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한테 벗어나고 싶어요. 엄마나 아내나 다 똑같아요.  바라는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L은 서른여덟, 결혼 9년 차, 일곱 살 아들의 아빠다. 그는 억지로 상담실에 끌려 온 사람 같았다. 침묵하는 그를 대신해서 아내가 상담실에 온 이유를 말했다.

        “남편은 이혼하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며, 진짜 이혼을 안 할 거라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정말 이혼하자고 하는 말이래요.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자꾸 듣다보니까 이 남자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이혼하자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떤 문제로 싸우든지 제가 먼저 사과해요.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하면, 그럴 수는 없다고 애원하게 되거든요. 이혼은 안 돼요. 애들한테 엄마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남편은 계속 침묵했다.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저는 사실 사랑받고 싶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계속 똑같은 말을 했죠. ‘나 좀 사랑해줘라. 왜 이렇게 무시하냐?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그냥 사랑해주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다 제 잘못이라고 하죠. 지금도 보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잖아요.”

 

        긴 침묵을 지키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노력을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서로 최선을 다했죠. 아내는 전혀 이해를 못하더군요. 부질없는 노력을 한 거죠. 그래서 어느 순간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만족을 모르네. 그만하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아이 양육권이 가장 고민이에요. 제가 키울 자신은 없고, 이 여자에게 맡길 수는 없고. 그 문제만 해결되면 이 여자랑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이혼하자는 말은 진심이에요. 다 끝났어요. 더 이상 아내에게 미련이 없어요.”

 

        남편에게 다른 여자는 없었다. 그는 단지 여자들에게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어머니와 하는 짓이 똑같아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나 좀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거든요. 여자들은 왜 그럴까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봐요. 그런데 인생이 어떻게 자기 뜻대로만 되겠어요. 그렇게 안 되는 게 정상이에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지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장모님에게 언제 전화해라, 전화해서 이런 말을 해라’까지 시켜요. 제가 전화를 걸고 싶어야 걸죠. 그걸 억지로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하도 전화를 안 하니까 부탁한 거잖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안 하는 거잖아.”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뭘 잘못했어? 왜 전화를 안 하는데?”

“당신이 시키니까 싫어서. 가만 내버려둬 봐.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내가 한 달 넘게 기다려봤잖아. 당신은 내가 말 안하면 안 하는 사람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내가 말하잖아. 이렇게 왜 사냐고. 다 끝났으니까 그만하자.”

“거 봐. 또 자기가 불리하면 이혼하지. 나는 이혼 안 해.”

“이렇게 살 바에 이혼하는 게 낫지 않냐? 왜 같이 살아? 서로 피곤하게!”

 

        그의 부모님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했다. 아들이 먹는 음식, 읽는 책 등 모든 것을 챙겼다.

        어느 날, 그가 친구에게 빌린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확 낚아챘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안전하게 검열을 통과한 만화책은 다시 되돌려줬지만 그렇지 못한 책은 주지 않았다.

        그 검열은 단지 만화책에만 머물지 않았다. 만화책을 빌려준 친구와 다시는 함께 놀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 놀러온 그의 친구들을 유심히 살폈다. 친구의 말투에 욕이나 거친 표현이 섞이면 함께 놀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마리 양처럼 순했던 그가 어머니에게 반항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다. 그가 학교마치고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공부를 시켰다.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그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책상 뒤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함께 있어야 했다. 그가 피곤해 책상에 엎드려 자면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얼음물을 떠다 주며 마시고 다시 공부하라고 했다. 평소에는 12시, 시험 기간 3주 전부터는 새벽 2시까지 잘 수 없었다.

        성적은 상위권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공부하기 싫다고 말대꾸를 했다. 어머니는 무시했다. 혼자 공부할 수 있을 때까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성적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공부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잔소리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강제에 의해서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그는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는 지방에서 공부해서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다. 자취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유는 일시적이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웠다.  일찍 도서관에 가라고 하거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으라고 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청소와 살림을 해놓고 갔다. 어머니가 집에 오는 토요일 저녁은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일주일에 밥 한 끼는 같이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지겨웠어요, 정말. 어머니 그늘 아래 산다는 것이. 왜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지. 처음에는 저를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제가 부모가 되어 보니까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병적인 집착이죠. 최악의 환경에서 자란 거예요. 뭐 하나 제 뜻대로 된 게 없거든요. 제가 결혼해서도 이렇게 살 줄 몰랐어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두 여자가 만든 감옥에 갇혀버린 거죠.

