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마음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하나님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다. 선배 목사님들의 책과 간증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우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커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 교회와 목사님과 관련된 책을 모조리 읽었다. 교회 홈페이지에 가서 음성으로 된 설교를 전부 다운로드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또 들었다. 말투까지 흉내 낼 정도였다.

 

     원리는 간단했다.

     “간절히 믿고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진다.”

 

     나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하루 종일 그 원리를 되뇌었다. 종이 위에 하루 백 번씩 똑같은 문장을 썼다. 진심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 말을 한 목사님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건물을 짓기 전에, 간증을 들려줬다. 자기 교회를 짓기 전에,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를 찾아가 줄자로 건물 사이즈를 쟀다.

     교회 사이즈를 적은 종이를 손에 쥐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이 건물보다 큰 교회를 짓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게 해주셨다.

     그 간증은 나의 말초 신경을 자극했다. 나는 곧바로 그 교회를 찾아가 걸음으로 치수를 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곱 바퀴를 돌았다. 내가 이 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랐다.

     당시 그 교회와 목사님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를 것이고, 지는 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내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앞으로 내가 목회할 교회의 규모를 예상했다. 엄청난 수치의 교회 규모를 수첩, 책상, 거울, 보이는 곳마다 붙였다. 인생이 힘들고 답답할수록, 더욱 간절히 믿었다. 현실이 아무리 우울해도, 의심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루어질 것이라 강하게 믿고 행동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덩달아 박자를 맞춰줬다.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격려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너는 나중에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 같아.”

“자네 목소리에는 힘이 있어.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날 거야.”

“사람마다 은사가 다양한데, 내가 보기에 너는 대형교회를 이끌 수 있는 은사를 가진 것 같아.”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즐겼다. 가난과 상처로 고통받았던 나에게 그보다 듣기 좋은 말은 없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원하는 대로, 이끄는 대로 모든 게 순조로웠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던 시기였다.

     전도사로 사역을 처음 시작할 무렵, 내 신념에 균열이 일어났다. 상상 속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당당하게 설교하는데, 현실에 나는 고작 몇 명을 앉혀놓고 설교했다. 현실과 이상의 심각한 격차를 느낀 것이다.

     암울한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 현실이 아닌 미래를 상상하며 버틴 것이다. 나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언젠가 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주위의 기대는 갈수록 높아졌고, 나는 엄청난 노력으로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지만, 그 당시에 나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 나 잘난 맛에 살았다.

     반복되는 실패로 절망하면서 나는 서서히 꿈을 잃어갔다. 그릇이 안되는 놈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던 무렵, 내 인생은 밑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실패의 밑바닥에서 나 자신을 직면했다. 내 안에 뜨거운 욕망이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가난에 대한 설움, 상처로 인한 고통을 만회하기 위한 욕망의 프로세스가 나를 집어삼킨 것을 오래도록 몰랐다.

     두 번 다시 욕망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싶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내 인생을 바치기로 했다. 내 인생은 어찌되고 상관없었다. 나는 오직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무모한 도전을 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처럼, 목회를 새로 시작했다. 두려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내가 안쓰럽고 보였는지, 하나님은 돕는 사람을 보내셨고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로 느껴졌다. 욕망 따위 들어설 틈이 없어 보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성숙해졌다고 믿었다. 두 번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우울한 감정에 시달렸다. 감기처럼 찾아온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나를 짓눌렀다.

 

그 무렵 내가 마음속으로 반복했던 말이 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누가 내 마음을 알겠어.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한 명도 없어.”

 

     어린아이 같은 투정에는 내 안에 욕망이 보란 듯이 투영되어 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내 노력을 인정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그 한 사람마저 눈에 보이지 않자 분노한 것이다.

     추악한 욕망과 다시 마주한 나는 당황했다. 수만 명에서 한 사람으로 내 꿈은 바짝 쪼그라들었지만, 욕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절망했다. ‘한 사람에 대한 집착마저 포기한다면, 나는 무슨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가슴을 치며 울었다.

 

     긴 침묵을 깨고, 예수님의 위로가 전해졌다.

     “너를 위해 글을 쓰렴. 너 역시 상처받은 사람이란다. 그리고, 나를 위해 쓰렴. 나에게 기쁨을 주렴. 나는 네 글이 정말로 좋단다.”

 

     욕망의 프로세스는 여전히 작동한다. 공장처럼 쉬지 않고 돌아간다. 멈춤 버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욕망 자체를 멈출 수 없다면, 욕망의 원료를 바꿔야 한다. 결핍의 욕망은 악취와 매연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은혜의 욕망은 악취도, 매연도, 재해도 없다. 은혜의 욕망은 향기로 가득하다.

 

나는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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