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목사님께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기 힘든 것 같아요. 저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시거든요. 목사님은 평생 주님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에요. 그 앞에서 제가 사소한 문제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얼마나 실망하시겠어요.”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고등부에서 만난 전도사님에게 그녀는 믿음직한 제자였다. 전도사님은 목사가 되었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녀의 나이 17살부터 32살까지 함께 해 온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이 교회 개척에 함께 하자고 제안 했을 때, 그녀는 감동했다. 부족한 자신을 동역자로 생각해준 목사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상가에서 시작한 교회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람이 늘어나지 않았다. 목사님은 혼자 고생하며 교회를 이끌어가셨다. 관리비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채로 어둠 속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말없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가족을 포함해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남았다. 그녀 역시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동안 목사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했다. 이렇게 떠난다면, 하나님께도 죄송한 일이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도리를 하고 싶었다. 교회 일에 앞장섰고, 헌금도 성실히 했다. 조금이라도 목사님을 돕고 싶었다. 

 

저글링을 하듯 정신없이 유지되었던 그녀의 삶이 무너져내렸다. 그녀의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해 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해 온 어머니였다. 정신과에 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했지만, 그녀의 설득에 어머니는 치료를 시작했다. 상황은 나아졌고, 어머니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목사님은 자기 일처럼 어머니를 도왔고, 그녀 역시 그런 목사님이 고마웠다.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했던 어머니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남은 가족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고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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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힘든 내색을 못하겠어요. 목사님이 힘을 다해 도우셨거든요. 저도 이제 이겨내야죠. 벌써 일 년이나 지난 일인 걸요. 이제 다 털어내고 싶어요.”

 

– 털어내고 싶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내 삶을 찾고 싶어요. 다시 예전처럼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지금은 상황이 안 좋거든요.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해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 차려야죠.

 

– 지금 그 말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바보 같다는 생각이요. 이미 지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인데, 나는 왜 아직도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죄송해요, 잠시만요. 왜 갑자기 눈물이 날까요.”

 

– 괜찮아요. 편안하게 하세요. 마음이 진정되면 말씀해주시고요. 

 

“네, 잠시만요. 이제 괜찮아요. 바보 같죠. 울어서 그런가 봐요. 엉망이 된 것 같아요.”

 

– 제가 어떻게 말해주기를 원하나요.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나 봐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그런 말을 듣고 싶었나 봐요. 그 질문을 해주시기 전까지, 스스로 바보 같다고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 스스로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실 수 없으신가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그런 식으로 살아오지 못한 것 같아요. 살면서 여유가 없었거든요. 제 자신을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그러지 못했어요.” 

 

–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볼게요. 두서없어도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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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부터 해야겠죠?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기운이 없었어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 표정에 따라 그날 하루가 결정되었어요. 엄마 표정이 밝은 날은, 엄마가 간식도 해주고 그랬거든요.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하시고. 하지만, 그런 날은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어요. 

 

엄마 표정이 어두우면 제 방에 혼자 들어가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그게 답답해서, 엄마 표정이 어두운 날은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 오던 기억이 나요. 집으로 돌아오면, 집 안 전체가 어두웠어요. 불을 꺼놓고 계셨어요. 제가 불을 켜면, 엄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을 끄라고 말했고요. 

 

아버지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저녁을 준비하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무뚝뚝하신 분이었고, 두 분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아요. 가끔 두 분이 심하게 다투셨는데, 아버지는 엄마를 의심하는 듯한 말을 했어요. 낮에 밖에서 뭐 했냐는 식으로. 

 

엄마가 예쁘셨어요. 아버지는 항상 불안해하셨죠. 엄마는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었는데, 아버지는 도무지 믿지를 않으셨어요. 엄마는 포기한 것 같았아요. 하루는 그러더라고요. “너희가 커서 독립하면 아빠랑 안 살 거라고.” 저는 무심결에 그러라고 했어요. 같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닌데, 계속 고통받을 이유가 없죠. 

 

동생은 저랑 반응이 달랐어요. 동생은 울고불고 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매달렸어요. 그때 동생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으니까 많이 어렸죠. 동생도 중학생 되더니,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말하더라고요. 

