지우자고.

        그러나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는  육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친정 엄마와 함께 들어와 살면서 그는 더 편해졌다. 뒤로 물러나서 그나마 도와줬던 소소한 일마저 친정 엄마에게 떠넘겼다.

        한 번 쓰라린 고통을 맛본 아내는 남편의 달콤한 말을 믿지 않았다. 남편이 꼭 약속을 지킬 테니, 아이를 낳자고 말해도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로 최종 통보를 하고 아이를 지웠다.

        그날부터 남편은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졌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늘었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 원망스런 마음이 뒤섞여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도 마음이 아플 테니까.

        그러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친정 엄마는 남편에게 쉬지 않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딸이 일과 육아로 힘들다고 해서 발 벗고 나섰건만 사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들어오니 속 터지는 일이었다.

        그녀가 엄마네게 적당히 하라고 부탁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노인들은 아이를 지우면 천벌이라도 받는 줄 아니까.

        남편에게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집에서 샤워를 하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는 샤워를 하는 깔끔한 남자였다. 왜 씻지 않느냐고 물으면 “피곤해서…”라고 짧게 대답했다.

        불안한 아내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그는 붉은 조명 아래 여성들이 반나체로 서 있는 골목을 서성거렸다. 아내의 두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죽인 대가로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로 같은 공간을 거닐 뿐이었다. 소리 없이 걸었지만 아팠다. 깨진 유리 조각 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어떻게 아내가 제 동의 없이 아이를 지울 수 있나요? 이건 말이 안 돼요. 너무 상처가 커서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그는 엄마 역할이 힘들다고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는 아내에게 정이 떨어졌다. 육아를 충분히 돕지 못했고, 살림을 아내에게만 떠넘겼다. 그러나 그의 부족함이 아내가 저지르고자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말렸다. 울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짧고 냉담했다.

 

        “나 병원이야.”

 

        더 이상 회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하고 회사 옆 산책로를 따라 한강까지 갔다. 걷고 또 걸었다. 걷다 치쳐 인도에 걸터앉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대로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술을 마셨다. 곤드레만드레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왔다.

        붉은 불빛 가득한 거리가 나타났다. 붉은 불빛은 낯설었지만,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환상을 보았다. 상점 안에 있어야 할 마네킹들이 유리창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도망쳐야 했다. 그에게 달려드는 마네킹으로부터.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였다. 술에 취해서 길에서 잠이 들은 것 같았다. 아침에 집에 들어서자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장모님이 달려들어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자네 지금 제 정신이야? 어디 가서 뭐하다 지금 들어왔어? 당장 말해!”

        신발을 벗는 동안 생각했다.

        ‘뭐라고 말할까?’

        아내가 그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아들의 옷을 입혀주면서 말했다.

        “엄마, 지금 뭐하는 거야, 내버려둬요!”

        남편은 생각했다.

        ‘아내에게 고마워해야할까? 아니면, 내 집 같지 않은 이곳에서 뒤돌아 나가야 할까?’

 

        남편은 집이 더 이상 편하지 않다. 계속 장모님과 아내를 볼 생각을 하니 끔직했다. 그들의 눈빛이 싫었다. 방문이 열렸다. 아들이 아빠 품으로 달려왔다. 아들이 억지로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거실로 나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눈물 없이, 소리 없이 울었다.    

 

***

 

        깨어진 부부는 힘겨루기를 한다. 힘의 균형이 동등하지 않다. 둘 중 한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다른 한 쪽은 더 많이 양보하고, 희생한다. 주도권을 쥔 사람은 모른다. 주도권을 잃은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승자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 힘겨루기는 치열하다. 승자가 결정되기까지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 한다.

        두 사람은 전쟁 중이다. 양보 없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상대를 제압하려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우라고 말한다. 해결은 간단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면 된다. 그러나 둘은 힘겨루기에 정신이 팔려 간단한 해결책을 버렸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소중한 생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내의 단정적인 사고와 빠른 결론과 결정은 남편 자격, 아버지 자격을 박탈시켰다. 가정 안에 남편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아내는 주관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에 맞춰 선별적으로 정보를 선택한다. 이것이 파괴적인 패턴으로 이어진다. 결론이 내려지면 새로운 정보는 힘을 잃는다. 결론과 맞지 않는 정보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육아와 살림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잘못된 정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은 “내가 원하는 만큼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에 대해 서로 대화해야 하는데, 아내는 친정 엄마를 데려왔다. 남편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결론이 빠르니 결정도 빠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뒤를 발고 내린 결론도 성급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그 거리를 걸은 것은 맞지만 그 장소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술에 취해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비난받을 수는 없다. 그는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의무와 강요로 변질된다. 의무를 앞세워 강요하면 배우자는 멀리 도망간다.

 

        “내 남편/아내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 내 남편/아내는 ~해야만 한다.”

 

        배우자를 숨 막히게 한다. 직접 문장으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는 안다. 원하는 바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남편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회피했다. 출산은 두 사람 사이에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남편은 소극적이었다. 대화를 끝까지 하지 않고, 중간에 물러났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낳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그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했어야 했다.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산 이후다. 아이 존재에 대한 말싸움을 하다가 남편은 아내에게 신뢰를 잃었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러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배우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숨기거나 왜곡시켜 표출하면 관계가 어려워진다.

        남편은 숨기는 방식에 익숙하다. 술에 취해 잊으려고 했다. 그의 회피가 더 많은 오해와 갈등을 일으켰다. 회피하면 문제는 커진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된다. 멈추고 직면해야 한다. 솔직한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 배우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배우자가 공감한다면 이해받는 것이다. 거절하면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하면 된다. 불편해도 멈추지 않고 자신을 표현해야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장모님의 존재는 남편에게 혜택이자 손실이다. 육아와 살림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혜택이비만 그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손실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장모님의 존재로 인해 빼앗긴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육아와 살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편은 편안함과 불편함의 미묘한 경계에서 혼란스럽다.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맡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가정을 온전히 책임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고통이 따르지만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기꺼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시간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맞다. 책임지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