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요. 차라리 제가 없는 게 낫겠죠.”

C는 사십 대 중반의 가장이다. IT 기업 영업 부서에서 일한다. 아내 권유로 상담 받기 시작했다. 그는 13년 동안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린 그는 창백해 보였다. 핏기 없는 입술은 “만사가 귀찮으니 나를 좀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려웠다. 남편에게 상담 받자고 애원했다. 

“남편은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들어갔고, 우린 결혼했죠. 회사 생활도 재미있게 했어요. 밝은 모습으로 퇴근했던 남편이 기억나요. 어느 날부터, 남편이 잠을 설치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짜증을 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는 시간 동안 우울한 기분으로 사는 것 같아요. 

일주일 두세 번은 자기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요. 딸이 아빠 뭐 하냐고 문을 열면 불같이 화를 내요. 좋을 때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 그날은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고 대화하고 그래요.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어서 남편을 관찰했죠.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모르겠더라고요. 남편이 자기 세계로 들어가면 우린 감옥에 갇힌 것 같아요. 걷는 것도 조심하고, TV소리도 줄이고.

이 사람이 얼마 전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요. 제가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멈추지 않아요. 자기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나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유서에 써 놨다고 해요.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하면서.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없으면, 저와 아이들은….”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남편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건어물 가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몸이 아파 집에 누워있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 수입은 대부분 어머니 병원비로 들어갔다. 형, 누나가 있었지만,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는 언제나 몸이 아파 누워있는 엄마 옆을 지켰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가 엄마를 살폈다. 엄마 몸이 뜨거웠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불안했고 무서웠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응급차가 도착했다. 주황색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를 들고나갔다. 엄마를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가게 문을 닫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매일 술에 취해 있었다. 작은 꼬투리 하나 잡히면 그는 아버지에게 사정없이 맞았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학교 마치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았다. 집 문 앞에서 아버지가 곯아떨어지기 기다렸다. 아버지가 잠들면 집에 들어갔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새 학기 시작되면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엄마와 비슷한 이미지의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꼈다. 선생님이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선생님이 보니까, 너는 눈이 초롱초롱해. 이해력도 좋은 것 같고, 집중력도 좋은 것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해보자.”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부했다. 성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다음 학기 전교 1등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학교에서 거는 기대가 컸다. 법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원서 쓰기 전에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 화냈다. 집이 가난한데 졸업하고 빨리 취직해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언제 사법고시 보고 변호사 되고 돈 버냐고. 옆에 있던 형과 누나도 아버지를 거들었다. 법학과는 돈 많고 배경 좋은 애들이 가는 데지, 너 같은 애들이 가는 데가 아니라고. 그는 집을 뛰쳐나갔다. 달리고 또 달렸다. 학교 운동장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할 때쯤 여기저기 원서를 냈다. 오라는 곳이 많았다. 가장 좋은 회사를 선택했다. 입사 1년 차, 아버지가 쓰러졌다. 당뇨가 심각했다. 아버지는 인슐린 대신 술병을 달고 살았다. 병원에서 가망 없으니 집에서 1년 정도 쉬라고 말했다. 형, 누나를 만났다. 아버지를 누가 모실 것인지 이야기가 오갔다. 형이 말했다. 

“형, 누나는 지금 가정이 있고 먹고 살기 빠듯하다. 좋은 회사 다니는 네가 결혼하기 전까지 모셔라. 1년 뒤에 아버지 하늘나라 가시고 나면 그때 결혼해도 늦지 않는다.” 

그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내성적인 사람이다. 침묵했다. 

회사 근처 원룸에 아버지를 모셨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점심시간, 저녁 시간, 틈나는 대로 아버지를 확인했다. 외부 출장 가는 날은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에게 아버지를 부탁했다. 회사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아버지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아버지를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적금을 깨서 요양병원에 모셨다. 요양 병원에 모시기 하루 전, 그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갔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 알 수 없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석 달 뒤, 아내와 결혼했다. 힘든 시기를 말없이 견뎌준 아내가 고마웠다. 예쁜 딸 하나를 낳았다. 

딸이 태어나고 얼마 후, 갑자기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치료를 받아도 개선되지 않았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윙윙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날이 계속되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도 그 소리가 들렸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별일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오늘은 참자 다짐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영업부서에서 대인관계는 특별히 중요했다.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서 주눅이 들었다. 가족에게도 예민해졌다. 혼자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날이 많아졌다.

“가족만큼은 보호하고 싶었어요. 예민해지면 감정을 다스릴 수 없거든요. 아내와 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나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제 자신을 방안에 가두고 격리하는 겁니다. 방 안에서 생각하죠. 

문을 열고 나가서 딸을 안아주고 싶고, 딸의 볼에 입 맞추고 싶고, 딸의 이야기를 듣고 싶죠.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뭐 하고 놀았는지….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문을 열고 나가서 성공한 적이 없어요. 제가 나가면 아내와 딸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긴장해요. 딸은 TV를 끄고,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묻죠. 궁색하게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생각을 차단하고 싶어서. 제가 중국어를 배울 필요는 없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책을 펴고 보는 겁니다. 물끄러미 책을 보다가 생각해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내가 없어도 아내와 딸은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내가 있는 게 두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이다. 남편, 아빠로서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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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고 달리는 차는 금방 망가진다. 멀리 왔다 싶으면 잠시 멈춰야 한다. 사람도 똑같다.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금방 망가진다. 다리 아프고, 팔 아프고, 숨차면 잠깐 멈춰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 

목표까지 달릴 수 있느냐, 몇 등으로 들어가느냐 생각하면 그늘에서 쉴 수 없다. 목표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달리면 목표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진다.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쉬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전략이다. 