 

엄마가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그러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자녀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어요. 다른 집은 귀찮을 정도로 엄마들이 말이 많다고 하는데, 저희 집 상황은 정반대였어요. 엄마가 아무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는 하숙집 아줌마가 된 거예요.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그게 다였어요.

 

그러다, 대학 졸업하고 독립했어요. 제가 따로 집을 얻어 나온다고 하니까, 엄마가 우시더라고요.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집을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엄마가 그만큼 힘들었던 건데, 제가 무심해서 잘 몰랐던 거예요.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요. 

 

동생은 결혼을 일찍 했거든요. 대학을 안 갔어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는데, 회사에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했어요. 22살쯤에 결혼했으니까, 저보다 3년 정도 일찍 집을 나간 거죠. 엄마가 그때는 울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못 본 건지는 몰라도요. 오히려 동생이 결혼식 당일에 많이 울었어요. 동생이 우니까,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집을 나와서는 저 사느라 바빴거든요. 집에도 자주 못 들어갔어요. 제가 IT 기업에 다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는 거예요. 제 성격상 일과 삶이 구분이 잘 안돼요. 24시간, 월화수목금금금. 출퇴근 시간은 회사에서 정해놨는데, 저한테는 큰 의미가 없어요. 

 

회사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교회에서 살죠. 주말에 쉰다는 건 생각도 못해요. 교회 가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하니까, 퇴근하고 잠깐 교회 들러 기도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수요일은 수요 예배에 가고, 금요일은 철야를 하고, 토요일은 주일 준비하고,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 사역을 해요. 월요일은 출근하고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요. 회사에서는 회사 일로 눌리고, 교회에서는 교회 일에 눌려요. 가끔 미치도록 마음이 답답한데, 어디 말할 데는 없어요. 회사 상사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편이고, 목사님께는 더더욱 말 못 하죠. 

 

엄마를 떠나보내고 깨달았어요. 내가 잘 못 살았구나.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됐는데. 너무 후회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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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두서 없이 말했죠. 제가 말을 잘 못해요.”

 

– 아니에요. 잘 들었어요. 제가 궁금한 것부터 차례대로 질문해도 될까요? 

 

네.

 

–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마음 아프시겠지만, 최선을 다해 답변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충분히 고민하셨을 테니까, 떠오르는 대로 말씀해주세요. 

 

쉽지 않네요. 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요. 제가 집을 떠났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표현을 못 하신 것뿐이지, 저를 많이 의지한 것 같아요. 제가 떠나고 아빠와 단둘이 사는 게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아빠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에만 계셨거든요. 단둘이 집에 있는 게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아빠가 매일 술만 드셨거든요.

 

–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또 다른 이유요? 글쎄요. 그다음은 모르겠어요. 

 

– 만약 집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 곁에 함께 계셨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아무래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제가 엄마와 같이 살았다면,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 지금 그 말을 하실 때, 무슨 생각이 스쳐갔죠? 

 

나는, 그냥, 정말…. 아, 모르겠어요.

 

(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죄책감이에요. 죄책감이 들어요. 내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엄마를 떠나버렸다는 죄책감이요. 

 

– 그렇군요. 우리 잠깐 특별한 상황을 가정해보고 대화해보면 어떨까요. 조금 어색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주세요. 

 

네, 괜찮아요. 해볼게요. 

 

– 만약 어머니를 다시 만나서, 지금 하신 말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전해주신다면, 어머니께서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글쎄요. 제가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 지금 제게 하신 말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전해주시면 돼요. 

 

많이 어색한데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천천히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돼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럼, 해볼게요. 

 

( 그녀는 긴 한숨을 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엄마, 많이 힘들었지. 내가 정말 미안해. 엄마를 떠나서 엄마가 혼자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아. 내가 엄마 곁에 있었다면, 엄마가 외롭지 않았을 텐데. 나 때문에 정말 미안해, 엄마. 

 

(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

 

– 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실 것 같아요. 

 

– 조금만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엄마가 직접 말하듯 말해주시면 더 좋고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편안하게 말해보세요. 

 

네. 

