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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우고, 진실은 남긴다 

민수는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수능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독서실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하루 일정이었다. 

 

민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이다.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바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준 과제가 적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책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이어폰 너머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실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민수는 짜증이 극에 달했다. 

 

장식장이 쓰려지면서, 거실 바닥에 유리 파편을 쏟아냈다. 엄마 아빠는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손목을 잡고, 사력을 다해 버텼다. 아빠는 엄마의 손목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가 손을 떨쳐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에 엄마는 힘없이 쓰려졌다. 민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깜짝 놀랐다. 아빠는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빠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아빠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수는 바닥에 쓰려져 울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추쳤다. 

 

민수는 이성을 잃었다.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 당신이 아빠야? 왜 맨날 술만 처먹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민수의 아빠도 이성을 잃었다. 민수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민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리 파편 위로 넘어졌다. 민수가 아빠 위로 올라앉아서, 아빠를 사정없이 팼다. 

 

아빠는 민수를 떨쳐내고 일어서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유리 파편이 등에 비벼졌다. 

 

민수의 엄마는 오열하면서, 민수를 뜯어말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수는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미끄럼을 타듯이 아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민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민수의 아빠는 터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를 빨아당겼다가, 침으로 뱉어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등 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흐느껴 울면서, 아빠의 등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고, 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민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빠를 때린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쥐고 거실 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시멘트로 차갑게 굳어진 벽은 민수의 손을 부러뜨렸다.  

 

퍽.

 

민수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엄마의 귓가를 울렸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수도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민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비틀비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  

 

“며칠 지나고,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술은 원래 아빠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

 

민수의 아빠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민수에게 건넸다. 민수는 잔을 받아들고 머뭇거렸다. 

 

아빠가 말했다. 

 

“마셔. 아빠가 주는 술은 일단 받는 거야.” 

 

민수는 소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학교 사물함에 있는 가그린 맛이었다. 가그린을 삼켜버린 듯 찝찝한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아빠가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민수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빠는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주 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꺼억하고 트림을 내뱉으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른들의 문제니까, 네가 끼어들면 안 돼.” 

 

민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민수가 들이킨 알코올이 민수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숨만 콧구멍으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연설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아빠의 말은 장황하게 무한 반복되었지만, 민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다혈질의 아빠는 풀이 죽어지냈다. 민수가 아빠에게 달려든 후로, 아빠는 집에서 존재감 없이 지냈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의 처량한 모습이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같았다.    

 

 

한 달이 넘도록 민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민수가 들어오면 서로 말을 멈췄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밤늦게 들어온 민수를 챙겼다. 

 

“늦게 피곤하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하지?” 

 

민수가 엄마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민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 나 때문에 참고 사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도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엄마는 민수의 침대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일단, 수능부터 끝내.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민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알겠어, 엄마. 이제 나가.”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지우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PC방으로 와.” 민수의 친구 K가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민수는 터벅터벅 걸어, 학원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피시방을 한 바퀴 돌아봐도 K와 친구들이 없었다. 민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민수가 물었다. 

 

“아, 우리 밖으로 나왔어. 분식점으로 와. 여기서 애들이랑 떡볶이 먹고 있어.” 

 

K가 말했다. 

 

민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분식점 앞에 내렸다. 분식점에서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다시 PC방으로 왔어. 빨리 이쪽으로 와. 우리 지금 세 명이라, 한 명 더 필요해. 최대한 빨리 와라.” 

 

민수는 화가 치밀었다. 

 

PC방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있느라 민수가 온 것도 몰랐다. 민수가 K의 옆자리에 앉았다. 

 

K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 판 끝나면, 2 대 2로 붙자.” 

 

민수는 K의 옆에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서 짧게 말했다. 

 

“알겠어.” 

 

 

“화나지 않았을까? 보통 고등학생이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한 번 났을 텐데….” 

 

내가 민수에게 물었다. 

 

“화는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민수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친구들이 나를 따돌릴까 봐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요. 제가 중학생 때 친구들이요. 제가 화를 한 번 냈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 졸업할 때까지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

 

“빌려 간 만화책 언제 갖다 줄 거야?” 

 

민수가 L에게 물었다. 

 

“아, 깜빡했다. 내일 갖다 줄게.” L이 대답했다.  

 

“자꾸 왜 그래?” 

 

“뭘? 내일 준다고 했잖아.”

 

“그 소리 벌써 세 번째야.”

 

“뭐래? 갖다 준다고 이 새끼야.” 

 

L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민수와 L은 서로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이 상했다. 민수가 L을 힘으로 눌러 넘어뜨렸다. L의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L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L의 절친, C가 주먹으로 민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민수는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L과 그의 친구들이 민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만화책을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그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들은 민수를 괴롭혔다.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를 쓸쓸히 졸업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긴장돼요. 내가 뭔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나는 민수에게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박살 내주고 싶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수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다시 PC방에 찾아갔을 때,  미안한 내색 하나 없던, K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민수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막상, 말을 하려니까 생각이 잘 안 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민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두 손을 겹쳐서 깍지를 끼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다시 PC방으로 올 거면, 왜 분식집으로 오라고 했던 거야.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감정이 어때?” 

 

“말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솔직히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고, 제 표현을 못 하는 게, 집 안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이고, 부모님과도 대화를 별로 안 하니까요. 제 감정, 제 생각 표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혼자만 계속 답답하고….”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집 안이 도둑이 든 것처럼 어수선했다. 

 

당황한 민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황해서 닫지 못한 현관문 앞에 아빠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닐봉지에 소주와 맥주, 오징어와 땅콩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엄마는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 병을 손에 쥔 채,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여전히, 현관 앞에 기댄 채였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요?” 

 

아빠가 소주 병을 현관 대리석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몰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알아?” 

 

민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이다. 

 

민수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아빠를 밀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수는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민수는 넘어진 채로,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민수는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민수의 바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를 집에서 구해주고 싶었다. 민수의 계획 역시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그날 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 

 

 

“민수야, 엄마야.”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독서실 앞이니까, 얼른 내려와.” 

 

민수는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와 엄마 앞에 섰다. 

 

“엄마!”

 

민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도 민수를 끌어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로 민수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집을 나갔어?” 

 

엄마는 민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조용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엄마가 민수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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