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제게 아빠 같은 존재예요.” 

 

“그럼, 아빠라고 생각해.”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조금 걱정스럽게 들려요. 목사님은 목사님이지, 아버지가 아니거든요. 

 

목사님뿐만 아니에요. 교회 안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밀착된 관계가 있어요. “엄마 리더, 아빠 리더”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거예요. 교회 리더를 부모처럼 생각한다면, 너무 밀착되신 거예요. 

 

누군가는 묻겠죠.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디모데전서 1:2)이라고 부르지 않았나요? 맞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바울이라는 뜻인가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누가복음 3:22).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신 말씀이에요. 같은 논리라면, 자칫 잘못하다 하나님도 되실 수 있어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예요.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다고, “아빠, 엄마”라는 호칭을 붙여버리면, 관계는 점점 무거워져요. 

 

지금 가만히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보세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다 서로 상처받고 깨져버린 관계를 생각해보세요. 아마, 왼손이 필요할 거예요. 

 

결핍 때문에 그래요. 아빠 역할을 하고 싶은 사람이나,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나 그 마음 안에 결핍이 있어요. 결핍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면, 상처만 남아요. 

 

예수님을 바라보셔야 해요.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적절히 거리를 두세요. 최소한 그 틈에 예수님이 서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예수님이 두 팔을 벌려 당신을 안아주실 만큼 넉넉한 공간이어야 해요. 

 

자녀라고 여길 만큼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당신이라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보다, 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게 나아요. 

 

걱정되고, 생각나고, 잘 지내는지 묻고 싶고 그러죠. 그럴 때마다 연락하고 찾아서 만나지 마시고, 진심을 다해 기도해 주세요. 내가 백 번을 찾아가 위로해 주는 것보다, 예수님이 한 번 찾아가 만나주시는 게 나아요. 

 

사랑이 없어 받는 고통만큼, 사랑해서 받는 고통도 심해요. 서로 답답하다고, 예수님을 밀쳐내고 사랑하시면 안 돼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세요.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예수님이 아세요. 상처로 아파하시는 당신의 마음도 아시고요.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물끄러미 마주 보지 마세요.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예수님이 필요해요.

 

아빠라고, 

천 번을 불러도 안전한 존재,

오직 하나님뿐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