        제 탓도 있겠죠. 사람은 자기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어머니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머니 같은 여자에게 끌려서 결혼하게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벗어나자마자 이 여자에게 갇혀버리다니! 제 실수니까 제가 바로 잡아야죠. 정말 이혼하려고요. 더 이상 저 아닌 모습으로 살 수 없어요.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니까.”

 

***

 

        두 사람이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 엄마는 사막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아무도 그녀에게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당히 사막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엄마는 결심했다. 아들에게는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꼭 전수해주겠다고.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사막을 지나던 어느 날, 거대한 모래 폭풍이 불어왔다. 엄마는 아들을 품에 안았고, 두 사람은 무사했다. 그날 이후, 아들은 바람이 불면 엄마 품에 안겨 바람을 피했다. 그 품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여행은 길었다. 엄마는 점점 작아졌고, 아들은 점점 커졌다. 모래 폭풍이 불어와도 아들은 더 이상 엄마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 품이 너무 작아서 모래 폭풍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조용히 받아들인 현실이었다.

        사막의 한 기점에 다다르자 이정표가 보였다.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들은 홀가분하게 자기 길을 갔다. 그러나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아들이 떠난 길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 모래 폭풍이 불자 엄마는 눈앞에서 아들을 놓쳐버렸다.

        소년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외로웠다. 반대편에서 빨간색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 걸어왔다. 자신보다 몸이 작은 소녀였다. 그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다시 모래 폭풍이 불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소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외투로 자기 몸을 가린다. 모래 폭풍 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 품에 안겨서, 성장한 후에는 자기 외투 속에서 모래 폭풍을 피했다. 소년은 말없는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한 것이다.

 

        ‘같이 걷기는 하지만,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소녀는 함께 걸으려면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막은 손잡고 수다를 떨면서 걷을 수 없는 곳이었다. 소년의 말수가 줄었다. 소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소년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소녀에게 말했다. 혼자 가라고. 나는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소년은 가방에서 텐트를 꺼내 치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소녀는 나오라고, 계속 가야한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소녀는 텐트 밖에서 소년을 기다렸다. 텐트 안에서 소년은 생각했다.

 

        ‘사막을 벗어날 방법은 없어. 사막을 건너지도 못할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기 머무는 것이 낫다.’

        모래 바람 소리는 거셌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소녀의 울음소리가 묻혔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그의 삶에서 빼앗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파괴된다.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막을 끝까지 걸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사막 한 가운데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쫓는다. 머지않아 그는 자기 인생을 망쳐버리고 만다. 파멸은 사막 한 가운데 안주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 파멸의 시작이다.

        한 사람이 도박, 중독, 외도에 빠지는 이유를 좁게 보면 각각  다르겠지만 넓게 보면 같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과정을 생략한 채,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지려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고통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사막의 여정을 생략하고, 사막의 끝에 놓인 오아시스에 가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논스톱 자기부상 열차를 타고 오아시스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 열차에서 내려 오아시스에 몸을 던진다. 두 손으로 에메랄드빛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지만 입 속으로 들어온 것은 시원한 물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모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본 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신기루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남편과 아내이다. 자기 희생 없이 가정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사막을 걷듯 부부는 서로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부부가 의외로 많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책임지지 않고, 책임지게 만든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부모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 때문이야.”

 

        둘 중 한 문장에라도 동의한 사람은 논스톱 자기 부상 열차에 몸을 싣는 사람이다. 신기루로 직행하는 열차를 탄 것이다. 지금 당장 내리지 않으면 나중에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일단 내려야 한다.

        L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동일시하면서 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전가시켰다.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열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리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내리면,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

        더 이상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모든 책임의 무게를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무겁고 힘든 삶이다. 그러나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이다. 아무도 대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텐트 밖에서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남편의 노력과 상관없이 자기 행복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남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의 사랑으로 자기 존재감을 결정하려는 사람은 늘 불안정하다. 굶주린 사람처럼 허기지다. 남편과 다른 칸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열차에서 내려서 당당하게 사막을 걸어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라.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스스로 매우기 시작하라. 남편의 사랑은 덤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는 것이지, 남편의 사랑으로 빈자리 전부를 채울 수는 없다.

        다시 사막으로 가자. 기약 없는 여정을 시작하자.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자. 사막을 끝까지 걸은 사람만이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실 자격이 있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라. 보상은 확실하다. 목이 타는 만큼 오아시스의 물이 달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