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무서워요. 언젠가는 용서해주시겠지만, 대가는 치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성경을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잖아요. 하나님은 곧바로 용서해주시지 않으세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하나님이 용서해주시죠. 

혹시 근거가 될만한 성경 구절이 있나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잖아요. 그리고, 저주를 받아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어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용서해주시지 않으셨잖아요. 

다윗도 그래요. 밧세바와 간음한 다윗은 곧바로 죄를 회개했어요. 하나님은 결국 용서해주셨지만, 아이를 죽이셨잖아요. 

용서는 의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가를 치르는 게 무서워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릇이 작거든요. 

그렇군요. 당신의 말을 이해했어요. 잠시 내 생각을 말해도 될까요? 듣다가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제 이야기를 끊고 질문하셔도 돼요. 

아담과 하와는 죄에 대가를 치르지 않았어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 죄에 대한 대가라면 너무 가벼워요.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에,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면, 선악과를 먹은 즉시 둘 다 죽어야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는대로 두 사람은 죽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그 와중에 은혜를 베푸셨어요. 수치심을 느끼는 아담과 하와에게 무화과 나뭇잎 대신에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어요. 

죄에 대한 대가는 아담과 하와가 치른 게 아니에요. 가죽옷을 위해 대신 희생된 짐승이 치른 거죠. 가죽을 벗기려면, 그 동물이 죽잖아요. 아담과 하와를 대신 죽은 존재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들을 대신해 죽은 짐승 덕분에, 아담과 하와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수치심이 가려졌어요. 

그들이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나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두 사람에게 기회를 주신 거예요. 회개하고 돌아올 시간을 주신 거죠. 

아담에게 부여된 노동의 수고, 하와에게 부여된 출산의 고통, 저주라고 볼 수만은 없어요. 저주받았지만, 저주받은 게 아니에요. 

성경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을 인정하거든요. 타락 이전에도 아담은 일을 했어요. 하나님도 일하시잖아요. 노동은 그 자체로 저주가 아니에요. 

출산 역시 마찬가지예요. 아이를 낳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출산한 여자는 아이의 존재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모두 잊어요. 고통보다는 기쁨이 큰 거죠. 

어쨌든, 아담과 하와는 실패해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 없었거든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내시죠. 

그렇다면, 죄값은 누가 치르는 건가요? 

하나님이 뱀을 저주하시는 장면에서 죄값을 대신 치러줄 존재를 알 수 있어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세기 3:15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단수로 쓰였어요. 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 한 사람이 누굴까요? 예수님이세요. 

사탄이 죽음으로 예수님을 공격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결국 승리하신다는 말씀이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는 죄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요. 

당신이 지은 죄, 당신이 책임질 필요 없어요. 예수님이 당신 대신 죄값을 치르셨어요. 죄를 말하고 싶다면, 은혜도 말하세요. 

다윗 역시 마찬가지예요. 다윗이 저지른 죄는 사형감이죠. 변명의 여지조차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셨어요. 

자녀를 잃은 다윗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죄책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다고, 다윗이 자기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윗은 슬픔을 느낄 뿐, 자기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어요.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다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만, 부모가 대신 죽어도 자녀는 살아나지 않아요. 

하나님은 슬픔에 잠긴 다윗에게 솔로몬을 아들로 주세요. 솔로몬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았죠. 

매정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불륜을 통해 낳은 자식이 얼마나 잘 되나 보자. 언젠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다. 그 피는 저주 받은 피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심한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그리 모진 말도 아니죠.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 예상과 달라요. 그 집안에서 누가 태어났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마태복음에서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에, 솔로몬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밧세바도 기록되어 있어요.  

누가복음에는 솔로몬의 이름 대신, 나단이라는 사람이 기록되어 있는데, 나단 역시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죠. 

불륜의 당사자가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이 되었어요. 불륜으로 낳은 자식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신 거죠.  

솔직히 말하면, 죄에 대한 책임은 계속 뒤로 미뤄진 거예요.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예수님이 전부 짊어지고 죽으신 거죠.  

“내가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약속하셨거든요. 심판이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예수님이 오신 거죠.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님이 오셨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단 번에 죽으셨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 은혜의 길이 열렸죠.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요. 죄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겠죠. 하지만, 죄에 대한 대가는 당신이 치를 필요 없어요. 이미 예수님이 모든 값을 치르셨어요. 

“너는 죄를 지었다. 반드시 그 값을 치를 것이다. 죄값을 치러야 용서받을 수 있다.”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말을 혼자 듣고 가만히 계시지 마세요. 예수님께 나아가서 정말이냐고 물어보세요. 그리고, 진실을 들으세요.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사랑하는 딸, 많이 무서웠구나.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단다. 내가 너를 대신해 모든 죄값을 치렀단다.” 

당신을 억지로 위로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에게 진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감정에 휘둘리지 마세요.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세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은 은혜의 사람입니다.  

걱정이 아닌 

은혜로 살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