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디 갔어? 찾아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혀가 목구멍을 반쯤 막은 목소리였다. 한 손에는 술병이 흔들리고, 한 손은 공중에서 흔들렸다. 확률은 반반이다. 술병이 벽으로 날아갈까, 아니면 공중에서 흔들리는 손이 얼굴로 날아들까.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어렴풋이 7살이다. 엄마는 동네에 없다. 짐을 싸서 나갔다. 한 번 나가면 기약이 없다. 어리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도 살아야 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대문 앞에 섰다. 대문에 귀를 대고 인기척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하염없이 동네를 돈다. 아버지가 잠들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 조용히 누었다. 단칸방이라도 멀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엄마는 웬만하면 자식을 챙겨나갔다. 이번에는 급하게 도망을 친 거다. 도망을 칠 때는 신속해야 했다. 낌새를 알아차리는 날에는 죽도록 맞았다. 어설프게 도망치다 길거리에서 몇 번 밟히고 나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엄마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아버지의 일정을 따라, 아버지가 없는 날 도망을 친다.

       도망쳐서 지낸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몇 번 따라 도망을 쳤지만, 편하게 잠을 잔 적은 없었다.

       급하게 집을 나온 어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우연히 상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한눈에 봐도 딱하게 보이는 어머니에게 목사님이 호의를 베풀었다. 평일에 사람이 없으니 교회에 머물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교회 강대상에 이불을 펴고 그곳에서 우리와 지냈다. 하루 종일 상가 안에서 지내는 게 지루하고 불편했다. 어머니가 교회 구석에서 하루 종일 울면서 기도하는 동안, 나와 여동생은 나름대로 시간을 때워야 했다. 며칠 뒤, 갑자기 어머니가 짐을 챙겨 나가자고 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7살 이전의 기억이지만, 생생했다. 다 커서 어머니에게 그날 왜 갑자기 도망치듯 나갔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지나가듯 말했다. “그럴 일이 있었어.”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도 교회 목사님이 불안했을 것이다. 낌새를 알아챈 어머니가 급하게 도망을 친 것이다.

       파출부로 일하는 조건으로 남의 집에서 같이 산 적도 있다. 파출부라는 말이 낯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파출부는 지금으로 치면, 가사도우미다. 남의 집 살림을 거들어주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어머니가 빨래하면 그 옆에서 작은 손으로 빨래를 도왔고, 청소를 하면 그 옆에서 청소를 도왔다. 그러다, 돈이 모이면 방 하나 있는 작은 집을 월세로 얻었다. 좁은 집 안에서 알콩달콩 살면서, 어머니는 미소를 되찾았다. 몸은 고되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마음은 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금방 깨졌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사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냈고,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었다.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다시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선택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새로 얻은 집에서 함께 살면 되는 것이었다.

       기도원으로 도망쳤던 기억도 난다. 조금 과장하면, 나는 전국에 유명한 기도원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어린 내 기억에는 기도원 숙소 역시 빈부격차가 있는 곳이었다.

       수도꼭지가 꽁꽁 얼어버릴 지경으로 추운 겨울이었다. 돈이 없는 어머니는 집회 장소에 자리를 폈다. 강당처럼 개방된 집회 장소는 외풍이 심해 지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 손을 잡고 기도원 숙소를 여기저기 노크했다. 마음 약한 사람이 문을 열어주면, 사정해서 그 방에서 며칠 묵었다.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나는 자존심 상할 일이 많았다. 방구석에 혼자 앉아 있으면, 그 집 아이가 내게 말을 건다. 금방 친해져서 친구처럼 논다. 어른들이 서로 대화하느라 정신없을 때, 아이들은 서로 치대고 싸운다. 미세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고집을 부리다가도 그 아이가 한 마디 하면 꿀 벙어리가 되었다. “너 자꾸 그러면 나가라고 한다. 여기 우리 숙소잖아.”

       나는 조용히 그 아이의 비위를 맞추며 그 아이의 방식대로 놀았다. 그 집이 일정을 마치고 숙소를 정리하고 나갈 때, 우리는 또 다른 숙소를 찾아가 노크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지냈다.

       아버지는 구석진 산골에 있는 기도원 역시 귀신같이 찾아냈다. 예배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집회와 집회 사이의 공백이 제법 길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기도원 입구 쪽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사색이 되었다. 내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다가와 집으로 가자고 설득을 했을 것이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지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기도원을 나가려고 했다. 아버지는 화를 못 이겼는지, 어머니 뺨을 때렸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아버지는 집회 장소 한가운데서 어머니를 사정없이 때리고, 머리채를 붙잡고 개처럼 끌고 나갔다. 나와 동생은 엉엉 울면서, 끌려가는 어머니를 따라 나갔다. 혈기로 가득한 아버지의 시뻘건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숨을 쉴 때, 진한 술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버림받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있었을 것이다. 죽자 살자 어머니를 찾아다닌 이유가 아니었을까. 세월이 지나도 아버지와 이 문제로 마주 앉아 대화하지 않았다. 추측할 뿐이다. 아내와 자식이 없는 세상은 아버지에게 지옥이었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서투름이 뒤엉켜 아버지는 자기 방식대로 가족을 사랑한 것이다. 아버지도 상처 주기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아버지를 보면, 그 당시 아버지의 고통이 전해진다. 이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 당시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손에 날아든 새를 사랑하다 집착한 나머지 다시 하늘로 날아갈까 두려웠던 것이다. 손바닥 새가 날아갈 기미를 보이자, 아버지는 손으로 새를 움켜쥔 것이다. 푸드득 날갯짓을 하니까 두려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더 세게 움켜쥔다. 새가 더 이상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새가 죽었을까 두려워 손을 펴면 새는 미세하게 숨을 쉰다. 새를 살리고 싶다. 어루만져 돌보기 시작한다. 새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지저귀고 날갯짓을 하면 새가 떠나갈까 다시 불안해진다. 또다시 손에 힘을 주고 새를 움켜쥔다.

       아버지는 행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갑자기 떠나버린 가족을 찾아 아버지는 사방을 헤맸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길 잃은 아이처럼 가족을 찾아다니며 울었을지 모른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족을 만나면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몰라,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항상 나는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일상에도 나는 가끔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두려움을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이다’라는 느낌이 들면, 그날 아버지가 찾아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머니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어머니도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내가 함께 가지 않으면 어머니는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어머니가 말없이 나간 날, 세상이 꺼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슬펐다. 어머니가 나가면 나는 아버지의 매질을 당해야 했다.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아내를 잃은 날, 나도 엄마를 잃었으니까.

            아버지의 술 주정에 어머니를 찾아 동네를 하염없이 걸었다. 외롭고 슬펐다. 하늘을 보며 많이 울었다. 어머니를 소리 내어 부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동네에 없다. 목이 쉬도록 불러도, 어머니가 듣지 못할 것을 일곱 살 꼬마도 알았다.

       세월이 흘렀다. 다 지난 일이다. 까마득한 기억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걷는다. 외롭고 슬프면, 나도 모르게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나는 더 이상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어머니 대신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안다. 목이 쉬도록 부르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를 때리지 않으신다.

       길 잃은 아이처럼 동네를 헤매던 그때나,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신다.

돌봄학교

이제 자신을 돌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