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 선생님, 잠깐 나 좀 봅시다.” 교무실 중앙에 책상을 놓고 앉은 교감 선생님이 말했다. 


한소희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얼어붙고 말았다. 권위적인 말의 무게에 짓눌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잠깐 이리 와보시라니까!” 더 커진 교감의 목소리에 한소희는 움찔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교감 선생님을 향해 걸어갔다. 주위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사람들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레이저 반점이 그녀의 온몸을 가득 매웠다. 걷다가 주춤하면, 일제히 쏴버릴 기세였다. 


“아니, 말 길을 한 번에 못 알아들으시는 거야?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을 몇 번을 불러야 대답을 해요?” 


“죄송합니다….”


“내가 왜 부른지 알죠?”


“….” 


“두 달 동안 교육감 온다고 학교 전체가 들썩거리면서 준비를 했는데, 왜 한소희 선생님만 준비를 안 한 거야? 선생님 때문에 개망신을 당했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당신한테는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학교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게 아니라고. 지금 기간제라고 대충대충 하는 거야?”


“….” 


“어떻게 두 달 동안 가만히 있다가, 교육감 오는 당일에 준비를 못 했다는 거야? 실험실에서 아이들이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는 게 말이 돼! 빔 프로젝터도 안되고 말이야.” 


한소희의 옆자리에 앉은 K 교사가 보다 못해 나섰다. K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교감에게 말했다. 


“교감 선생님, 사석에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사람들 다 보는데, 너무 심하시잖아요.” 


교감의 얼굴빛이 붉게 변했다. 헛기침을 하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됐으니까, 자리로 돌아가 보세요. 그리고, 내년에는 다른 학교 알아보세요. 정교사처럼 일하라고 했더니, 건성건성….” 


다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선생님들은 썰물처럼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교감은 인파에 몸을 숨겨 도피하듯이, 책상 위에 놓인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K 교사 역시, 한소희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 다급하게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교무실은 고요했다.


한소희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


김도훈 목사는 이른 아침, 상담 일정을 확인했다. 오후 2시, 3시, 5시. 주르륵 일정을 확인하다, 그의 시선이 오후 7시에 머물렀다. 한소희가 첫 세션을 시작하기로 예정된 시간이었다. 그는 잠시 그녀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그녀의 다급했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리는듯했다. 


“김도훈 목사님 맞으시죠? 저는 한소희라고 해요. 목사님이 쓰신 책을 읽고, 연락드렸어요. 제가 최근에 너무나 힘든 일을 겪었는데, 혹시 목사님께 상담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제 상황이 절박해서, 당장 내일이라도 상담을 받고 싶어요.” 


이틀 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였다. 


김도훈 목사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의 서재는 고요했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긴 바늘이 한 바퀴를 돌았을 때, 김도훈 목사가 눈을 떴다. 가만히 눈물을 닦으면서, 성경을 펼쳤다. 그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한소희는 서른두 살의 여성이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푸른색 긴 코트를 입은 채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목사님, 이렇게 급하게 연락드렸는데,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시간을 충분히 드릴 테니까, 편안하게 말씀해주세요.” 


한소희는 교무실에서 그녀가 겪은 사건을 말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담실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이틀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웠다. 소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간단한 음식을 두 끼 밖에 먹지 못했다. 


정서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떠올랐다. 몸살 기운과 두통, 어깨결림, 손떨림 증상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해가 뜨는 것이 두려웠다. 교감 선생님, 동료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 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기간제 교사라도 학교의 평가는 중요했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무책임하게 학교를 떠난 교사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은 낮았다. 남은 두 달을 어떻게든 버터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었다. 


남은 두 달을 혼자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상담을 택한 것이다. 


이제, 김도훈의 시간이었다. 그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그녀에게 하나씩 질문하면서, 흩어진 조각들을 가지런히 모은다면, 이내 한 장의 그림이 될 것을 김도훈은 알았다.