 

그게 아니야. 엄마가 너무 외로웠어. 너한테 말하고 도와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엄마가 실수했어.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어. 너한테 너무 미안해. 너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서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 지금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요. 잠시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 네, 편안하게 하세요. 천천히 하시면 돼요.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실제로 엄마는 그런 분이거든요. 처음으로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같아요. 지금 엄마에게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어요. 

 

– 엄마가 지금 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엄마는 제가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실 거예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으실까요. 하지만, 제가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나 버린다면, 엄마에게 더 미안할 것 같아요

 

– 한 가지 작업을 더 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 만약 예수님께 지금의 솔직한 감정을 전해주신다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예수님께요? 

 

– 네, 방금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께 말한다면,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해주실까요? 

 

예수님은…. 

 

(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힘들게 말을 이었다. )

 

괜찮아. 엄마는 내가 돌볼 거야. 여기 나와 함께 있단다. 이제 내가 돌봐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 예수님의 표정은 어떤가요?

 

따뜻하세요. 포근하게 느껴져요. 

 

–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나요? 

 

엄마가 혼자가 아니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이제 엄마도 슬퍼하지 않겠구나. 더 이상 외롭지 않으시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 또다시 슬픔에 잠겨 예수님을 찾는다면, 예수님이 뭐라 말씀해주실까요? 

 

“괜찮아. 시간이 필요해. 슬프면 슬퍼하렴. 나는 이해할 수 있단다.”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요. 

 

–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시고요? 

 

네. 예수님이 따뜻하게 느껴져요. 

 

– 오늘 서로 나눈 대화를 한 번 정리해보실 수 있겠어요? 

 

잠시만요. 지금 너무 울어서 정신이 없거든요. 

 

(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이거든요. 엄마 입장에서 나를 생각해 본다는 거. 예수님 곁에 계신 엄마를 느껴 본 것도 처음이고요. 

 

– 그게 어떤 의미죠? 

 

계속 제 관점에서만 이 상황을 바라본 것 같아요.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죄책감으로 이어졌거든요. 엄마를 위해서라도 슬픔에 오래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마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처음으로 엄마 마음을 느껴보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엄마도 나를 사랑하셨으니까요. 

 

–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요?  

 

예수님께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어요. 교회 봉사를 할 때도 그랬거든요. “너는 가족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무슨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그러니? 그게 위선이란다.” 이런 죄책감이 저를 짓눌렀어요. 예수님께 기도하기보다 매달렸던 것 같아요. 이런 저를 용서해달라고. 

 

예수님이 천국에서 엄마와 함께 계시다는 것, 지금 저와 함께 해주신다는 것이 제게 너무나 위로가 돼요. 엄마를 직접 만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이 제 상황을 엄마에게 전해주시지 않을까요. 마음이 정말 편해졌어요. 

 

– 오늘 힘든 작업이었을 거예요. 수고 많으셨어요. 솔직하게 마음 열어주신 덕분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 아니에요. 저도 너무 감사해요. 집에 가서 조금 쉬면서 오늘 대화를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요. 

 

– 그래요, 좋은 방법이에요. 다음 시간에는 원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목사님을 포함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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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한 주요?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 일과는 거의 비슷해서요.   

 

– 상담과 관련해서, 감정과 생각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아, 지난주 상담이 끝날 때쯤에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원가족,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으시다고요. 제가 먼저 생각을 해봤어요. 

 

– 한 번 들어볼까요.

 

가족을 제외하고 나면, 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목사님이거든요. 제가 목사님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어떤 의미인가요? 

 

고등학교 다닐 때, 목사님을 처음 만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살짝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엄마는 매일 불을 꺼놓고 집에 누워 계시다시피 했어요. 저는 공부를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갔지만,  솔직히 말할 수 없이 외로웠어요.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죠. 

 

그러다, 목사님을 만났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그랬어요.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뭔가 안심이 되더라고요. 학교 앞에 찾아오셔서 안부를 묻고 그러셨는데,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나 싶었어요. 

 

하나님은 잘 몰랐어도, 한 가지는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그다음부터는 교회 생활을 적극적으로 했어요. 찬양팀에서 봉사도 하고, 수련회도 가고 그랬어요. 고3이 되어서도 수련회에 빠지지 않았어요. 

