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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었다. 

 

아버지를 제외한 온 가족이 모였다. 아버지는 하루 근무, 하루 휴식의 일정을 따라 사셨다. 명절 당일 아버지는 일을 하러 나가시고 없었다. 

 

네 살짜리 조카가 쉬지 않고 애교를 부렸다. 손뼉을 치면서 호응을 해주니까,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여동생이 결혼해서, 4년 만에 낳은 아이였다.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랑스러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당황했다. 

 

“엄마, 지금 울어?” 

 

어머니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아니야. 울기는 누가 울어.”

 

“엄마, 왜 그래?”

 

여동생이 말했다. 

 

어머니는 눈물이 억제가 되지 않는지,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너희들 어릴 때는 엄마가 여유가 없었어. 그래서, 너무 미안해. 이렇게 예쁘게 잘 키울 수 있었는데, 그러지를 못했어.” 

 

어머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는, 어머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엄마는 최선 다했어. 어떻게 더 잘 키워. 그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뎠잖아. 울지 마세요, 엄마.”  

 

어머니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는, 농담 섞인 말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정도면 잘 크지 않았어? 

 

어머니가 웃음을 되찾았다. 이제 됐다 싶어,  한시름 놓는데, 갑자기 여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너는 왜 울어?” 

 

말 그대로였다.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도대체 너까지 왜 그러냐’는 심정이었다. 

 

여동생은 오랜 시간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아빠가 너무 했었어.”

 

나는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밤새도록 나를 때렸다.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나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다음 날, 술에서 깬 아버지는 아들이 의식을 되찾지 못한 것에 놀랐을 것이다. 부모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담요로 나를 둘둘 말아 방구석에 내버려 뒀다. 

 

여동생은 혼자 학교 가는 길이 무서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살아있는 오빠를 만나는 것이었다. 

 

여동생은 울면서 학교에 갔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오빠는 담요에 말려진 그대로였다. 여동생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핏기가 사라진 오빠의 발바닥이었다. 

 

동생은 어린 마음에 오빠의 발바닥을 만져보려 했다. 오빠가 살아있다면 움직일 것이라 믿었다. 

 

오빠에게 다가가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안 돼! 건드리지 마!” 

 

동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빠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 기억에 세 번이야. 오빠가 담요에 말려있었던 기억 말이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여동생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영화처럼 그 장면이 재생되었다. 

 

소름이 끼쳤다. 

 

여동생이 살아오는 동안, 문득문득 그 장면이 생각났다면, 괴로웠을 것이다. 동생을 위로하고 싶었다. 

 

“오빠가 미안해.”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동생이 나에 관한 아픈 기억으로 고통받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의식적으로 동생에게 아버지를 이해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아빠가 되어보니까, 아버지 마음을 조금을 알 것 같더라.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힘들면, 예수님을 의지하면 되잖아. 아버지는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동생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동생의 복잡한 심정이 전해졌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겹치고 얽혀 있었다. 

 

내 진심이 동생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아빠 이해해. 용서하고 말고, 그런 마음조차 없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아빠를 용서하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겠어.” 

 

동생이 내 생각까지 뜯어고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복잡한 심정을 추스르는 과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동생은 말했다. 

 

“오빠, 나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나는 동생 곁으로 다가가서,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동생을 위로해주고 나서, 이제 정말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감정 소모가 심해, 피곤했다. 길게 한숨을 내뱉고 내 자리로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그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이 울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 어머니, 그리고 동생은 기억의 일부를 공유한 채로 살아왔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빠가 어릴 적 겪었던 일을 갑작스럽게 전해 들은 자녀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순서대로 끌어안았다.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

 

“아빠, 할아버지가 그랬단 말이야?” 나 이제 할아버지랑 안 놀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들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야. 다 옛날이야기야. 지금 할아버지 정말 착하시잖아.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아들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는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아빠를 사랑했어. 아빠가 자세히 기억을 못 하는 거야.”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둘째가 과자를 먹으면서 말했다. 

 

“나는 원래 할아버지 좋았는데…. 오빠는?” 

 

아들도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나도 사실, 할아버지 좋아.” 

 

엄마 품에 안겨 잠에 든 막내도 깨어있었다면, 언니와 오빠를 따라 말했을 것이다. 

 

“나도….” 

 

#

 

“아빠하고 엄마가 너희 애들 데리고 놀아줄 테니까, 며느리랑 둘이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 

 

휴일 아침, 아버지가 전화로 말했다. 

 

아이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 아이들은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간다고 했다. 

 

일찌감치 아이들을 맡기고, 나와 아내는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둘은 풋풋한 연인처럼, 마음껏 데이트를 즐겼다. 시간이 금세 지나고, 저녁이 되었다.

 

놀이공원 입구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멀찌감치, 부모님의 손을 잡고 출구를 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서로 먼저 말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진짜 재미있었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사전에 약속을 한 것이다. 사람이 북적여서, 한자리에 다 같이 앉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들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랑 앉을래. 엄마, 아빠는 앉고 싶은데 앉아.” 

 

나는 태연하게, “어, 그래.”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에서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 아버지를 좋아해 주는 아들에게 고마웠던 것이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 바로 옆에 아버지와 아들이 앉았다. 서로의 테이블 사이에, 얇은 간이 벽이 놓여 있었다. 일어서면 얼굴이 보이고, 앉으면 안 보이는 낮은 높이였다. 서로 주고받는 말소리가 간이 벽 너머로 들렸다. 

 

아들이 말했다. 

 

“할아버지, 이거 먹어봐.”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속삭였다. 

 

“여보, 아들이 아버지한테 반말을 해.” 

 

아내는 “그게 뭐?”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혼자 흥분해서, 아내에게 다시 말했다. 

 

“서로 친해졌나 봐. 친구처럼 반말을 한다고.” 

 

그제서야, 아내가 알아들었는지 검지를 세워서 입술에 갖다 대고 작게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간이 벽에 붙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소리를 엿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가 말하면 아들이 웃었고, 아들이 말하면 아버지가 웃었다. 

 

두 사람은 친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친밀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나에게는 간이 벽 너머의 아버지가 익숙했다.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놓인 간이 벽을 화들짝 빼버리면, 나는 자세를 고쳐앉고 묵묵히 밥을 먹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앉은 테이블에 관심이 없는 척할 것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다. 아들이 부럽고 고마웠다. 

 

아들이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좋다.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줄 때, 나는 생각한다. 

 

“내 아버지, 나 어릴 때, 저리 사랑해주셨겠지. 내가 기억 못 하는 것이지, 아버지는 날 사랑했다.” 

 

아버지가 아들과 나란히 걸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내 뒤에서 딸들을 챙겨 걸어오던 아내가 다가오더니, 신기하다는 듯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쩜, 셋이 걸음걸이가 똑같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랬다. 

 

우리 셋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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