김도훈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한소희에게 말했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제가 소희 씨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궁금한 것들을 차례대로 질문해 볼게요. 지금처럼 편안하게 답변해주시면 됩니다.” 


김도훈은 이틀 전, 교무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교감이 그녀를 부르기 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도훈의 탐구가 시작되었다. 



“소희 선생님, 이번에 교육감 참관수업 많이 긴장되지?” K 교사가 물었다. 


“네, 조금이요.” 


“너무 긴장하지 마. 어차피 내가 다 준비해야 하는 거니까. 소희 선생님은 내가 부탁하는 것만 옆에서 도와주면 돼.” 


“네, 선생님.” 


K 교사는 책상 위 책꽂이에서 파일첩을 꺼내들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서류 한 장을 한소희에게 넘겼다. 


“여기 이 목록에 있는 물품들 한 번 확인해주고, 없는 물품은 체크 좀 해줘. 이것만 확인해서, 다시 나한테 넘겨주면 돼.” 


한소희는 K 교사가 넘겨주는 종이 한 장을 받아들었다.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다. 


“간단한데요.” 


“그럼, 간단하지. 내가 뭐 그렇게 어려운 일 시키겠어? 나머지는 내가 할 거야. 수업 내용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주면, PPT만 하나 만들어줘.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까, 센스가 떨어지는 것 같아. 소희 선생님은 아직 젊잖아. 센스 있게 잘 만들어 봐.”  


“지난번에 보니까, 잘 만드시던데요?”


“그것도 내 딸한테 부탁한 거야. 이제 고3이라고, 내가 시중들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다,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알겠어요, 선생님. 나중에 이메일 보내주세요.” 


“항상 고마워, 소희 선생님.” 


“제가 고맙죠. 항상 도와주시잖아요.” 


한소희는 점심시간에 과학실에 내려갔다. K 교사에게 받은 물품 목록을 확인했다. 단순한 일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내려와서 물품을 확인한다면, 한 주 내로 충분히 끝날 일이었다. 


일주일 후, 한소희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책상 앞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K 교사가 정시에 맞춰 허겁지겁 교무실에 들어왔다. 


“오늘 출근길에 접촉사고가 났어. 사고 처리하느라고 늦었네. 운전에도 나이 제한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가 뒤에서 내 차를 받았지 뭐야.” 


한소희는 깜짝 놀랐다. 


“병원 가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니야. 살짝 부딪혔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병원 가보셔야 해요. 교통사고는 사고 난 당시에는 잘 모르거든요. 내일 몸 상태 보시고 불편하신 데 있으시면, 꼭 병원 가보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참, 선생님께서 지난 번에 부탁한 물품 확인 끝냈어요.” 


한소희는 파일첩을 펼쳐들어, K 교사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잘 했네. 이렇게 하면 돼. 나도 수업 내용 정리 거의 끝냈으니까, 이번 주 내로 이메일 보내줄게.”


K 교사는 한소희에게 전해 받은 파일첩을 책상 위 책꽂이에 끼워 넣었다. 첫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K 교사는 출근하지 않았다. 한소희는 K 교사가 걱정돼, 문자를 보냈다. K 교사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나 방심했나 봐. 어젯밤에 허리가 아파서 한숨도 못 잤어. 일주일 정도 입원해서, 치료받으려고.” 


“잘 하셨어요. 아무 걱정 마시고, 일주일 푹 쉬다 오세요.”  


한소희는 교육감 참관 수업이 은은하게 걱정되었다. 혹시라도 K 교사의 퇴원이 늦어진다면, 열흘 뒤에 있을 교육감 참관 수업이 자신의 몫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소희는 교육감 참관수업 일정이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초조했다. K 교사에게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라고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주 내로 보내주겠다던, 이메일은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새벽 예배를 나가기 시작했다. K 교사가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니면, 이메일이라도 하루빨리 받아보기 원했다. K 교사가 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은, K 교사가 직접 수업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한소희의 기대와는 달리, K 교사는 일주일 내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교육감 참관 수업이 3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한소희는 K의 문병을 갔다. 만나서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한소희는 K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가, 인사치레의 안부를 묻고 나서 조심스럽게, 참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혹시 참관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하실 수 있으신 거죠?” 