 

목사님은 다른 아이들 앞에서 저를 칭찬하기도 했어요. 설교 시간에 수련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저를 예로 들었거든요. 고3 신앙이 진짜 신앙이라고. 한결같이 잘 믿어야 한다고 말하면서요. 부끄러웠지만, 감사했어요. 목사님이 칭찬해주셨으니까요. 

 

제가 힘들 때, 정말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목사님이 영적인 아버지셨거든요. 대학이나 직업조차도 목사님과 대화하고 결정했어요. 목사님은 항상 경청해주셨고,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셨어요. 

 

– 목사님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 제가 목사님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어린 시절 가장 힘들 때, 늘 나를 지켜준 목사님이시니까, 저도 목사님을 지켜주고 싶었거든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제 인생도 벅차거든요. 

 

그러면, 바로 죄책감이 들어요. “네가 가장 힘든 시기에 목사님이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목사님이 힘들어지니까 바로 떠난다고 하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요. 저마저 교회를 떠나면, 목사님이 목회를 그만두시지 않을까요. 교회가 그만큼 어렵거든요. 제가 떠나면, 당장 교육부서가 마비될 거예요. 제가 거의 모든 주일학교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교회가 조금만 안정되면, 그때 가서 목사님께 말씀드리자.” 생각했어요. 사람이 조금만 늘어나면 내 부담도 줄어들 거고, 그러면 나도 조금 편해지겠지. 지금은 이 생각으로 버티고 있어요. 

 

– 어머니와의 관계가 목사님과의 관계로 연결되고 있다는 근거가 있을까요? 

 

근거요? 

 

–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필요해요. 자신 안에서 어떻게 어머니와 목사님이 이어지는지 연결 고리를 알고 싶어요. 

 

뭐랄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두려운 게 있어요. 대학 졸업하고 집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 하나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왔어요. 엄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고요. 지금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아요. 엄마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 목사님인데, 지금 목사님과 함께 있는 게 벅차요. 

 

목사님도 저와 대화를 잘 안 하세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으세요. 목사님도 두려워하시는 것 같거든요. 제가 떠난다고 말할까 봐. 그래서, 일부러 조용히 마주앉는 자리를 피하시는 것 같아요.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져요. 

 

엄마를 떠났듯이 제가 목사님을 떠난다면, 목사님은 어떻게 될까요. 나 혼자 살자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제 인생에서  목사님을 잃으면, 남는 게 없어요. 아무도 날 생각해주거나 걱정해주지 않아요. 마음을 기댈 곳조차 없어지는 거죠. 

 

목사님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 엄마가 생각났어요. 엄마를 잃은 것처럼, 목사님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목사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목사님은 희망을 잃어버리실 거예요. 저에게 항상 “사역의 열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 상당히 설득력 있군요. 감히 판단하는 건 아니에요.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스스로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에요. 

 

아니에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 그럼, 어머니와 목사님과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감정이요? 

 

– 어머니를 떠났던 것처럼, 목사님을 떠난다면 어떤 감정이 찾아올까요? 

 

아, 그건 죄책감이에요. 

 

– 무엇에 대한 죄책감인가요? 

 

지켜주지 못했다는, 나 혼자 살자고 도망친다는 그런 식의 죄책감일 것 같아요. 

 

–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제게 공감시켜주세요. 죄책감의 근거를 알고 싶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을 떠났을 때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 죄책감의 근거가 뭐냐고 물으신 거죠? 

 

– 네.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돼요. 

 

일단, 배신이라는 생각을 해요. 목사님은 내가 힘들 때, 날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거든요. 이제 목사님이 힘들어지니까,  제가 떠나고 싶어해요. 만약 제가 목사님을 떠난다면, 그건 배신이죠. 

 

– 네, 그게 첫 번째 근거군요. 제가 잘 정리하면서 듣고 있으니까 편안하게 계속 말씀해주시면 돼요. 

 

혹시라도 교회가 문을 닫으면, 저는 하나님께 책망을 받지 않을까요. 나만 참으면 되는데, 내가 참지 못해서 교회가 문을 닫으면, 저는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아요. 

 

– 네, 잘하셨어요. 두 번째 근거라고 생각할게요. 하나만 더 들어볼게요. 

