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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자기를 돌보자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나 자신을 돌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돌보자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답변

     먼저 오해할까 싶어, “자기 사랑”과 “자기 돌봄”이 서로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 의미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일단, 두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씁니다.

     나는 “자기 사랑”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삶은 때로는 이기적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미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넘쳐납니다.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랑”의 구호를 외칩니다. 나까지 끼어들어 “자기 사랑”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은 귀가 아프도록 같은 말을 듣습니다.

     나는 솔직히 “자기 사랑”이란 말 자체가 성경적인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해서 오해를 살까, 조금은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용기내어 말합니다. 기독교는 “자기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자기 부인”의 종교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를 사랑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예수님 앞에 서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예수님 앞에 서면, 고귀한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확신 있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삶, 이것이 자기를 돌보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에 관한 말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돌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사랑받아야 합니다. 슬프게도, 나는 상담실 안에서 예수님을 진지하게 따르지만, 예수님께 사랑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예수님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거절당할까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정서적으로 예수님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품에 안기고 싶을 때, 예수님께 사랑받고 싶을 때, 예수님이 한없이 멀게 느껴집니다. 머리로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의 결함이 아닙니다. 말씀은 말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안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예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오해합니다.

     나 역시 상처 입은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경을 연구했지만, 예수님을 단단히 오해하며 살았습니다. 상처의 렌즈로 말씀을 읽었고, 예수님과 비틀어진 관계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 안의 상처를 돌보는 삶을 시작하자고. 상처 안에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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