“그래야지. 내일이나 모레 퇴원할 생각이야.” 


한소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희 선생님, 많이 걱정했구나. 뭘 그런 걸 걱정해? 그거 확인하려고 병원까지 온 거야?”


한소희는 움찔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K가 피식 웃었다. 


“뭘 그런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해도 돼.” 


K의 말에, 한소희 역시 긴장이 풀렸다. 


“솔직히 조금 걱정됐어요. 혹시라도, 내가 수업을 맡게 되면 어떻게 하지…. 평소에 안 나가던, 새벽 예배까지 나갔다니까요.” 


“걱정도 팔자다, 소희 선생님.”


K는 한소희의 한쪽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제가 소심한 성격이라니까요.” 


한소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소희는 일단 안심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면 될 일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K 교사가 퇴원을 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K 교사는 퇴원하지 않았다. 한소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참관 수업을 맞이했다. 과학실의 보조교사 역할을 맡았던, 한소희가 교육감이 참관하는 수업에서 홀로 서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모든 책임을 한소희가 짊어져야 했다. K 교사는 참관 수업 일정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퇴원을 했다. 당일 오후가 돼서야, 학교에 들른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K 교사가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아무도 나서서 한소희를 두둔해주는 교사는 없었다. 전후 맥락을 모르는 다른 교사들은 아마도 K 교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소희가 책임지고 수업을 진행해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교감 선생님의 혹독한 비난이 쏟아져 내릴 때, 한소희를 감싸준 K 교사였다. K 교사의 행동을 지켜본 다른 교사들은 지레짐작 판단했을 것이다. 신입 기간제 교사의 명백한 실수라고. 



“그날 사건에 대해, K 교사와 따로 이야기해보셨나요?” 김도훈이 한소희에게 물었다.


“네, 아주 짧게 대화를 나눴어요.” 


“K 교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미안하다고 했어요. 몸이 계속 아파서, 도저히 퇴원할 수가 없었다고 했죠. 상황이 이렇게 될지 몰랐다면서, 이해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자매님의 반응은요?” 


“그래도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 말을 할 때는 저도 흥분한 상태라 예민한 말투였어요.”


“K 교사 자기 잘못을 인정하던가요?” 


“아니요. 제가 공격적으로 말하니까, K 선생님도 당황하셨나 봐요. 갑자기 태도를 바꾸시더라고요.” 


“어떻게요?”


“그날 소희 선생님이 문자로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푹 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쉬다 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오히려 저한테 따지시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할 말을 잃었어요. 대화가 중단됐죠.”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셨어요?”


“아니요.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떤 심정이었는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려웠던 것 같아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상황은 바꿀 수 없잖아요. 나는 기간제 교사이고, 그분은 정교사이고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내 잘못 아니라고 말할 자신까지는 없었어요.”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


한소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며,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고자 했다.


김도훈은 한소희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생각하기를 바랐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진실을 말하기 원했다.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어요. 제가 조금 더 강하게 말했다면, K 선생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선생님들이 저를 이상하게 봤을 거예요. 그런 상황을 감당할 힘이 저한테 없거든요. 저는 그냥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 조용히 지내고 싶거든요.” 


그녀가 진실을 말했다. 김도훈은 그녀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의 문이 비스듬히 열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두렵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제가 살짝 이상하지 않나요? 말투도 어눌하고, 걷는 모습도 조금 이상하고. 목사님은 제가 상담실을 들어올 때, 제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셨나요?” 