 

음, 그게 다예요. 여기까지 밖에 생각이 안 나요.

 

– 그렇군요. 대화하다가 언제든 또 생각나는 근거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일단 이 두 가지 근거를 살펴볼 거예요. 제게 말씀해주신 근거가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느냐를 따져보려고 해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 방금 말씀하신 두 가지 근거가 정당한 근거인지 확인해보려고요. 아무리 법정에서, 내가 죄를 지었다고 소리를 질러도 증거가 없으면, 체포할 수 없거든요. 증거는 증거로서 효력이 있어야 해요. 혼자만 주장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죄인이라는 주장보다 중요한 건, 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거든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 제가 이제부터 질문을 하면서 근거가 근거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천천히 질문해 볼게요.

 

네. 

 

– 배신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지금 목사님을 떠나면, 배신이 아닐까 고민하신다고요. 혹시, 먼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알고 계시나요? 그들이 교회를 떠날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그 사람들은 배신자인가요? 

 

아니요. 배신자는 아니죠. 제가 왜 그 마음을 모르겠어요. 그 마음을 저도 알죠. 각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다, 지친 거예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거든요. 교회에서는 못 봐도,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그렇게 지내요. 다 같은 마음이잖아요. 

 

– 그렇군요. 그들이 떠날 때, 목사님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억나시나요? 목사님은 그들이 떠날 때, 분노해서 배신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아니요. 목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세요. 그런 분이라면, 제가 절대로 따르지 않았을 거예요. 목사님은 항상 말씀하세요. “내가 다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목사가 부족해서 양 떼를 제대로 못 돌본 거라고 말씀하세요. 목사님은 주님만 바라보고 목회하세요. 목사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으셨어요. 

 

– 그렇군요. 그럼, 제가 정식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만약 당신이 교회를 떠난다면, 당신은 배신자가 되나요? 

 

아…. 그건, 잠시만요. 

 

– 지금 무슨 생각이 스쳐 지나갔죠? 

 

지금 뭔가 당황스러워요. 감정과 생각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지금까지 “나는 그러면 안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목사님을 떠나면 안 돼. 그거 배신이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어떤 틀 속에 갇혀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제가 조심스럽게 다시 여쭤보고 싶어요. 첫 번째 제시하신 근거가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근거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 그럼, 다음 근거로 넘어가 볼게요. 제가 말하는 동안에도, 새롭게 생각나는 근거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네. 

 

– 교회를 떠나시면, 교회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요. 

 

– 네, 맞아요. 

– 조금 공격적인 질문이긴 한데, 용기 내서 질문해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 교회가 뭘까요? 무엇을 교회라고 말씀하시나요? 

 

교회요? 아, 질문의 의도를 알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교회죠. 교회는 적어도 건물이 아니죠. 교회는 사람이에요. 제가 말씀드린 건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에요. 

 

– 그렇군요. 절대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그냥 가정을 해보고 말하는 거예요. 표현이 직설적이더라도, 이해해주세요.  

 

편안하게 질문해주세요. 

 

– 네, 고마워요. 그럼, 질문해 볼게요. 만약 목사님이 목회를 힘들게 하시다가, 교회 문을 닫으셨어요. 하나님이 목사님을 책망하실까요? 

 

아니죠. 그럴 리 없어요. 목사님은 정말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건 하나님도 아실 거예요. 목사님이 교회 문을 닫는다 해도, 어떤 모양으로든 다시 목회를 시작하실 거예요. 주님을 사랑하시는 분이거든요. 그 부분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 그렇군요. 질문을 하나 더 해 볼게요. 만약 당신은 교회를 떠나지 않고 힘들게 버티고 있는데, 목사님이 교회를 정리하신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심정이실까요? 목사님을 비난할 수 있으신가요? 

 

아니요. 비난이라니요. 그럴 수 없어요. 오히려, 위로해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오셨는데, 잠시 푹 쉬시라고. 다시 어떤 방식으로든 사역을 시작하신다면, 함께 하고 싶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고요. 

 

– 자, 그럼 정식으로 다시 물어볼게요. 만약 당신이 교회를 떠난다면, 목사님은 당신을 비난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책망하나요? 

