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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ecord

온 더 레코드

“공개 동의를 받은 공식 인터뷰”

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교회 목사님께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기 힘든 것 같아요. 저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시거든요. 목사님은 평생 주님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에요. 그 앞에서 제가 사소한 문제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얼마나 실망하시겠어요.”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고등부에서 만난 전도사님에게 그녀는 믿음직한 제자였다. 전도사님은 목사가 되었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녀의 나이 17살부터 32살까지 함께 해 온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이 교회 개척에 함께 하자고 제안 했을 때, 그녀는 감동했다. 부족한 자신을 동역자로 생각해준 목사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상가에서 시작한 교회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람이 늘어나지 않았다. 목사님은 혼자 고생하며 교회를 이끌어가셨다. 관리비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채로 어둠 속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말없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가족을 포함해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남았다. 그녀 역시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목사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했다. 이렇게 떠난다면, 하나님께도 죄송한 일이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도리를 하고 싶었다. 교회 일에 앞장섰고, 헌금도 성실히 했다. 조금이라도 목사님을 돕고 싶었다.

    저글링을 하듯 정신없이 유지되었던 그녀의 삶이 무너져내렸다. 그녀의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해 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해 온 어머니였다. 정신과에 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했지만, 그녀의 설득에 어머니는 치료를 시작했다. 상황은 나아졌고, 어머니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목사님은 자기 일처럼 어머니를 도왔고, 그녀 역시 그런 목사님이 고마웠다.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했던 어머니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남은 가족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고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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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힘든 내색을 못하겠어요. 목사님이 힘을 다해 도우셨거든요. 저도 이제 이겨내야죠. 벌써 일 년이나 지난 일인 걸요. 이제 다 털어내고 싶어요.”

– 털어내고 싶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내 삶을 찾고 싶어요. 다시 예전처럼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지금은 상황이 안 좋거든요.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해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 차려야죠.

– 지금 그 말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바보 같다는 생각이요. 이미 지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인데, 나는 왜 아직도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죄송해요, 잠시만요. 왜 갑자기 눈물이 날까요.”

– 괜찮아요. 편안하게 하세요. 마음이 진정되면 말씀해주시고요.

    “네, 잠시만요. 이제 괜찮아요. 바보 같죠. 울어서 그런가 봐요. 엉망이 된 것 같아요.”

– 제가 어떻게 말해주기를 원하나요.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나 봐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그런 말을 듣고 싶었나 봐요. 그 질문을 해주시기 전까지, 스스로 바보 같다고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 스스로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실 수 없으신가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그런 식으로 살아오지 못한 것 같아요. 살면서 여유가 없었거든요. 제 자신을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그러지 못했어요.”

–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볼게요. 두서없어도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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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이야기부터 해야겠죠?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기운이 없었어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 표정에 따라 그날 하루가 결정되었어요. 엄마 표정이 밝은 날은, 엄마가 간식도 해주고 그랬거든요.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하시고. 하지만, 그런 날은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어요.

    엄마 표정이 어두우면 제 방에 혼자 들어가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그게 답답해서, 엄마 표정이 어두운 날은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 오던 기억이 나요. 집으로 돌아오면, 집 안 전체가 어두웠어요. 불을 꺼놓고 계셨어요. 제가 불을 켜면, 엄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을 끄라고 말했고요.

    아버지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저녁을 준비하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무뚝뚝하신 분이었고, 두 분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아요. 가끔 두 분이 심하게 다투셨는데, 아버지는 엄마를 의심하는 듯한 말을 했어요. 낮에 밖에서 뭐 했냐는 식으로.

    엄마가 예쁘셨어요. 아버지는 항상 불안해하셨죠. 엄마는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었는데, 아버지는 도무지 믿지를 않으셨어요. 엄마는 포기한 것 같았아요. 하루는 그러더라고요. “너희가 커서 독립하면 아빠랑 안 살 거라고.” 저는 무심결에 그러라고 했어요. 같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닌데, 계속 고통받을 이유가 없죠.

    동생은 저랑 반응이 달랐어요. 동생은 울고불고 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매달렸어요. 그때 동생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으니까 많이 어렸죠. 동생도 중학생 되더니,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말하더라고요.

    엄마가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그러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자녀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어요. 다른 집은 귀찮을 정도로 엄마들이 말이 많다고 하는데, 저희 집 상황은 정반대였어요. 엄마가 아무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는 하숙집 아줌마가 된 거예요.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그게 다였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하고 독립했어요. 제가 따로 집을 얻어 나온다고 하니까, 엄마가 우시더라고요.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집을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엄마가 그만큼 힘들었던 건데, 제가 무심해서 잘 몰랐던 거예요.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요.

    동생은 결혼을 일찍 했거든요. 대학을 안 갔어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는데, 회사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했어요. 22살쯤에 결혼했으니까, 저보다 3년 정도 일찍 집을 나간 거죠. 엄마가 그때는 울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못 본 건지는 몰라도요. 오히려 동생이 결혼식 당일에 많이 울었어요. 동생이 우니까,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집을 나와서는 저 사느라 바빴거든요. 집에도 자주 못 들어갔어요. 제가 IT 기업에 다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는 거예요. 제 성격상 일과 삶이 구분이 잘 안돼요. 24시간, 월화수목금금금. 출퇴근 시간은 회사에서 정해놨는데, 저한테는 큰 의미가 없어요.

    회사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교회에서 살죠. 주말에 쉰다는 건 생각도 못해요. 교회 가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하니까, 퇴근하고 잠깐 교회 들러 기도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수요일은 수요 예배에 가고, 금요일은 철야를 하고, 토요일은 주일 준비하고,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 사역을 해요. 월요일은 출근하고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요. 회사에서는 회사 일로 눌리고, 교회에서는 교회 일에 눌려요. 가끔 미치도록 마음이 답답한데, 어디 말할 데는 없어요. 회사 상사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편이고, 목사님께는 더더욱 말 못 하죠.

    엄마를 떠나보내고 깨달았어요. 내가 잘 못 살았구나.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됐는데. 너무 후회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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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두서 없이 말했죠. 제가 말을 잘 못해요.”

– 아니에요. 잘 들었어요. 제가 궁금한 것부터 차례대로 질문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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