C가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그저 낙심한 것뿐이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당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낙오자, 패배자,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우울증, 공황 장애, 불안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 대부분 유능한 사람들이다. 왜 그런 사람들이 우울증, 불안 장애로 고통 받는가? 나도 처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어린 시절 시절 겪은 사건과 그에 대한 해석으로 자신의 신념을 구성한다. 한 번 구성된 신념이 해체되거나 변형되는 것은 쉽지 않다. 신념은 하나가 아니고 복합적이며 서로 맞물려 한 사람의 체계를 형성한다. 체계가 추구하는 방향을 우리는 ‘목적’이라고 부르자. 

사람은 자신만의 목적을 추구한다. 그 목적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혹시라도, 그 목적이 대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 인생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의 근본 원인은 목적 상실이다. 목적을 잃거나, 이루거나. 눈앞에서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목적이 사라지면, 자신을 지탱하던 체계가 무너진다. 왜곡된 신념이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실패 했어. 나는 패배자야.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어.’ 

목적을 상실한 사람은 왜곡된 신념이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 받는다.

목적이 멀어진 사람은 무기력 해진다. 반복되는 실패로 낙심한다. 혼자 결론 내린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능력이 부족해. 재능이 부족해. 이 길이 아니야.’ 

거대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은둔한다. 그를 꺼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다리는 성벽 밖이 아니라, 성벽 안에 놓여 있다. 성벽 안에서만 타고 오를 수 있다.    

목적을 이룬 사람 역시 고통 받을 수 있다. 목적이 사라지면 체계가 무너진다. 혼란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막대한 빚을 지고 수 년 동안 그 빚을 갚은 사람,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유명해진 가수, 배우, 작가. 

‘아 이제 편안하다.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느끼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목을 조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목적을 이룬 이후에 펼쳐질 삶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목적이 사라지는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쉬지 않고 달렸다. 어머니를 떠난 보낸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느라, 형과 누나 대신 아버지 돌보느라, 가난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삶의 안정을 추구하느라, 불행한 성장과정을 뒤로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느라, 쉴 틈 없이 살았다. 그의 성취는 엄마 이미지를 가진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관심 받지 못하던 학생에서 주목받는 학생이 되었다. 성취가 그의 원동력이었다. 

그의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 그의 열정을 촛불 끄듯 훅 불어 꺼렸다. 아버지, 형, 누나는 법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그에게 가난이라는 족쇄를 채웠다. 그는 삶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저는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히 생각하는 걸 좋아하죠. 제가 하는 일은 사람에게 시달리는 일이에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옛날 일이 자꾸 떠올라요.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내가 법학과에 원서를 넣지 않았을까? 왜 아버지, 형, 누나 말을 듣고 꿈을 포기했을까? 형과 누나, 꼴보기 싫어서 만나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연락하지 않고 지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 해방감은 그에게 죄책감을 주었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닌가, 아버지가 죽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닌가. 죄책감은 그를 갉아먹었다. 그는 결혼했고, 아내와 행복했고, 사랑하는 딸을 낳았다. 회사에서 승진했고, 연봉은 두 배로 올랐다. 아버지 죽음 이후에 그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보냈다. 죄책감은 날로 심해졌다. 그의 귓가에 누군가 속삭였다.   

‘너는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거야.’ 

그는 행복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상처가 그에게 행복한 가정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대가를 지불하고 목적에 도달했다고 느낀 순간, 그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상상했던 가정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후회와 죄책감으로 망가진 자신을 직면했다. 아내와 딸에게 행복을 주기는커녕 두려운 존재가 되어갈수록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가 사라진다면 가족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리던 행복한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목적이 필요하다. 그 목적은 실현 가능하지만, 도달할 수 없어야 한다. 인생에서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산맥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그가 살 길이다. 동시에 실현 가능해야 한다. 

한 걸음씩 그 목적에 도달하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 한 걸음씩 걸어서 앞으로 가되 그의 인생을 다 바쳐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산 너머에 있지 않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 있다. 같이 걷는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들. 그들과 함께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 벌레소리,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그저 걷는 것이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어두운 터널을 지난 것처럼 그는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두려운 현실을 마주했다. 그의 노력과 성취는 놀라웠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건조했던 그의 입술은 촉촉해 보였다.

“그날 밤도 가슴이 짓눌려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옆에서 아내가 울어요. 아내에게 손을 뻗어서 아내 손을 꼭 잡았어요. ‘괜찮아.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 조금만 기다려.’ 아내는 입을 막고 울더군요. 아내가 말했어요. ‘여보, 그만해. 그 말을 할 사람은 나야. 내가 위로해주고 싶다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목 놓아 울어본 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내 품에 안겨서….”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