 

아, 그건 아닐 거예요. 

 

– 그럼, 두 번째 근거가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나요?

 

아니요. 근거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 지금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조금 당황스러워요. 

 

– 어떤 의미죠? 

 

제가 그동안 제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과 저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랐던 것 같아요. 한순간에 모든 게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건 있어요. 그동안 나를 너무 못살게 굴었구나.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 제 의도는 잘 전달이 되었을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근거를 물어보셨잖아요. 근거를 물어보셨을 때, 당황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어떤 의도로 물어보셨는지 지금은 알 것 같아요.

 

– 제가 잠시 교만해도 될까요? 

 

네. 

 

( 그녀가 방긋 웃었다. )

 

– “당신을 판결하겠습니다. 당신이 제시한 근거로는 당신의 죄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죄입니다.” 조금 어색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편안해졌어요.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오늘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 볼 거예요.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봐야죠.  

 

– 제가 잠시 역할을 바꿔도 될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지금까지 저는 상담자로서 기능했어요. 아주 잠시만, 목사로 기능할게요.  

 

아, 네. 그럼요. 

 

– 목사로서, 저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의 헌신이 고맙고, 당신의 수고가 고마워요. 하나님도 아세요. 당신의 삶을 바라보실 때, 기쁨을 억누를 수 없을 거예요. 목사님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나에게도 그런 제자들이 있어요.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당신의 마음이 제게 전해졌어요. 교회를 떠나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지금 잠시 힘들다는 뜻이지요.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어요. 떠나도 남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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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대답 대신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단지, 낙심한 것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그녀를 짓눌러 숨을 쉴 수 없었던 것이다. 경쾌하게 산책길을 걷던 사람도, 몸살에 걸리면 걸을 수 없다. 꽃도 나무도, 새소리도 전혀 보고 들을 수 없다. 

 

상담은 그 이후로 몇 차례 더 지속되었다. 그녀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상담을 종결한 것이 아니다. 문제 해결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 해결이다. 그녀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모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따뜻한 친구 말이다. 내가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머지않아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테니까. 

 

그녀의 친구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그녀에게 작별을 말할 때, 나는 슬프지만 슬프지 않았다. 그녀의 든든한 친구가 그녀의 손을 꼭 붙들고 함께 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계절이 바뀔 무렵, 그녀에게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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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기에 너무 늦은 감이 있네요. 상담이 끝나고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어요. 제가 상담을 받을 당시에는 너무나 제 삶이 힘들었어요. 엄마를 잃은 슬픔, 교회에서 느끼는 부담으로 제 자신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상처는 사라지지 않겠죠. 감정 역시 마찬가지고요. 지금도 여전히 수시로 찾아오는 슬픔과 마주하고 있어요. 그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해요. 예수님과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요.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절대 포기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저를 잘 돌보고 싶어요. 

 

교회는 여전히 잘 섬기고 있어요. 상담이 끝나고, 교회 목사님께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목사님과 함께 나누었어요. 목사님도 저도 같은 마음이었더라고요.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셨어요. 

 

지금은 의무감보다는 감사한 마음이에요. 교회 목사님이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마음이 편해진 게 아니라, 제가 마음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표현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았어요. 직장 상사에게도 제 의견을 조금씩 말하게 되었거든요.  

 

교회 목사님을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목사님은 목사님이지,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영적인 아버지라는 말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요. 여전히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저의 결핍을 목사님과의 관계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아빠와의 관계는 여전히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어요. 아빠에게도 예수님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조심스럽게 교회 가보자고 부탁하고 있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많이 발전한 거예요. 아빠와 말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답답한 마음은 주님께 전하고, 아빠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주려고요. 

 

아빠도 많이 힘들 거예요. 엄마를 잃고 자책하셨거든요. 술만 마시면, “전부 나 때문이다.”라고 말하세요. 제가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도, 아빠는 계속 울기만 하세요. 아빠가 밉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아빠도 참 힘들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쓰다 보니까,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계속 주님 바라보고 살게요. 멀리서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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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지탱하는 힘은 군중의 함성이나 박수소리가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가냘프게 떨리는 불꽃의 끝자락처럼,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상처 입은 한 사람의 속삭이는 기도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