그 순간이었다. 비디오테이프가 빠른 속도로 뒤로 감기듯이, 한소희가 상담실에 처음 들어오는 장면이 김도훈의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한소희는 미세하게 절뚝거렸다. 상담실 입구와 상담실 내부까지의 거리는 짧았다. 게다가, 내담자를 안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김도훈은 한소희보다 앞서 걸어야 했다. 한소희가 걷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상담실에 들어선 그녀가 의자에 앉기까지였다. 굳이 걸음걸이를 세어본다면, 세네 발자국이었다.  


한소희의 말투 역시 느리고 차분했다. 가끔 복잡한 단어를 말할 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상담과 관련해서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에 김도훈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상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소희가 자신의 말투와 걸음걸이를 상담실 테이블에 올려놓는 순간, 그녀의 말투와 걸음걸이는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갈 중요한 단서가 된 것이다. 열리다 멈춰버린, 비밀의 문을 그녀가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한소희가 9살이었던, 3월의 주말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가까운 놀이공원에 갈 예정이었다. 마음이 들뜬 한소희는 부모가 준비하는 동안, 집 안에 머무를 수 없었다. 


“엄마, 나 먼저 나가서 기다릴게.” 


“안돼, 같이 나가. 조금만 기다려.” 


“나 잠깐 슈퍼에서 살 거 있단 말이야.” 


“안 된다고. 어차피 우리도 슈퍼 잠깐 갈 거야. 같이 나가.” 


“싫어. 나 혼자 갔다 올 거야.” 


한소희가 신발을 신고, 현관 밖으로 나가는 동안 엄마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두 손가락에 로션을 잔뜩 묻혀 얼굴에 바르면서, 현관 밖을 나가는 한소희에게 소리쳤다. 


“너 차 조심해야 돼! 앞에 잘 보고 다녀.”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던, 그녀의 아빠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니, 소희 혼자 나가게 내버려 뒀어?” 


“몰라, 혼자 간 데. 바로 집 앞인데, 뭐.” 


“걱정인데….”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나가봐. 당신은 옷만 입으면 되잖아.” 


그녀의 아버지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딸을 따라나섰다. 


한소희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을 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한소희는 까치발을 하고, 집집 사이에 좁은 골목 틈새로 연기가 나는 곳을 찾았다. 그녀의 눈에 펼쳐진 것은 봄날의 맑은 하늘뿐이었다. 연기가 나는 곳은 없었다. 


한소희는 손바닥으로 담장을 짚어가며,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그녀가 코너를 돌아, 슈퍼 앞 사거리에 들어섰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하얀색 승합차가 그녀를 들이박은 것이다. 그녀의 몸이 공중에 떴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응급환자를 싣고 가던 구급차가 좁은 골목길을 과도한 속도로 달리다, 한소희를 치어 버린 것이다. 구급 대원이 부리나케 차에서 내려, 한소희를 살폈다.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무릎은 반대쪽으로 꺾여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중대한 상황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구급 대원은 한소희를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멀리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한소희의 아버지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슈퍼의 사장이 덜덜 떨리는 손짓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한소희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멘트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잠시 기절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았어요. 일 년 내내 병원에 살다시피 했죠. 어렸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마부터 뒤통수를 가로지르는 수술 자국이 생겼거든요. 지금은 머리카락으로 가릴 수 있는데, 당시에는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카락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조금만 신중하셨더라면, 머리카락이 자란 다음에 학교에 보내셨을 텐데, 저희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아셨나 봐요. 머리에 수술 자국이 선명한데, 바로 학교에 갔어요.”


김도훈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이유, 그녀의 얼굴이 유독 하얗고 창백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파란 코트 역시, 그녀의 걸음걸이를 조금이라도 숨겨볼 의도였던 것이다. 


9살의 교통사고 이후, 한소희가 받은 고통을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김도훈의 목이 메였다. 그가 입술을 떼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는 순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한소희도 함께 울었다. 


“그날 차라리 죽었어야 했나 봐요.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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